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떠난 '1호 개그맨' 전유성, 영원히 잠들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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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미디의 초석을 다진 '1호 개그맨' 전유성이 25일 별세했다.
마지막 무대는 전유성이 한국 코미디사에 남긴 상징적 공간인 '개그콘서트'였다.
전유성은 단순한 소극적 웃음을 넘어서 사회 풍자, 일상 해학, 지적 유희를 결합해 한국 코미디의 지평을 넓혔다.
전유성은 한국 코미디를 '직업'으로 세우고 '문화'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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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 "고인 뜻 받들어 웃음 전하겠다" 눈물

한국 코미디의 초석을 다진 '1호 개그맨' 전유성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6세. 고인은 지난 6월 폐기흉 시술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해 전북대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다 세상을 떠났다.
2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유족과 코미디계 후배들은 눈물로 마지막 길을 지켰다.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졌다.
마지막 배웅 길에는 비가 내렸다. 영결식장은 숙연함 속에 고인을 추억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장의위원장을 맡은 김학래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은 "코미디 하면 유랑극단을 떠올리던 시대에 '개그맨'이라는 명칭을 만들어 우리 직업의 위상을 높인 분"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김신영은 "코미디를 처음 인정해주신 선생님"이라며 오열했고, 김정렬은 생전 고인이 좋아했던 '숭구리당당'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유쾌하게 배웅했다.
마지막 무대는 전유성이 한국 코미디사에 남긴 상징적 공간인 '개그콘서트'였다. 이날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진행된 노제에는 후배 개그맨 100여명을 비롯해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고인을 배웅했다. 고인의 영정이 녹화장을 한 바퀴 돌고 무대 한가운데 놓이자, 후배들은 객석에서 일어나 일제히 묵념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홍렬은 "무대 위에서는 혁신가였고, 무대 밖에서는 스승이었다. 웃음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라는 것을 증명하셨다"고 말했다. 최양락은 유행어 '봉이야'를 외치며 눈물 속에 선배를 추모했다. 팽현숙은 "전유성 선배 덕분에 최양락을 만났고,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며 흐느꼈다.
박준형은 "1000회가 넘는 공개 코미디를 가능하게 해주신 분"이라고 말하며 감사의 박수를 제안했고, 후배들은 눈물 속에 박수로 화답했다. 후배들은 "선배님의 뜻을 받들어 국민께 웃음을 드리겠다"고 다짐하며 눈물 속 박수를 보냈다. "이 자리에서 1분간 참았던 눈물을 참지 말고 신나게 울고 보내 드리자"는 김학래의 제안에 한동안 통곡이 이어지기도 했다.

1949년 대구에서 태어난 전유성은 서라벌예고·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거쳐 1969년 TBC '쑈쑈쑈' 방송작가로 방송에 입문했다. 이후 무대에 직접 오르며 방송사에 '개그맨'이라는 직업명을 제안, 희극인이라는 단어가 주를 이루던 시절에 새 명칭을 정착시켰다.
고인이 참여한 KBS '유머1번지', MBC '청춘행진곡', SBS '쇼 비디오자키'는 시대를 대표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남았다. 공개 코미디 무대를 정착시킨 '개그콘서트' 역시 그의 구상에서 비롯됐다. 전유성은 단순한 소극적 웃음을 넘어서 사회 풍자, 일상 해학, 지적 유희를 결합해 한국 코미디의 지평을 넓혔다.
후배 발굴과 양성에도 앞장섰다. 이경규, 최양락, 팽현숙 등 수많은 코미디언이 그의 손을 거쳐 스타로 성장했다. 예원예대 코미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젊은 세대에게 무대 경험을 전수했다.
저술 활동도 활발했다. '1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등은 웃음의 철학과 인생관을 담아낸 책으로 회자된다.
전유성은 한국 코미디를 '직업'으로 세우고 '문화'로 발전시켰다. 그는 무대 형식을 끊임없이 실험하며 관객과 호흡하는 공개 코미디의 장을 만들었다.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같은 그의 어록은 단순한 농담을 넘어 세태 풍자와 삶의 통찰을 담았다고 평가받는다.
장지는 고인이 2018년부터 머물렀던 전북 남원이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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