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찰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이 품은 사연

문운주 2025. 9. 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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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의 '호국정신'에서 초의선사의 '다선일여'까지

[문운주 기자]

▲ 유선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 입구에 위치한, 1914년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전통 한옥 여관
ⓒ 문운주
▲ 유선관 카페 법정스님이 차를 마시고 남긴 흔적
ⓒ 문운주
해남 대흥사 유선관은 1914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전통 숙소로, 원래는 경내에 있었으나 지금은 입구 주차장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100년 넘는 세월을 간직한 이곳은 한옥의 소박한 객실과 구들 온돌, 시골스러운 식사가 특징이며 영화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계곡에 기대 선 한옥의 외경을 둘러본 뒤 유선관 카페에 들렀다. 법정 스님의 글귀, "홀로 마신즉 그 향기와 맛이 신기롭더라"가 액자에 걸려 있어 차 향과 함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18일 오후, 대흥사 탐방은 이렇게 유선관 카페에서의 차 한 잔으로 문을 열었다.

불교유산 안내소에서 일주문까지 숲길은 대흥사의 명품이다. 울창한 나무들이 초록빛 그늘을 드리우고, 그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든다. 산사에는 사시사철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을 풍경이 단연 으뜸이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솔향과 흙내음은 산사의 고요한 기운을 미리 전해 준다.

대흥사 답사는 곧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통도사와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와 함께 대흥사는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일곱 사찰 중 하나다. 이들 산사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앙과 의례, 수행과 강학이 이어져 온 살아 있는 불교 유산이다.

완만한 산기슭에 기대어 숲과 시냇물이 경계가 되고, 건물들은 자연의 흐름에 맞춰 비대칭적이고 자유롭게 자리한다. 그래서인지 걸음을 옮길수록 절집은 산의 일부가 되고, 산은 곧 사찰의 울타리가 된다. 자연과 함께 살아온 불교의 길, 그 길 위에 대흥사가 있다.

전각과 현판 그리고 조선 서예가들의 숨결
▲ 대흥사 대웅보전, 원교 이원사의 글씨
ⓒ 문운주
▲ 대흥사 백설당 무량수각은 추사김정희, 백설당은 원사 이원교의 글씨
ⓒ 문운주
▲ 침계루 침계(枕溪)’는 ‘시냇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계곡을 마주한 자리에 세워져, 물소리를 들으며 휴식과 사유를 즐기도록 지어진 누각다.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로 전하며, 유려한 필획이 계곡의 물결과 잘 어울린다.
ⓒ 문운주
대흥사 경내에 들어서면 전각보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현판이다. 전각의 얼굴이자 명필들의 숨결이 담긴 예술이다. 대웅보전 앞에서는 원교 이광사의 힘찬 필획과 추사 김정희의 파격적인 글씨가 겹쳐져 보인다. 두 거장의 정신이 만나는 자리에서 불전의 위엄은 더욱 깊어진다.

무량수각의 현판은 추사의 두텁고 강렬한 획으로, 이름 그대로 생명의 기운을 전해준다. 침계루에는 원교의 글씨가 물결처럼 흐르고, 가허루에는 창암 이삼만의 단정한 해서가 누각의 품격을 더한다. 해탈문에 이르면 원교의 글씨가 경계를 짓듯 서 있다.

여기에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에 얽힌 스토리까지 덧붙이면, 대흥사 답사는 단순한 산사의 탐방이 아니다. 조선 후기 두 거장의 서예 정신이 교차하는 예술의 무대이자 역사적 이야기의 현장이 된다.

제주로 귀양 가던 길,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와 함께 이곳에 들러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 글씨를 보며 "조선 글씨를 망쳐놓은 이의 현판을 어찌 이렇게 버젓이 걸어둘 수 있는가"라며 호통쳤다. 결국 원교의 현판은 내려지고, 추사의 글씨가 대신 걸렸다.

하지만 7년 뒤 귀양에서 풀려나 다시 대흥사를 찾았을 때, 추사는 태도를 달리했다. 스스로 떼어내라 했던 원교의 현판을 다시 달게 한 것이다. 젊은 날의 고집은 세월을 거치며 존중으로 바뀌었고, 대웅보전 현판은 그렇게 두 거장의 이야기를 함께 품게 되었다.

표충사와 호국불교 정신
▲ 표충사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킨 승병장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특히 서산대사 휴정(1520~1604) 과 그 제자 사명당 유정, 영규대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가운데 걸린 현판은 조선 정조 친필로, ‘표충(表忠)’ 두 글자를 힘차고 장중하게 새겨 넣어 사당의 위엄을 더한다. 이는 조선 왕실이 서산대사와 승병장의 호국정신을 공식적으로 기렸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 문운주
표충사라는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한 자태를 지닌 이곳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킨 승병장들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문 위에는 정조가 쓴 '표충사' 현판이 걸려 있다. 굵고 힘찬 필획에서 왕이 이들의 뜻을 얼마나 크게 여겼는지 느껴진다.

전각 안에는 서산대사를 비롯해 사명당 유정, 영규대사 등 승병장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표충사 앞마당에 서니, 산사의 고요함 속에서 전쟁과 혼란의 시대가 겹쳐 보인다. 종소리 대신 함성과 북소리가 울려오는 듯하다. 불교가 호국의 깃발을 들었던 순간이 바로 이곳에 서려 있다.

초의선사와 일지암
▲ 초의선사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 동상이다. 조선 후기 차문화를 중흥시킨 선사는 일지암에서 머물며 『동다송』 등을 저술했고, ‘차의 성인’으로 불린다. 지팡이와 발우를 지닌 동상은 수행자의 청빈한 삶을 상징한다.
ⓒ 문운주
▲ 일지암 초의선사가 1824년 창건해 40여 년간 머물며 한국 차 문화를 꽃피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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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대흥사 일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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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에서 동국선원을 지나 깊은 산길을 오르면, 작고 소박한 암자 일지암이 나타난다. 초의선사가 1824년 서른아홉 살에 세워 40여 년 동안 머물며 <동다송>과 <다신전>을 집필하고, 선과 차가 하나라는 '다선일여'의 삶을 실천한 곳이다.

현재 남아 있는 '일지암' 편액이 붙은 정자는 1980년 한국다인회 회원들이 초의를 기리기 위해 복원한 것이다. 가운데 방 한 칸을 두고 사면에 툇마루를 둘러, 네 평 남짓 아담한 띠집 구조를 하고 있다.

주변에는 차나무가 소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고, 바위틈에서 솟는 샘물이 대롱을 타고 돌물확으로 흘러든다. 옆에는 차를 달이던 돌부(차를 끓이는 돌로 만든 솥이나 화구)와 연못, 좌선석이 복원되어 있어 초의선사의 일상과 수행을 엿보게 한다.

임지암은 차를 매개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자하 신위 같은 석학들이 드나들던 교류의 장이기도 했다. 또한 소치 허련이 추사와 초의 두 스승의 가르침을 잇고, 훗날 진도 운림산방을 열어 미산·의재·남농으로 이어지는 남화의 화풍을 일으켜 세운 뿌리 역시 이곳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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