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한 반드시 노인이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
[이학민 기자]
노인이 된 아버지가 묻는다. "내가 너한테 산 사람이냐, 죽은 사람이냐." 그러자 중년의 아들이 반문한다. "건강하게 살아계시잖아요!" 이어진 아버지의 호소. "근데 왜 나한텐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 나도 너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어. 나는 죽지 못해 사는 거 아니야." 십수 년 전에 본 단막극 속 부자 갈등이건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노년에 관한 나의 무지한 착각을 일깨워 준 장면이기 때문이리라. 어떤 착각인가. 노인의 욕망은 희미할 테지.
이후에도 노인이 나오는 작품을 여럿 보았으나 그때만큼 인식을 바꿔준 사례는 많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노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나만큼 어리석은가. 궁금해도 찾아보기 겁난다. 기사 댓글 창이나 커뮤니티를 들여다봤다가는 혐오를 혐오하는 데 시간을 쏟게 될 테니까. 모른 체 할수록 알게 되는 것. 나는 노인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인생의 겨울을 맞닥뜨려본 적 없는 인간이 상상하는 노년은 이토록 납작하다. 막연히 두려워할 뿐 일상조차 떠올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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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뜻밖의 우정』(김달님, 수오서재, 2025) |
| ⓒ 수오서재 |
노년이란 끝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거듭나는 단계인가. 미뤄온 여행을 떠나듯 원하는 일에 "전력투구"(163쪽)하는 그들의 오늘이 마치 영화 속 최후의 십 분처럼 느껴진다.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이지만,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핵심 분량이라는 점에서. 서른만 넘어도 '끝났다'며 좌절하는 이들에게 '인생은 그런 게 아니야. 언제든 다시 피는 꽃 같은 거지' 알려주는 이야기에 나는 책을 들고 웅얼거린다. "사람들은 알까. 이 안에 꽃이 들었다는 것을."(142쪽)
노년의 가능성 뒤편엔 고난이 담겨 있다. 나이 든다는 건 내 몸과 불화하는 일. 세상 역시 환대하지 않는다. 하나 몸을 쇠하게 만든 세월은, 지혜를 주기도 한다. 메리 올리버의 시가 연상되는 정애자님의 말을 들어보자.
"내 늙음에 억울한 마음이 들 때면 지난 30년간 내가 산에서 봤던 자연을 떠올려요. (…) 겨울이면 모든 것이 사그라들어 빈 가지로 돌아가잖아요. 그건 초라한 일이 아니에요. (…) 자연에선 너무 당연한 흐름이죠."(82쪽)
세월 앞에서 인간과 자연이 변하듯 작가가 추구하는 주제 역시 작품이 누적되면 얼마간 변하기 마련이다. 첫 책 <나의 두 사람>(어떤책, 2018)에서 시작한 독자적인 이야기를 네 번째 책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미디어창비, 2023)로 일단락한 김달님 작가에게도 변화가 찾아온 듯하다. 신간 역시 노년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에서 새로운 페이즈(Phase)의 시작은 낯설지 않다. 다만 그의 세계를 오래 읽어 온 사람이라면 그 차이를 선명히 느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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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달님 작가의 저서들 |
| ⓒ 이학민 |
이 책에 담긴 것들이기도 하다. 저자는 노인들을 만나 뜻밖의 우정을 나눈다. 만남이 거듭되자 깨닫는다. 노년의 이야기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16쪽)이며 "서로의 삶을 궁금해하고 그 삶을 함께 희망"(122쪽)하는 것이 그에겐 "아주 익숙한 우정의 서사"(같은 쪽)임을. 여정의 동기는 프롤로그 또는 에필로그에서 가늠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다른 부분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저자의 책을 꾸준히 읽어 온 독자들의 눈이 느려지고 흐려졌을 대목에서.
글의 제목은 '나를 집으로 보내다오'. 이태 전 저자가 여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읽으며 나는 어림한다. 저자가 노년을 탐험한 이유는, 상실에 적응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조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노인들을 만나게 한 건 아닐까? 진실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여정의 끝에서 찾아온 변화(성장)를 눈여겨봐야 할 텐데, 그건 책으로 확인하시길 바라며 여기서는 그 이야기가 우리(독자)에게 남긴 것 즉, 내가 배운 것을 적어 보겠다.
실종 노인에 대한 슬픔을 담은 글에서, 저자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격언에 빗대 미래의 소망을 전한다. "한 노인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여러 눈길 중 하나가 되기."(189쪽) 그 눈길은 발견하는 눈길일 것이다. 발견하기 위해선 관심을 두어야 한다. 아직은 어색하고 여전히 멀게 느껴지지만, 나 역시 그래야만 한다. 왜? 살아 있는 한 반드시 노인이 될 테니까. 주변의 노인에 관심을 두는 일은 미래의 나를 미리 환대하는 일일 테니까.
인문서, 르포, 인터뷰집, 에세이의 성격을 고루 가진 이 읽기 쉽고, 쓰기 어려웠을 산문집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 둔다. 인생의 겨울을 수시로 답사한 사람이 미지의 시간으로 보내는 편지이자 안내서. 흘러가는 시간이 두려울 때마다 나는 이 책을 펼칠 것 같다. 인생책이 되었다는 의미인데, 그러므로 저자가 윤자님에게 전한 이 말을 저자에게 돌려주고 싶다. "다만 저는 선생님 덕분에 감사하는 마음과 희망하는 마음을 배웠어요."(120쪽)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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