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北 핵무기 충분히 확보" 뉴욕 발언…전문가 평가 엇갈렸다

정영교 2025. 9. 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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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 투자서밋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핵무기를 이미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미 정상회담 견인을 위한 대미용 메시지"라는 평가와 "북한은 물론 국내외에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나왔다.

앞서 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서 개최한 '한국경제설명회 투자 서밋' 행사에서 새 정부 안보 정책을 소개하며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핵무기를 이미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이며, 핵폭탄을 싣고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도 대기권 재진입 기술만 남겨둔 상황"이라며 "이대로 방치하면 매년 15∼20개 정도 핵폭탄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려되는 점은 북한이 이를 다른 나라에 수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며 "북한의 추가 핵물질·핵탄두·ICBM 생산, 추가 ICBM 개발, 해외 핵물질·핵탄두 수출을 중단시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안보적 이익이 있지 않나. 그러니 단기적으로 이를 중단시키고 중기적으로 감축하고 장기적으로 비핵화를 추진하자고 제안했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북·미 대화를 제안한 배경을 설명했다. 실용외교 기조에 따라 현실적인 접근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의지 천명에도 불구하고 교착상태에 머물고 있는 북·미 대화를 견인하겠다는 의지, 또한 북한의 핵 능력이 급속히 증강되고 있는 현실적인 상황 등을 고려해 나왔다고 봤다. 이 대통령이 '미국은 피스메이커, 한국은 페이스메이커'라며 북·미 대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면서도, 북핵 억제를 위해 '실현 가능한 옵션부터 검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단 해석이다.

이와 관련,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기본적으로 북·미 대화 견인을 위해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내놓은 메시지"라며 "북핵 문제의 시급성을 고려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접근으로 시작하면 궁극적으로는 비핵화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 대통령이 "국방비 지출을 대폭 늘릴 생각"이라고 언급한 것도 미 측의 국방비 증액 요구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몇몇 전문가는 이 대통령의 일부 발언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핵무기를 이미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는 발언은 자신들의 핵무기가 체제 보장용이라는 북한 측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사실상 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결(Freezing)이나 멈춤(Stop)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내비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결은 관리·통제의 기술적 조치일 뿐 근본적 해법이 아니며, 비핵화는 정치적 선언일 뿐 당장 실현 불가능한 구호"라며 "두 개념을 동시에 붙잡으려는 시도가 결과적으로 모호성과 불일치를 낳고 있다"고 짚었다.

이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 문제의 해법으로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골자로 하는 '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했지만, 실질적으로는 ENF(교류·정상화·동결)이나 ENS(교류·정상화·멈춤)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이 대통령의 "(북한의 핵물질·핵탄두를) 중기적으로 감축하자"는 제안도 "맥락상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로 하는 '핵 군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북한의 핵 수출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북핵 문제의 시급성과 외교적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언급으로 보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 핵 비확산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대통령의 발언이라는 무게감을 고려할 때 직접 핵물질·핵무기 수출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자칫 '북한이 진지하게 수출을 검토·모색하고 있다'는 식으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이 2022년 9월 한국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핵무력정책법'에 반영한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핵무기를 다른 나라의 영토에 배비(배치하고 준비)하거나 공유하지 않으며 핵무기와 관련 기술, 설비, 무기급 핵 물질을 이전하지 않는다"는 조항과도 배치된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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