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이코노믹스] 관세 협상 국내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신산업 육성해야

2025. 9. 2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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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화하는 한미 통상 협상 속 한국 경제의 재도약 방안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한국 경제는 기로에 서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잠재성장률 3%를 달성하면서 재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저성장이 지속하면서 일본과 같이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질 것인가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추격으로 주력 산업 대부분은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 조선·철강·석유화학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으며, 가전도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면서 최근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는 아직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곧 중국에 추월당할 가능성이 크다.

「 중국의 추격에 산업 경쟁력 약화
대미 무역 흑자가 안전판 역할해

관세 인상에 경상수지 악화 우려
대미 투자 펀드 조성안 모색해야

산업 경쟁력 제고책 구체화 통해
대내외 충격 줄일 방안 마련하길

정근영 디자이너

산업 경쟁력 약화는 내수 침체와 수출 감소로 저성장과 일자리 감소를 불러온다. 이미 청년 실업이 늘어나고 재정 적자가 확대되고 있으며 무역수지도 악화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큰 폭의 흑자를 내던 대중 무역수지는 2023년부터 적자로 전환됐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도 위기를 겪지 않는 것은 대미 무역 흑자로 경상수지가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관세 정책 여파로 경상수지가 악화할 경우 국가의 대외 신인도가 낮아지면서 경제 위기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 우려된다.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8월 대미 수출은 12%나 감소했다. 조선·철강·자동차 등 주력 산업을 한국에 이전해주고 30년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의 경험을 답습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커지는 미국 수출 시장의 중요성
그럼에도 최근 2가지 여건 변화는 한국 경제의 미래 전망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먼저 미·중 패권 경쟁이다. 중국은 그동안 급속한 성장으로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중국을 제외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높은 관세 장벽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을 막고 한다.

정근영 디자이너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후반에도 있었다. 당시 일본 경제가 크게 부상하자 미국은 1986년부터 3차례에 걸친 미·일 반도체 협정을 통해 일본의 반도체 수출을 규제했다. 그 결과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할 수 있었으며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 역사가 반복되듯 지금 비슷한 상황이 발생해 미국의 중국에 대한 규제로 한국의 주력 산업은 경쟁력을 높일 기회를 맞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제조업 부활 정책에 의해 조선·철강·자동차 등의 대미 투자와 중간재 수출이 늘어나면서 사양산업화하던 이들 산업이 회생할 수 있게 됐다.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기게 된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신산업의 등장이다. 비록 기존 산업이 중국의 추격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해도 인공지능(AI)과 배터리, 전기자동차, 첨단 군수산업 등 신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급속한 디지털화로 지금은 산업혁명의 시기라고 할 만큼 산업 구조의 대전환기다. 미국과 중국·일본은 신산업 육성에 정부 지원을 늘리면서 올인(all-in)하고 있다. 한국 또한 신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경우 재도약할 수 있다. 기로에 선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 당국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먼저 미국 수출 시장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은 중국 수출이 늘어나면서 성장해 왔다. 한국은 부품을 공급하고 중국은 완성품을 조립해 미국에 수출하는 상호 보완적 산업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기술력 제고로 경쟁적 산업 구조로 바뀌면서 이러한 무역 구조는 더는 지속하기 어렵다. 대중 수출이 감소하면서 2023년부터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된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대중 수출이 줄어든 자리를 미국 시장이 대체하고 있다. 부품과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해서 완성품을 조립하던 공정이 이제는 미국에서 직접 완성품을 조립하는 형태로 바뀌면서 최근 대미 수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대미 무역흑자는 기존의 200억 달러대에서 550억 달러대로 큰 폭으로 늘었다. 미국은 소프트웨어와 금융 산업 등 서비스 산업에서 비교 우위가 있지만 한국은 제조업에 비교 우위가 있는 상호 보완적 산업 구조로 앞으로도 대미 수출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국의 제조업 부활 정책에도 미국의 높은 임금 수준 때문에 제조업 완성품 조립은 가능하지만 부품 생산은 비교 우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미국 수출 시장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미 투자, 외환보유액 소진 막아야
그런 만큼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유연한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미국은 늘어나는 무역 적자를 줄이려 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관세를 낮추는 대신 한국과 일본 등 무역 흑자국에 미국 내 직접투자를 요구하며 투자 규모와 방식에 대한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미국이 요구하는 직접투자 규모와 연관해서 한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를 비교해 보면 대미 수출과 무역흑자 규모에서는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 한국은 지난해 1278억 달러를 수출했으며 일본은 1420억 달러를 수출했다. 대미 흑자 규모도 한국은 556억 달러이며 일본은 685억 달러다. 대미 수출에서 자동차와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35% 내외로 비슷하다. 반면 국가 경제나 외환보유액 규모로 볼 때는 한국의 3500억 달러 직접투자 규모는 과도하다. 하지만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고려해 정책 당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유연하게 협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외환보유액의 큰 소실이 없도록 다양한 펀드 조성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직접투자의 경우 투자 자금은 국내 금융시장과 국제 금융시장에서 채권 발행과 대출을 통해 조달된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대로 투자자금 3500억 달러를 전액 국내 외환시장을 통해 조달할 경우 외환보유액(4100억 달러)의 상당 부분 소실이 우려된다.

