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경제 살릴 묘안 묻자…손정의 "인터넷 속도 1000배 올려라" [창간기획 대한민국 '트리거60' ㉟]
트리거 ㉟ 정보 고속도로 건설

▶김 대통령=“한국 경제를 살릴 조언을 부탁합니다.”
▶손 회장=“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브로드밴드, 둘째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입니다. 인터넷 속도를 1000배 높이는 겁니다.”
▶게이츠 회장=“100% 찬성합니다.”
▶김 대통령=“두 분이 모두 그렇게 말하니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로부터 채 3년도 되기 전인 2001년 2월 9일, 서울 광화문의 한국통신(현 KT) 사옥에서 ‘초고속 정보통신망 기반 완성 기념식’이 열렸다. 김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 전국적인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구축했다”며 “경부고속도로 개통이 70년대 산업화의 시발점이었듯이, 오늘 ‘정보 고속도로’의 완공은 21세기 지식정보 강국을 향한 역사적인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역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낸 보고서에서 “한국은 저임금 경제를 바탕으로 한 종속 국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지식 기반 경제로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그 같은 결정적 순간에 28조원을 투입해 구축한 초고속 정보통신망은 2000년대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 코리아’로 우뚝 서는 계기(트리거)가 됐다.
철도 전산망이 열어젖힌 PC 통신 시대
한국 정보통신망의 뿌리는 의외로 철도청이다. 철도 전산망은 1971년 등장했다. 한 역에서 좌석표를 팔면 즉시 다른 역에서 어느 좌석이 남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등의 기능이었다. 이것이 73년 부처 간에 서류를 주고받는 정부 통합 전산망으로 확대됐고, 86년 기업 등에 통신망을 빌려주는 상업 서비스 ‘케텔(KETEL)’로 이어졌다. 전화선을 이용해 14.4kbps의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하며 하이텔·천리안 등 PC 통신 시대를 열었다. 데이터가 G(기가)bps로 날아다니는 지금에 비하면 10만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속도다. 끔찍하게 느리지만 요금은 분당 46원으로 매우 비쌌다. 그래서 PC 통신은 문자 위주의 게시판·동호회·채팅 서비스가 주를 이뤘다.
국내 통신망이 세계와 연결된 것은 90년 3월 24일이었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전길남 박사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미국 하와이대 전산망을 연결했다. 아시아 최초, 세계에서는 미국·영국에 이어 셋째로 사이버 세상에 합류한 것이다.
94년 김영삼 대통령은 “10년 안에 전국 초고속 통신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앨 고어 미국 부통령이 내놓은 ‘인포메이션 수퍼 하이웨이’ 구상을 따라 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인터넷 상용 서비스가 이뤄지는 등 꾸준히 발전했다. 체신부를 개편해 전자·통신 기술을 총괄하는 정보통신부가 생긴 것도 이즈음이다.

