아이 운동회서 "죄송해요" 소리 듣고 속으로 생각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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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
"주민 여러부운, 오늘, 저희들, 조금만, 놀게요오, 죄송합니다아!"
생경한 외침으로 지난 26일, 아이의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어디선가 시작했을 아이들의 외침이 어느새 유행이 된 모양이다. 일부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주변에서는 학교 행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실제로 한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 초등학교 운동회 소음 민원은 2018년 77건에서 지난해 214건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지역과 학교별 편차는 클 것이다. 아이들의 외침에 순간 웃음이 터졌고,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하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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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 수 있길. |
| ⓒ notethanun on Unsplash |
아이 학교에서는 협소한 공간과 안전을 이유로 부모 중 한 명만 참관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초상권 침해가 우려된다고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는 조항도 붙었다. 요즘 운동회는 낭만이 없다며 남편은 회사에 휴가를 내려다 만 것을 아쉬워했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돌아보니 낭만이었다. 운동회는 온 동네 잔치였다. 학부모 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도 오셨다. 운동장 구석구석 빈 땅을 찾아 돗자리를 펴고 김밥, 통닭(치킨 아니고 통닭이라 해야 맛이다), 과일과 과자를 펼쳐 놓고 흙먼지를 저어가며 먹어도 맛있었다. 바빠서 부모님이 오지 못한 동네 친구도 같이 둘러앉아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운동회 전부터 이미 지쳐 있었다. 2주 전부터 단체 체조 연습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꼭두각시 춤을 추었다. 남자 짝꿍과 손을 잡는 것이 싫어서 옷 소매를 늘어뜨려 내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고학년 올라가서는 부채춤을 추었다.
나는 키가 작고 존재감 없는 아이였기에 가운데 서서 화려하게 돋보이는 꽃 역할은 해 본 적이 없다. 주인공 꽃은 원의 가운데라 움직임이 적고 중심에 우뚝 선 것 자체로 예뻤다. 나는 뙤약볕 아래 이파리 역할을 하느라 원 가장자리를 종종 거리며 뛰는 게 힘들었다. 달리기도 자신이 없었는데 결승선을 통과한 순서대로 손목에 받는 1, 2, 3등 도장이 내겐 중요했다. 국민학교 운동회 내내 딱 한 번 1등을 했던 날, 1등 도장이 지워질까봐 손목을 대충 씻었더랬다.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고 권위주의적 질서를 강조하던 시절.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걸친 나의 국민학교 운동회는 그랬다. 이기는 사람만 인정받는 분위기여서 뭐든 이 악물고 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모든 경기가 경쟁 구도였고 승리팀에게만 점수가 주어졌다.
한국교육신문을 찾아보니 1990년대 중후반의 교육 개편(5·31 교육개혁, 6차·7차 교육과정 계열)은 학교 자율화·학생 선택 중심 확산을 목표로 했다. 참고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22 개정 체육과 교육 과정은 체육의 영역을 '운동·스포츠·표현'으로 재구성하며 학생의 선택과 핵심 역량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10여 년 전부터 꼴찌 없는, 연습 없는 등의 학생 중심 운동회 사례가 여러 보도를 통해 소개 되어왔다. 승패 중심이 아닌 풍선 터뜨리기 같은 놀이형 경기와 색판 뒤집기처럼 협동이 중요한 참여형 프로그램 구성이 대표적이다. 시대가 변하면 운동회도 변하는 것이 맞다.
이날 아이들의 운동회에서는 넷플릭스 영화 <K팝 데몬 헌터스> OST 중 사자 보이즈의 '소다팝'노래에 맞춰 학생들이 즉흥적으로 춤을 추었다. 이후 최신 곡이 연이어 나오자 이내 댄스 파티가 되었다. 모두가 주인공인 듯 각자의 방식으로 흥을 내었다. 소외되는 아이가 없도록 서로 밀어주고 손을 잡아 함께 흔드는 모습도 보였다. 기다리던 개인 달리기 경기가 시작했다. 내 뒤에서 어느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요즘에는 왜 열심히 뛰는 애들이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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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에게 미래의 운동회를 그려달라고 했다. 학생들이 웨어러블 센서를 착용하고 미션을 수행하면 에너지 포인트가 쌓이고, 사회적 가치를 담은 ESG 축제 컨셉을 담아냈다. |
| ⓒ ChatGPT |
운동회의 변화는 단순한 프로그램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나라 공교육의 철학과 방향이 구현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운동회는 교육 과정에서 강조하는 가치를 몸으로 체험하게 하는 장으로 발전한다. 지난 40년에 걸친 변화를 보면 '보여주는 운동회'에서 '즐기는 운동회'로, '이기는 운동회'에서 '함께하는 운동회'로 바뀌어 왔다.
미래의 운동회는 어떤 모습일까? 증강현실로 장애물을 넘고, 학생 자신이 종목을 선택하여 참여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학생 수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지역사회와의 연결이 의미 있는 시대이니 지역민과 함께하는 '로컬' 운동회 프로그램으로 변화하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운동회는 단지 '행사'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공동체를 몸으로 배우는 장면들, 서로 밀어주고 함께 웃고 땀을 흘리며 사이를 좁히는 시간이 아닐까. 제도와 방식은 달라져도, 아이들이 온몸으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자리만은 남겨야 한다. '같이 놀았던 추억'이어야 한다. 운동회 날 만큼은 실컷 그리고 시끄럽게 놀았던 추억이 어쩌면 다음 세대의 운동회 낭만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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