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애용, 발음은 정확히' 조선어 쓰면 이런 벌찰 달았다
[김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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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국의 어린이들>을 집필한 이영은 작가. 조선총독상 글짓기 대회 관련 당시 자료를 살피고 있다. |
| ⓒ 이영은 |
그런데 여러 식민지국에 거주하던 일본인 어린이들의 글을 보면, 식민지에 대한 주인의식이 담긴 글이 발견된다. 한 어린이는 자신을 국기 게양대에 서 있는 존재로 상상하며, "세계 어디에서나 일장기 아래라면 누구나 윤택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적었다.
여기서 이영은 작가는 "한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일 전쟁 이후 열린 조선총독상 글짓기 대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글이 결국 등장했다는 것이다. 책에서 언급되는 교사 아버지를 따라 논산의 농촌 마을로 이주한 일본인 어린이 역시, 같은 맥락의 글을 남겼던 것이다. 이는 전쟁을 합리화하려는 어른들의 일방적인 논리가 어린이들에게 여과 없이 주입된 탓이다.
이로써 식민지 일본인 어린이들의 글에서도 전쟁 이전과 이후, 시대적 변화와 관계없이 제국주의적 사고가 반영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이 원했던 어린이다움, 결국 '전쟁과 천황'을 찬양한 글
- 책에도 언급됐지만, 조선총독부는 어떤 기준으로 어떤 어린이상을 원하며 수상작을 정했다고 보는지.
"일본인과 조선인을 막론하고 글을 잘 쓴 어린이가 수상했다. 특히 조선인에게는 일본어로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총독부가 표창할 이유가 됐다. 제2회 대회부터는 전쟁과 천황을 찬양하는 문구가 많아졌고, 이러한 경향은 총독상이 추구한 기준을 보여준다. 조선인에게는 일본어 교육이 이러한 수상작 배출의 출발점이었다."
- 그렇다면, 조선어 수업과 사용에 대한 제한이 있었나.
"조선어 수업은 줄어들고, 학교에서는 일본어만 사용해야 했다. 집에서는 조선어를 써도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써야 하는 상황이 어린이들에게 큰 제약이자 압박이었다."
- 글짓기 대회나 학교생활에서 어린이들이 겪는 억압은 어떤 형태였나.
"학교에 제출하거나 대회에 참가하는 글에서는 학교생활 불만이나 선생님에 대한 부정적 표현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후 '국어 상용 국민 운동'이 시작되면서 조선어를 사용하면 '국어 애용, 발음은 정확히'라는 벌찰(벌 대신 다는 명찰)을 받고, 학급별 '국어 상용 일지'에 기록되며 3회 적발되면 정학까지 당했다. 이는 어린이들 간의 감시와 체벌로 이어지며, 조선어 사용을 사실상 억압하는 폭력적 제도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어가 국가 권력을 가진 언어였던 만큼, 조선인 어린이들에게 내려진 체벌은 오늘날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의 상황과도 비교해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 편입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외국인 어린이들이 스스로를 체벌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어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영은 작가는 "이 나라에 여성에게도 이름이 생긴 것이 근대의 시작이라고 본다. 그리고 어린이를 하나의 노동 생산력으로 취급하던 것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 취급하게 된 것도 근대다"라며 "여기에서 일제강점기 동안 여성과 어린이의 권익이 얼마나 성장한 것일까? 저는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평범한 모든 분이 존경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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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은 작가는 기자에게 "3편의 영화 스틸샷은 <제국의 어린이들> 속 어린이 작문 내용과 연관돼 있다.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제목은 '우리들의 후방' '조선의 애국일' '총후의 조선'이다. 특히, '총후의 조선'이라는 영화는 중일전쟁 발발시 후방인 조선에서 황군(일본군)을 도와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 ⓒ 이영은 |
"<제국의 어린이들>에 수록된 당시의 작문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보통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때, 그 윤리적 책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시대를 넘어 이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과오를 알 수 있다. 어른들의 시대적 과오는 제일 약한 존재인 어린이들을 피해자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양쪽 진영과 논리가 좁혀지지 못하면, 결국 마찰이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라나는 어린이가 겪게 되지 않나. 지금도 전쟁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희생당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제강점기를 연구하며 직접 경험하지 못한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조선에서의 교육과 제도는 실질적으로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를 포함해 이 시대 연구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또한, 주입식 교육으로 익숙하고 편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사고력과 창의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음을 느낀다. 어른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유롭게 발언하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어린이들의 글짓기 교육은 국어 교육을 넘어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성을 키우고, 각자의 발언을 돕는 돌파구가 되었으면 한다. 나아가 어린이들의 글이, 어린이를 먼저 이해하는 어른들의 교재로도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국주의가 길러낸 어린이들의 초상
<제국의 어린이들>은 단순히 과거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기록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조선인과 일본인 어린이들의 글을 통해 드러나는 경제적·사상적 차이는, 당시 사회가 어린이를 어떻게 길들이고 영향을 미쳤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선인 어린이들은 가난과 가계 문제를 글로 표현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마음을 드러냈지만, 일본인 어린이들은 자아와 이상적 인물을 비교하며 자신을 탐색했다.
또한, 1930년대 중일 전쟁 이전, 일본 본토 어린이들은 전쟁을 다루지 않았지만, 식민지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 어린이들은 '식민지 지배의 주인의식'을 글에 담았다. 이후 전쟁이 격화되면서 조선총독부의 교육 방침에 따라 전쟁 찬양 글이 늘어났다는 점도 주목된다.
'어린이답다'라는 표현은 단순한 행동의 규범을 넘어, 주입식 교육을 통해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백지의 상태'를 의미한다. 작가는 자신이 국민학교 시절 국가를 배우고, 국기와 애국가를 익히며 '좋은 국민'이 되기를 배운 경험을 떠올리며, 당시 제국주의 교육이 어린이의 사고와 인격 형성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 지적한다. 동시에 어른들의 과오가 가장 약자인 어린이에게 피해로 돌아간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오늘날의 사회적 맥락에서도 시사점은 뚜렷하다.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이 한국어와 문화적 환경에 적응하며 겪는 어려움을 떠올릴 때, 과거 조선인 어린이들이 일본어 교육과 감시 체계 속에서 느꼈던 제한과 압박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작가는 어린이 교육이 주입식 틀을 넘어, 사고와 창의성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이 책은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어린이를 먼저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어른들의 교재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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