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3500억 달러 '선불' 압박에 원화값 1410원대로 추락

26일 미국 달러당 원화값은 1410원대까지 추락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난기류에 넉달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서 원화가치는 전날 종가(1400.6원)보다 미국 달러당 11.8원 하락한(환율은 상승) 1412.4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주간 종가 기준으로 지난 5월 14일(1420.2원) 이후 가장 낮았다. 이날 원화값 뿐 아니라 주식과 채권값이 동반 하락한 ‘트리플 약세’를 기록했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2.45% 급락해 3400선이 깨졌다. 특히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2.943%로 연중 최고치(국채값은 하락)를 찍었다.

이날 원화값이 1412원 선까지 미끄러진 것은 한미 관세 협상 불확실성이 고조된 영향이 크다. 3500억 달러(약 490조원)의 대미 투자금이 불씨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투자금은 선불”이라고 언급하면서, 외화 유출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졌다. 더욱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 측에 대미 투자 금액을 3500억 달러에 더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3500억 달러는 지난달 외환보유액(4162억9000만 달러)의 84%에 해당한다. 한국 정부가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보험 성격으로 미국에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요구하는 이유다.
예상보다 탄탄한 미국 경제에 힘입어 강달러가 고개를 든 것도 원화값이 맥을 못 추는 이유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확정치)은 1분기 대비 연율 3.8% 증가했다. 지난달 발표한 잠정치(3.3%)보다 0.5%포인트 상승한 데다 지난 2023년 3분기(연율 4.7%) 이후 7개 분기 만에 가장 높은 성장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주목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의 2분기 확정치는 2.6%로 잠정치(2.5%)보다 소폭 올랐다.
사실상 미국 경제는 견조하고, 물가는 여전히 들썩이면서 추가 금리 인하 명분을 잃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Fed가 다음달 금리를 인하할 확률은 한국시간으로 26일 오후 4시 30분 기준 87.7%로 하루 전(91.9%)보다 낮아졌다. 대신 미국 달러 베팅이 늘면서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가 단숨에 98선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한미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당분간 외환시장 변동성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가 요구한 대로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면 한국의 달러 곳간(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면서 원화가치가 폭락할 수 있다”며 “대미 투자 규모와 방식이 해결될 때까지 달러당 원화가치는 1400원대에서 등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위재현 NH선물 연구원도 “미국 달러가 강세를 나타낸 가운데 관세 불확실성 재료가 쌓여 단기적으로 원화값은 달러당 1420원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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