외환위기의 혼란 속에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빌 게이츠와 손정의의 제안을 받아들여 초고속망 보급과 인터넷 활성화를 경제 살리기의 핵심으로 삼았다. 여기서 또 한 명의 선구자가 등장한다. 대우전자 사장 출신인 배순훈 정통부 장관이다. 당시 대중적인 초고속망 기술은 미국·일본 등이 쓰는 종합정보통신망(ISDN)이었다. 기존 전화선을 이용해 비용은 덜 들지만, 최고 속도가 128kbps에 불과했다. PC 통신보다 열 배 가까이 빠르다지만 동영상까지 주고받기는 무리였다. 배 장관은 “전남 목포의 고3 학생이 강남 과외를 받고, 전북에 사는 최씨 할머니가 유기농 쌀을 서울 부잣집에 비싸게 팔려면 더 빠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대통령을 설득했다. 결국 이론상으로 ISDN보다 100배 빠른 ‘비대칭 디지털 가입자 회선(ADSL)’을 전국에 깔 수 있었다. 케이블 TV망 등을 활용하는 ADSL은 미국 벨 연구소가 개발했으나 전 세계 누구도 상용화하지 않은 기술이었다. 이를 한국이 과감하게 채택해 세계 최고의 통신망을 구축했다. 2005년부터는 구리선 대신 광케이블이 깔리면서 ‘모든 집까지 광케이블이 연결되는(FTTH)’ 기가 네트워크 시대로 이어졌다.
![1998년 6월 김 대통령은 손 회장과 빌 게이츠를 만나 초고속 통신망 구축을 결정했다. [중앙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9/joongang/20250929050212861vmdj.jpg)
이동통신 네트워크 역시 한국이 선도했다. 90년대 들어 전 세계는 음성뿐 아니라 문자메시지까지 주고받을 수 있는 2세대 통신기술 경쟁을 벌였다. 기선을 잡은 것은 유럽 중심의 GSM 기술이었다. 콧대 높은 구미 통신업체들은 한국이 기술 협력을 요청해도 외면하기 일쑤였다. 정부는 93년 서정욱 전 과학기술처 차관을 필두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삼성전자·LG전자 등이 참여하는 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관리단을 만들었다.
1세대 기술조차 없던 우리나라는 미국 퀄컴이 개발한 CDMA 기술에 주목했다. 이론상 같은 주파수 대역 폭으로 유럽식 GSM보다 가입자를 3배 이상 수용할 수 있다지만, 교환기·단말기, 통신 제어 등 1000여 가지 세부기술 개발이 필요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노력이 이어졌다.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선경그룹(현 SK그룹)도 힘을 보탰다. 최종현 회장이 연구개발비 100억원을 지원했다.
![1996년 4월 이수성 총리가 CDMA 시범통화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9/joongang/20250929050214151wucl.jpg)
1년9개월 만에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이듬해인 96년 SK텔레콤은 세계 최초로 CDMA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CDMA 기술 확보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통신 강국으로 올라섰다. 한국 업체들은 3세대 WCDMA, 4세대 LTE 개발에도 참여했고 상용 서비스 도입에 앞장섰다. 언제 어디서나(유비쿼터스) 음악을 듣고, 동영상을 보고, 회사 일을 하는 세상이 한국에서부터 열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세상을 바꿨다. 일찌감치 90년대에 정부가 ‘초고속 통신망’이라는 멍석을 깔아주겠다니 그때부터 재주꾼들이 모였다. 무료 이메일을 앞세운 이재웅의 다음커뮤니케이션(95년)과 블로그·지식인 서비스를 들고나온 이해진의 네이버(99년)는 포털 시장에서 야후 등과 각축을 벌였다.
![2002년 11월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1000만 명 돌파 행사. [중앙포토]](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9/joongang/20250929050215491haol.jpg)
99년 선보인 싸이월드는 페이스북(2004년)보다 먼저 소셜미디어(SNS) 시장을 개척했다. 미니홈피와 일촌 기능으로 국내 이용자 3000만 명을 달성했다. 94년 김정주가 창업한 넥슨과 97년 김택진이 세운 엔씨소프트는 롤플레잉 게임의 전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96년)가 첫선을 보인 것도 이 무렵이다.
‘네트워크만 선진국’에서 벗어나야
이런 사례가 이어지면서 ‘자동차(콘텐트)도 없는데 고속도로(초고속인터넷)만 깔면 뭐 하느냐’는 비판은 쑥 들어갔다. 하지만 요즘은 “네트워크 강국일 뿐 서비스는 한참 뒤처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망 위에서 돌아가는 서비스가 구글·유튜브·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이어서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국내 시장을 지키고 있지만, 텐센트·바이두·알리바바 같은 중국의 후발 주자에 밀려 해외 진출도 여의치 않다.

전문가들은 한국어 서비스 중심의 언어 장벽, 그리고 미국처럼 수백 개 벤처기업을 키워낼 수는 없는 경제 규모의 차이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역설적으로 초고속 네트워크를 너무 빨리 완성해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서비스를 글로벌 시장에 선보이기 어려웠다는 점을 꼽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넷플릭스가 온라인 스트리밍을 제공하기 시작한 2007년, 그리고 스포티파이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한 2008년 전후를 우리는 허송세월하다시피 했다. 이 황금 같은 시기에 지상파와 케이블TV의 견제에 밀려 인터넷방송(IPTV)이 5년가량 미뤄졌다. 새 서비스는 밥그릇 싸움에 치이고 규제에 막혔다. 잇단 해킹 사태와 647가지 공공 업무를 마비시킨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보안 강화와 서비스 분산 역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최근 들어 K팝·K드라마·K무비 등 콘텐트 산업이 성장하면서 ‘네트워크만 선진국’이라는 반쪽짜리 IT 강국에서 벗어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격변하는 인터넷 콘텐트와 서비스 시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는 다시 한번 ‘IT 코리아’의 신화를 쓸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다.
창간 60주년 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은 아래 링크를 통해 전체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issue/11765
※다음은 ‘한강과 노벨문학상’ 편입니다.
김창우 경제선임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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