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60년 역사 한국뮤지컬, 진짜 해피엔딩의 길은

2025. 9. 2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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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

K뮤지컬, 창작 뮤지컬, 한국뮤지컬 등 다양한 용어들이 요즘 유행한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서구에서 유입되고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시장을 주도하며 성장을 이끌던 시기에는 라이선스 뮤지컬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창작 뮤지컬’이란 용어가 많이 쓰였다. 그 이후 K팝·K무비·K드라마 등이 세계적 선풍을 일으키고 한국 창작 뮤지컬 작품들도 속속 해외로 진출하면서 K뮤지컬이라는 용어가 더 많이 회자한다. 산업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어로 공연되는 모든 뮤지컬은 포괄적으로 ‘한국뮤지컬’로 보고 지식재산권(IP)의 소재, 제작의 실제, 로열티 귀속 주체 등에 따라 세분하는 관점도 있다.

「 1966년 ‘살짜기 옵서예’ 첫선
‘어쩌면 해피엔딩’ 토니상 6관왕
‘뮤지컬산업 진흥법’ 꼭 제정돼야

2026년이면 한국 뮤지컬이 60주년을 맞이한다. 1960년대 들어 국내에서 뮤지컬이란 장르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몇몇 시도가 있던 중에 1966년 예그린악단이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처음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완성도와 흥행 측면에서 한 획을 그으며 한국 창작 뮤지컬의 효시로 공인되고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작품이 뮤지컬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온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한국에서 기획되고 창작됐다는 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전후의 후진국 시절이던 60년 전에 전통 가무극이나 악극이 아니라 ‘뮤지칼 시리즈’란 타이틀을 내걸고 가수 패티김 주연의 뮤지컬을 무대에 선보였으니 누가 봐도 높이 기릴 만하다.

척박한 토양에서 지난 60년 세월 동안 꿋꿋하게 생명력을 이어온 한국 뮤지컬이 마침내 ‘환갑 선물’이라도 받을 때가 된 것일까. 우리 창작 뮤지컬 작품들이 아시아를 넘어 영미권으로 진출하고, 급기야 지난 6월 세계 최고 권위의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이 6관왕을 석권하는 개가를 올렸다. 한강 작가의 소설이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돼 읽히면서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에 못지않은 성과다.

요즘 관객이나 문화 평론가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질문을 받는다. “제2의 ‘어쩌면 해피엔딩’은 가능한가”라고. 뮤지컬협회 이사장으로서 자신 있게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사람이든 예술이든 산업이든 어떤 수준에 도달하면 그보다 더 나은 경지를 꿈꾸며 추구하기 마련이다. 높아진 눈높이를 낮추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제도와 시스템을 강화하고 민간과 공공이 협력해 어떻게 시너지를 키우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시점에 법적·제도적 첫 단추를 채울 수 있는 ‘뮤지컬산업 진흥법’(김승수 국회의원 대표 발의)이 국회에 상정됐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여야가 모두 이 법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협약해 업계의 기대가 크다. 정부 관계 부처도 세제 혜택이나 펀드 활성화 등 뮤지컬 지원 방안을 가다듬고 있어서 뮤지컬 업계는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

법안 하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뮤지컬 산업 진흥을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로 규정한 것은 의미가 크다. 법안에는 전문 인력 양성, 저작권 보호, 인프라 확충, 수출 지원, 전담 기구 지정 등 뮤지컬 산업에 필요한 과제를 망라하고 있어 반갑다. 이런 논의가 무르익어 가는 이유는 무엇보다 뮤지컬을 산업으로 진흥하면 관련 업계만의 이익이 아니라 고용 창출과 수출 증대 등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60년을 쉼 없이 달려온 우리 뮤지컬 분야는 어느 때보다 희망과 활력이 넘친다. 최근 개최된 ‘뮤지컬포럼 2025’에 토니상의 주역 박천휴 작가와 박은태 배우 등이 패널로 참여한 가운데 500여 명이 포럼장을 가득 채웠다.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입법박람회에서도 뮤지컬진흥법 부스엔 우원식 국회의장과 수많은 시민이 방문해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2026년에는 다양한 60주년 기념사업들이 준비 중이다. 이왕이면 환갑 선물로 뮤지컬산업 진흥법이 제정되고 ‘K뮤지컬 전용관’ 같은 인프라 확충 계획 소식이 들려오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뮤지컬 역사도 1막(60년)을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고, 더 멋진 2막을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한국뮤지컬의 진짜 전성기는 ‘살짜기’ 오는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물결’로 세계를 강타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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