결국 미국과 적극적인 협상을 통해 국제 금융시장을 통한 조달을 포함해서 외환보유액 소진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자금 조성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민간 기업과 금융회사, 정책금융기관, 연금기관 등 다양한 투자 주체를 통해 펀드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은 민간기업이 투자 주체가 되고 일본은 정부 주도로 민간 기업과 정책 금융기관이 주체가 돼 펀드를 조성할 것이 예상된다.

또한 투자 자금을 국내 외환시장에서 조달할 경우 환율이 급등하게 되고 이는 미국 관세 정책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음을 미국 측에 강조해 협상을 진전시킬 필요도 있다. 정부가 제안한 미국과의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한국 원화가 국제 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쉽지 않지만, 세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때와 같이 한시적이고 제한된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적극 추진해 펀드 조성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대미 협상 결렬 시 충격도 대비해야
미국과의 협상 장기화나 결렬 시 발생할 수 있는 비용도 경계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협상 결렬 시 추가 관세 부과로 10% 정도의 대미 수출 감소를 예상하지만 협상이 장기화하거나 타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은 막대한 비용을 치를 수 있다. 관세 인상으로 인한 수출 감소는 물론 환투기 세력의 공격과 외국 투자 자금은 물론 내국인의 자본 유출로 환율도 급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세 전쟁 후에 올 환율 전쟁과 화폐 전쟁의 충격도 비용을 확대하는 요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전쟁과 환율 전쟁, 화폐 전쟁의 3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관세 협상 이후 미국이 추가적인 환율 조정을 요구할 경우 수출 감소로 성장률 둔화가 우려된다. 여기에 최근 법제화한 익명제인 달러 스테이블코인 거래가 확산할 경우 자본 유출로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 이러한 통화 충격 또한 통상 협상이 타결되지 못할 경우 더욱 커질 수 있다, 정책 당국은 통상 협상에서 성과를 내 환율 상승과 자본 유출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

신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산업 정책도 중요하다. 역대 정부에서 대부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기술력을 높이는 데는 실패했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산업의 육성 단계에서는 인재 양성과 신기술 개발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수다. 정부는 기술 선도 성장 전략을 핵심 정책 브랜드로 중요시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기술 선도 성장 전략의 청사진과 추진 계획을 구체화해야 한다. 대통령 주재로 분기별 기술 선도 성장 전략 회의를 개최해 성과를 점검할 필요도 있다.

통상 협상 유연하고 신중하게
마지막으로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 경제 정책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정치 논리나 특정 이념에 의해 경제 정책을 수립하면 대부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하게 된다. 미국과의 통상 협상도 정치적 요인이 과도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정치적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고 경제 논리에 의해 신산업 정책이 시행되고 통상 협상이 진전될 때 한국 경제는 재도약의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성장과 침체의 갈림길에서 서 있다. 재도약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협상력을 발휘해 통상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AI 등 신산업 육성에 정책의 초점을 둬야 한다. 통상 협상은 원래 해당 국가의 국익과 밀접히 연관돼 있어 비록 동맹국이라도 협상 과정에서는 첨예한 대립과 갈등 구조가 형성된다. 1990년대 초 시장 개방 협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도 지금과 같은 갈등 양상을 보였지만 이를 극복하고 협상을 성사시켰다. 이재명 정부는 장기적·거시적 관점에서 신중한 정책 선택과 유연한 협상 전략으로 대응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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