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인사이트] 국가전산망 마비, 누구 책임인가
[이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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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위해 소방,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지난 26일 정부 전산시스템이 있는 국정자원에서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된 바 있다. |
| ⓒ 연합뉴스 |
책임 소재를 가르는 우선적 요인은 화재 원인입니다. 만약 리튬배터리 이송 작업 중 작업자들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밝혀지면 관리 책임 문제가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배터리 전원을 차단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다 불이 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배터리 노후화로 인한 화재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일각에선 처음 불이 시작된 리튬배터리의 사용 연한이 1년을 넘었다는 점을 거론합니다. 통상 노후한 배터리가 연한을 넘겨 사용될 경우 품질 이상으로 화재 사고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배터리 미교체 사유 등을 둘러싼 전·현 정부 간 책임 소재가 애매해질 수 있습니다.
더 근원적인 의문은 이런 사고가 났을 때 대신 기능을 수행할 시스템을 왜 진작 구축하지 않았느냐는 데 있습니다. 비상시 테이터 복구는 서버와 클라우드 모두 이중화가 돼 있어야 하는데, 클라우드 환경의 이중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똑같은 환경을 갖춘 '쌍둥이' 클라우드 시스템을 지역적으로 떨어진 곳에 갖춰 놓고 화재 등 재난 상황에 대비했어야 하는 데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시스템이 절반 정도만 갖춰져 있다 보니 정부 시스템 다운이라는 속수무책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문제는 이런 사태가 돌발적이 아니라 정부가 당초의 계획을 지키지 않아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2022년 카카오가 백업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놓지 않아 메신저를 비롯해 택시·결제·음악 등 거의 모든 서비스가 올스톱 되자 정부 행정시스템은 완벽한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대전 센터는 화재나 지진 등으로 자료가 소실돼도 3시간이내 복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해인 2023년에 국가 행정전산망이 먹통이 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때도 윤석열 정부는 백업시스템 구축을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전 본원의 클라우드 이중화 작업 지연은 예산상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파악합니다. 데이터 백업은 화재와 재난 등 비상 상황 발생시에나 필요한 것이어서 예산 배정의 우선 순위에서 밀렸을 거라는 관측입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디지털플랫폼 정부'를 표방하면서 외형 확대에 치중한 반면 시스템 장애와 복구 등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디지털이라는 포장에만 급급했지 정작 개선을 필요로 하는 부분은 등한시한 결과라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도 역시 '디지털정부'를 내세우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 책임으로만 돌릴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앞서 행안부는 올해 주요 업무 계획의 3대 핵심 분야 가운데 하나로 디지털 서비스 장애 예방과 안정성 확보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을 중심으로 민관합동으로 행정서비스 장애에 신속히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이같은 대책이 무색해졌습니다. 말만 앞섰지 현장에서 내실을 기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옵니다.
같은 맥락에서 국민의힘이 이 대통령 사과와 윤호중 행안부 장관 경질을 주장하는 것도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데이터 이중화 등 신속한 장애 복구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책임의 한 당사자가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행정망 훼손으로 신원 확인이 어렵게 됐다며 중국인 단체관광객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키웠습니다. 전산망 마비 사태를 중국 때리기로 연결시키는 건 전형적인 극우 세력 주장에 편승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 책임 논란은 결국 이재명 정부가 얼마나 신속하게 시스템을 복구해 피해를 최소화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만약 피해가 장기화돼 국민 불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면 사고 원인보다 정부의 무능이 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대통령이 28일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신속한 시스템 복구와 가동, 국민 불편 최소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이번 사태로 시험대에 선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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