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장벽 넘어… 고려인 아이들, 교육과 성장을 묻다
[홍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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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담회 현장 스케치 |
| ⓒ 고려인아이들과함께하는사람들(준) |
집담회에서는 고려인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겪고 있는 생생한 어려움이 쏟아졌다. 현장에는 고려인 대안학교 교장, 공립학교 교사, 다문화센터 강사, 고려인 공동체 활동가, 시민사회 활동가 등이 참여해 경험과 고민을 나눴다.
돌봄 공백과 언어 장벽, 아이들을 가로막다
고려인은 19세기 말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한민족의 후손으로, 구소련 지역 곳곳에 뿌리내렸다가 최근 다시 한국에 정착한 동포들을 말한다. 주 언어가 러시아어인 이들은 충분한 정착 지원과 교육을 받지 못해, 한국에서 자라는 아동·청소년들이 심각한 돌봄과 학습 공백을 겪고 있다.
리틀엔젤 다문화센터의 김알료나 강사는 "고려인 부모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장에서 일해 아이들을 일반 어린이집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학교에 들어가도 한국어가 서툴러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 특별학급은 정원이 한정돼 있고, 지원 기간도 짧아 아이들이 충분히 배우지 못한 채 일반 학급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신길중학교 신대광 교사는 고려인 학생들의 진학 현실을 전했다. 그는 "대학에 가고 싶어도 외국인 전형에 대한 정보가 없어 학생들이 홀로 준비해야 한다"며 "학교도, 학원도 제대로 된 안내를 하지 않는다. 서류는 본국에서 공증을 받아야 하는데 한두 달씩 걸리기도 한다. 결국 공부 의지가 있는 학생도 제때 준비를 못한다"고 토로했다.
"공교육이 버거워 다시 대안학교로"
글로리아학교 최마리안나 교장은 "한국 교과 과정은 한국 학생들에게도 쉽지 않은데, 고려인 아이들은 언어 장벽까지 더해져 버티지 못한다"며 "힘들어하다 결국 대안학교로 오게 되며, 일부 고등학생은 우울증이나 자해 충동까지 겪는다. 부모는 생계 때문에 하루 종일 일해 아이들의 정서적 고통을 살피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주민시민연대 사회적협동조합 최혁수 이사장도 "우리 대안학교는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병행하는 이중언어 교육을 지향하지만, 공립학교의 한국어 특별학급은 정원이 제한돼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한다"며 "기업과 병원, 은행은 고려인을 대상으로 러시아어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면서, 교육계만큼은 변화에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언어의 독점이 곧 권력의 독점이 되고, 이는 아이들의 학습권을 가로막는다"며 "15년 뒤 지금 태어난 고려인 아이들이 여전히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 채 고립된다면 지역사회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돈 디미트리 목사는 고려인 공동체가 안고 있는 불안정성을 전했다. 그는 "우리는 외국인 신분이라 언제 법이 바뀌면 한국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한국에서 살아도 러시아어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사이 아이들은 한국어도, 러시아어도 온전히 익히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놀 공간도, 대화할 친구도 없는 지역 사회"
한 고려인 지원센터 활동가는 "고려인 아동은 초등학생 때까지는 귀여움과 후원 덕분에 관심을 받지만, 중학생이 되면 언어도 서툴고 학교에서는 문제아 취급을 받는다"며 "고려인 청소년들이 갈 수 있는 공간도, 학원도 없고 한국 또래와 어울리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만 모여 방치된다"고 지적했다.
집담회에 함께한 교사와 활동가들은 공통적으로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환경에서의 교육은 실패"라고 입을 모았다. 고려인 아이들이 충분한 한국어와 러시아어 교육을 보장받고, 기초교육과 고등교육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눈치 보지 않고, 부모와 소통하며, 또래와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먼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번 집담회는 "언어를 못해서 공부를 못한다"는 단순한 진단을 넘어, 고려인 아이들이 학교·가정·지역사회에서 동시에 겪고 있는 고립과 불안을 드러냈다. "언어는 권리이며, 아이들이 웃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이 곧 교육의 출발점"이라는 메시지가 현장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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