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밴드, 독서, 글쓰기 같은

정은영 2025. 9. 2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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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즐겁고 가치로운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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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 기자]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멀리." - 러브홀릭스, '버터플라이' 중에서

10년 전쯤 이 노래를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들려 주던 생각이 난다. 특별히 슬픈 사연은 없었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학생들 하나하나가 생각나서 괜히 눈물이 났다. 아이들이 본 모습 그대로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노래 가사처럼 아이들이 빛나길 바랐던 것 같다.

얼마 전 다시 이 노래를 부르는데 나도 모르게 목이 잠겨와서 깜짝 놀랐다. 신기하게도 노래에 담겼던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 것이다.

이 노래는 우리 밴드의 9월 연습곡이다. 밴드 이름은 국과수 밴드. 드럼은 국어샘, 베이스와 기타는 과학샘, 건반은 수학샘이 담당한다. 매달 한 곡씩 노래를 정해서, 매주 월요일 일과후 한 시간씩 모여서 연습을 한다.

감사하게도 그 선곡의 권한(?)은 나에게 있다.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국과수밴드의 보컬이다. 노래 실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악기를 다룰 줄은 모르지만 노래를 좋아하고 소싯적 노래방에서 날뛰었으며 재밌는 거 같이 하자고 하면 빼지 않는 성격이라 보컬로 낙점(?)되었다.

매주 한 시간, 어떻게 생각하면 참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일이 바쁠 때는 부담스러운 일정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학교 연합 컨퍼런스 행사를 준비 중일 때, 30개의 중간고사 시험지를 검토해야 할 때, 사업 공모계획서를 다음날까지 써야 할 때가 그렇다.

하지만 나는 월요일 그 한 시간을 너무나 사랑한다. 4개의 악기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비록 일과 시간 후이긴 하지만, 직장에서 같이 어울려 노는 것은 은근히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선생님 역할이 아니어도 학교에서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었다.

한편으로 밴드는 나에게 나눔의 의미도 있다. 4명 중 3명이 50대 후반이셔서 그런지 내가 골라 온 노래들을 생소해 하신다. 그러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너드커넥션이나 브로콜리너마저 등의 밴드를 내 덕분에 알게 되었다고 좋아하셨다. 20대 자녀에게 아는 척 할 수 있어 뿌듯했다는 일화도 전해 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과 공유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이다. 그건 나만 그렇지는 않다. 베이스는 베이스대로, 드럼은 드럼대로 자신들의 악기 그 고유의 소리를 나누고 또, 합한다.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어울리게 만드는 걸 배우는 시간이 바로 그 월요일 한 시간이다.
 공연 당시의 모습.
ⓒ 정은영
지난 6월, 우리는 첫 공연을 했다. 학생 축제에 살짝 끼어서 하는 찬조 공연 말고, 우리 이름을 걸고 하는 첫 공연 말이다. 물론 학교 사람들에게만 홍보하는 작은 규모였지만 생애 처음 있는, 잔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연습한 곡 중 7개를 골라 학교 지하 소극장에서 열었는데, 소극장이 꽉 찰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공연을 보러 와 주었고 다행히 큰 실수도 없었다. 어설픈 노래에 많은 이들이 환호해 주니 그날 하루 종일 붕붕 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나에게는 깜짝 놀랄 관객이 있었는데, 바로 학부모들이었다.

2020년 처음 글쓰기 모임을 한 후 나는 학교에서도 비슷한 글쓰기 모임을 열었다. 좋은 건 나눠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 글쓰기 모임에서 알게 된 에세이 작가분을 학교로 모셔서 5회 정도로 모임을 진행했다. 학생과 학부모를 대싱으로 한 건데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학부모님들은 5회 모임 후에도 매달 만나 독서와 글쓰기를 나누고 있다. 교육청 공모 사업을 통해 책도 두 권이나 출간했다.

내가 공연에 오시라고 따로 초대도 안 했는데 순전히 내 카톡 프로필을 보고 몰래 찾아 온 것이 바로 그 학부모들이다. 국과수밴드 머리띠를 주문 제작해서 머리에 쓰고, 풍선을 불어 공연 내내 힘차게 소리치며 흔들어 주었다. 길게는 4~5년, 짧게는 1~2년 동안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해 온 우리 학부모 학인들이다.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친 그 감격 만큼이나 그분들의 열띤 응원은 나를 벅차오르게 했다.

어쩌면 밴드 활동과 독서·글쓰기 모임은 나에게 같은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닌 일, 언뜻 보기에 쓸모가 따로 없어 보이는 일, 그렇지만 아름다운 일, 즐거운 일, 가치로운 일. 그게 바로 두 모임의 공통점이 아닐까.

누군가는 바쁜 시기에 악보를 들고 소극장에 다녀오는 나를 보고 노래 부를 시간이 다 있냐고, 부럽다며 살짝 빈정거렸다. 또 누군가는 학교 예산을 독서·글쓰기 모임에 너무 많이 쓰는 게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참여하는 인원이 너무 적다며 비판하는 소리도 (전해) 들었다.

즐거움을 모르는 분들, 깊은 나눔을 모르는 분들에게 짧은 말로는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100명이 참여하는 행사 만큼이나 10명의 독서글쓰기 모임도 소중하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기회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한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말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밴드를 해요. 그리고 글쓰기 모임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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