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긴데 어디라도 가야하나, 고민중이라면
[이정미 기자]
며칠 전만 해도 후덥지근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때이른 낙엽이 가을이 멀지 않았다고 귀뜸해주긴 했지만 다소 갑작스럽다. 이 갑작스러운 가을의 노크에 반갑게 문을 열지 않을 이 누가 있으랴. 더위가 지겹도록 길었으니, 그 더위에 발 묶여 있었으니, 가을에는 서둘러 나서서 부지런히 자연을 누려야지 마음먹게 된다.
시누이와 나는 숲을 좋아한다. 시누이는 9월이 되면서 자연휴양림 예약에 열을 올렸다. 서둘러도 예약에 실패하기 일쑤였는데 운좋게 한 곳이 덜컥 걸렸다. 그렇게 홀로 계신 시어머니, 시누이, 남편와 함께 넷이서 1박 2일간(9월 20일~21일) 주말 지역 여행을 다녀왔다.
연휴에 추천할 만한 곳, 함양
지리산 자락에 앉은 함양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나의 최애 지역 중 하나이다. 특히 천년의 숲 상림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싱그러워진다.
상림숲 입구에 들어서니 꽃무릇이 한창이었다. 몇 년 전 태풍이 몰아친 다음 날, 몇 백 년 수령의 고목 숲을 가득 메운 꽃무릇 군락이 보고 싶어서 불쑥 이곳을 찾았었다. 태풍에 숲은 여기 저기 생채기가 났지만 꽃무릇은 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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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림숲 꽃무릇 천년숲을 가득 메운 꽃무릇이 만개했다. |
| ⓒ 이정미 |
상림숲 주변에는 가을꽃(황화코스모스, 버들마편초, 풍접초, 베고니아 등)이 한창이다. 파란 하늘, 푸른 숲, 색색의 가을꽃은 팔순이 훌쩍 지난 어머니도, 환갑이 지난 시누이도, 오십 고개 중턱을 넘고 있는 남편과 나 모두에게 기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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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들마편초 군락 보라색 버들마편초가 환상적이다. 상림숲 주변에는 빨강, 노랑, 보라 각양각색의 가을꽃 군락을 즐길 수 있다. |
| ⓒ 이정미 |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별이 총총 박혔다. 바람이 서늘하고 밤하늘은 고요한데 총총 별은 더욱 밝아 정겨웠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고, 어둠이 짙으면 별은 더 반짝인다. 숲속 휴양림에서 보내는 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비가 많이 온 뒤라 시누이는 용추 폭포를 봐야 한다며 서둘렀다. 몇 년 전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들과 함께 함양 일두 고택에서 한옥 스테이를 하고 지역 명소를 둘러본 적 있다. 당시 용추 계곡 폭포수 앞에서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새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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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추폭포 비온 뒤라 폭포의 기세는 더욱 당당하다. |
| ⓒ 이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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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월정 너럭바위 농월정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너럭 바위가 돗자리를 깐듯 펼쳐진다. |
| ⓒ 이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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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월정 아래서 올려다 본 농월정의 기품있는 모습 |
| ⓒ 이정미 |
추억의 다슬기탕
점심은 농월정 주변 '거창식당'에서 '다슬기탕'을 먹었다.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방영된 식당이다. 22살 때 시집 온 황성숙씨가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안주인인 황성숙씨는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10년 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그대로 음식맛을 내고 있다고 했다). 깻잎 무침, 찐 풋고추 무침, 우엉 조림, 콩비지, 멸치 조림 등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반찬과 수제비를 띄운 시원하고 담백한 다슬기탕은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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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0년 수령의 고목과 어머니 팔순이 훌쩍 넘으신 어머니가 400년 고목을 올려다 보고 있다. |
| ⓒ 이정미 |
추석이 멀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추석 연휴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차례를 지내는 집이 급격하게 줄었고 대신에 가족 여행을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모처럼의 긴 연휴이다 보니 해외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많다.
하지만 추석 연휴 기간은 보통 해외 여행 경비가 2배로 많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동행하기에 무리가 따르기도 한다 . 그리고 온 가족이 얼굴을 맞대며 음식을 나누었던 옛 추석 풍경에 익숙한 연로하신 부모님은 적적하실 것 같기도 하다.
연휴가 긴 만큼, 그 중 얼마간은 고향 근처 명소에서 부모님과 함께 소소하지만 정겨운 지역 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북적북적 공항 풍경과 새롭고 낯선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부모님 손잡고 조용하고 느리고 친숙한 지역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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