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홀리는 단골메뉴 ‘지방병원 유치전’… 너도나도 숟가락 얹기
정부 국정과제 포함에 어느때보다 기대감
사업성 건너뛰고 섣불리 추진 선심성 우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의료 살리기를 명분으로 한 병원 유치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공공병원 없는 곳에 지방의료원 신설’ ‘공공의료사관학교 설립 및 의대 없는 지역에 의대 신설’ 등을 추진하면서 벌써부터 경쟁이 치열하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는 지방병원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 달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섣부른 지방병원 신설 추진이 자칫 선심성 공약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정 문제를 꼼꼼히 따져보고 지속 가능한 지방의료 정책을 마련하는 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순회 예산정책협의회를 진행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 이슈는 지방병원 유치다. 지난 17일 제주 예산정책협의회가 끝난 뒤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제주지역 상급종합병원 지정은 이재명정부의 공약이기 때문에 도민들이 기대를 가져도 좋다”면서 “재원 확보를 위해 관련 기금을 조성하는 내용의 법안이 올해 정기국회 안에 통과하면 내년부터 구체화되는 과정을 도민들이 체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18일 인천·서울·강원 예산정책협의회에서는 민주당 인천시당이 영종 지역 공공종합병원 설립을 최우선 과제로 요구했다.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이 없어 의료 취약지로 지목되는 만큼 신종 감염병 예방과 응급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공공종합병원과 응급의료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논리다. 지난 9일 대구·경북 예산정책협의회에서도 경북도당 측이 “경북은 상급종합병원조차 없는 참담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해결해 달라고 촉구했다.
지자체장들도 지방의료 강화 전선에 뛰어들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전남은 상급종합병원 부재로 고난도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응급환자의 타지역 유출률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며 “국립의대와 연계, 지역 맞춤형 의료인력 양성을 통한 지역·필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남 동부·서부권에 상급종합병원을 설립해 달라”고 건의했다.
복지부 안팎에선 정 장관을 만나려는 지자체장들이 줄을 섰다는 얘기도 나온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지방 병원은 핵심 의제 중 하나였다. 당시는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공공의료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진 때였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후보자 대부분이 공공병원 설립을 주요 보건의료 공약으로 내세웠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6120억원 규모의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 비전을 제시하며 600병상 규모 ‘서울형 공공병원’을 서울 서초구 원지동에 짓겠다고 약속했다. 서울 내에서 상대적으로 취약계층의 의료 사각지대인 동남권을 공공병원 확대로 지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김동연 경기지사도 공공의료 관련 6대 정책을 내놓으며 경기 북부와 동부에 공공의료원을 설립하고 응급의료센터도 대폭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제2의 인천의료원’ 건립과 영종도 지역 국립대병원 유치를, 박형준 부산시장은 침례병원 부지를 선제적으로 매입해 공공병원을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각각 제시했다. 하지만 예산 확보 실패 등의 이유로 실제 이뤄진 곳은 단 1곳도 없다.
지방병원을 확충하겠다는 정부·여당의 기조가 확인되면서 시민단체들은 지방병원의 예타 면제를 촉구했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타에서 탈락한 울산의료원과 광주의료원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나백주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지난 18일 기자설명회에서 “그동안 공공병원 신설 시·도가 예타 탈락으로 인해 좌초된 문제의 원인을 따져봤을 때 공공병원 설립 문제에 있어서는 경제성을 핵심으로 한 예타 과정을 전면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의료 확대가 필요하더라도 마구잡이식 병원 건립은 재정 악화, 효율성 저하 등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방 병원이 의료의 질을 유지하려면 의료 인력이 충분히 확보돼야 하고, 의료 수요도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이미 지역 병원에선 고질적인 필수과 의사 채용난을 겪고 있다. 환자도 서울과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실정이다.
주효진 한국정책학회 연구부회장(가톨릭관동대 의료인문학 교수)은 “병원만 새로 지으면 좋은 의료 서비스가 자연히 따라온다는 건 허상”이라며 “지역에 큰 병원을 짓는다고 해서 채용할 의사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환자가 쏠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사업성을 세밀히 따져보지 않고 건립한 지방 병원이 자칫 지자체의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부 경남지역에서 103년간 공공병원 역할을 해오다 2013년 폐업한 경남도립진주의료원이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누적 부채 279억원을 지방의료원으로선 불가피한 ‘착한 적자’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예산난을 겪던 지자체로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가까운 비효율적 운영이라는 반론도 팽팽했다.
전문가들은 환자가 없어 의사가 줄고 의료기기가 낡아지면서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다시 환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을 끊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복지부 관계자는 26일 “중앙정부가 지방 병원에 대해 일정 수준의 지원을 하더라도 실제 예산과 병원 운영은 오롯이 지자체 부담”이라며 “(정부가) 한정된 예산으로 모두 지원할 수 없는 만큼 지자체 차원에서도 지속 가능한 운영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이정헌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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