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전 옛 냉장고, 전기 없이 돌린 조상들의 지혜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친근한 동물을 꼽아 보라면 결코 소를 빼놓지 못한다. 어릴 적 소는 친구나 다름없었다. 하교하면 책 보따리를 마루에 내던지고 소를 끌고 집을 나섰다. 또래들과 함께다. 크고 맑은 눈동자의 유순한 소도, 그때면 살짝 달뜨곤 했다. 안전한 둔덕에 소를 풀어두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는 망중한은 그 자체로 평화요, 행복이었다. 소는 그렇듯 가족의 일원으로 대하던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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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싸움 경기장 주말 이른 시간의 경기장 모습. 12시 경에 시작하는 경기를 관람하려고, 이미 몇몇이 관중석을 채우고 있었다. |
| ⓒ 이영천 |
이런 힘겨루기가 가야 문화권에서 특화하여 발전·계승되었다. 머리를 맞댄 소가 서로 이마와 뿔을 부딪쳐 힘을 겨루는 방식으로 획일화했다. 짧게는 몇 분, 길게는 수십 분을 맞선다. 힘에 부쳐 뒤돌아 꽁무니 빼는 소가 패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상 '소싸움'으로 부르며, 동물보호법에 예외로 규정된 '민속경기'로 분류하고 있다.
이 겨루기가 최근 논란이다. 소싸움에 이젠 전통의 공동체가 없다. 주인과 사육사, 그리고 사행성 경기만 남았다. 인식도 바뀌었다. 존중 받아야 할 생명권에 대한 폭력이다. 자기 결정권 없는 소가 감내하는 학대와 고통이다. 이로써 소싸움 폐기를 주장한다. 이런 인식의 확산으로 소싸움을 폐기한 자치단체도 이미 여럿이다. 소를 죽이는 스페인 투우는 국제적 여론으로 폐기 추세다. 투견, 투계 등 각 나라의 전통이던 경기들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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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도읍성(1872년지방지도_부분) 네모난 청도읍성이 간략하면서도 고졸하게 표현되어 있다. 청도천을 '大川(대천)'이라 불렀나 보다. |
| ⓒ 서울대학교_규장각_한국학연구원 |
기후 위기다. 여름이 공포의 계절로 변해버렸다. 우리 뿐 아닌 세계적 현상이다. 화석 원료 소비가 재촉한 지구의 반격이다. 그럼에도 신기술은 지금과 차원이 다른 엄청난 전력량을 요구하고 있다. 역설이자 악순환이다. 에어컨과 냉장고의 비중은 얼마일까?
옛날엔 여름을 묵묵히 보냈다. 시원한 옷과 부채, 나무 그늘, 목욕만으로 차분하게 견디며 넘겼다. 왕족이나 고관들에겐 한여름에도 얼음이 공급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예외로 한다면 말이다. 조상들의 지혜를 어찌 따르랴. 한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보관하는 매우 과학적인 방법이 있었다. 한여름에 얼음을 사용케 해준 아주 고마운 시설이다. 바로 석빙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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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도석빙고 청도읍성 동문 밖 언덕에 동-서로 길게 자리하고 있는 석빙고 모습. 궁륭 천장을 이룬 홍예가 여전히 튼실해 보인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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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빙고 석실 서쪽 끝단에서 바라 본 청도석빙고의 석실. 돌벽과 지상으로 돌출된 홍예가 석실의 구조를 간략하게 보여준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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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빙고 전면 좁은 문의 흔적과 계단, 홍예 사이로 널돌이 걸린 간격이 가지런하다. 바닥은 판석을 깔았다. 공기 흐름을 차단하려는 장치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
| ⓒ 이영천 |
녹은 물이 흘러 빠지도록 바닥엔 미세한 경사를 두고, 흙을 다져 판석을 깔았다. 석실 위에 풀을 심어 빛과 열을 반사하고, 풀의 습기로 온도를 낮췄다. 멀리서 보면 큰 고분처럼 보였다.
석빙고 원리는 공기 흐름 차단이다. 석실은 공기 흐름이 최대한 제약 되는 구조다. 차가운 공기는 가두고, 더워진 공기는 밖으로 빼냈다. 또한 석실 위와 벽은 석회와 진흙을 발라 스며드는 공기와 빗물을 막았다. 얼음을 쌓을 때도 단열재를 활용한다. 얼음과 얼음, 벽과 천장 틈 사이에 왕겨, 짚, 톱밥 등을 채워 넣어 외부 열기를 차단했다.
이런 원리와 구조로 평균 0℃ 안팎이 꾸준히 유지된다. 제빙이 아닌 보관 시설이라는 한계에도, 그 옛날 삼복염천에 얼음을 사용할 수 있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300살 먹은 청도석빙고 석실은 여전히 차가운 계절을 담고 있었다.
청도석빙고(1713) 외에 남아 있는 석빙고는 현풍(1730), 안동(1737), 경주(1738), 창녕(1742), 영산(18세기 후반) 등 대부분 18세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강변이라면 어느 곳이나 석빙고가 있었다. 한강을 따라 여럿이던 석빙고도,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냉장고 일반화로 효용을 다한 석빙고 운명이다. 서울 동빙고와 서빙고 등 얼음 창고가 있었던 곳이 지명으로 남았을 뿐이다.
청도읍성
읍성이 북쪽으로 열린 벌판을 유유히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북문이 읍성 정문이리라는 짐작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이 길이고, 길은 이음이다. 북문을 나서면 달구벌로 이어지는 길이다. 분지가 껴안은 벌판이 제법 넓다. 서쪽 비슬산에서 발원한 청도천이, 읍성 앞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벌판을 적시고 밀양강에 머리를 풀어, 낙동강에 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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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도읍성 북벽 성벽 앞에 연지, 그 멀리로 둥근 형옥이 보인다. 층이 진 성벽이 가지런 하고, 성안으로 연못과 정자가 보인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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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도읍성 관아 초등학교와 담장을 사에 두고 앉은 관아. 남문과 남쪽 성벽 근처에 'T'자 모양으로 서쪽을 바라보고 앉았다. 원래 동향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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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도객사(道州館) 청도읍성 4대 문을 잇는 엇갈린 '十'자의 결정점에 앉은 청도객사. 객사 앞 삼문 옆에 척화비가 세워져 있고, 객사는 도주관(道州館)이란 현판을 달았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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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심정과 성벽 성안의 가장 낮은 곳으로 물이 고여 만든 연못. 연못에는 연잎이 푸르고, 멀리 높아지는 성벽 밖으로는 청도 들판이 광활하다. |
| ⓒ 이영천 |
읍성이 대체로 고즈넉하다. 사람들이 옛날인 듯 아닌 듯 살고 있어 더욱 정감이 간다. 높은 건물이 없어 평안하고, 곳곳에 텃밭을 낀 집들은 아담하다. 이런 순고한 맛에 반했는지, 성안에 예스러운 카페 몇이 단정하다.
집 모양이나 사람들 옷매무새만 바뀌었을 뿐, 삶은 조선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예스럽고 멋스럽다. 순박해 창고한 옛 맛이 절로 우러난다. 숨 헐떡거리는 소싸움이 아니어도, 읍성은 충분히 청도의 자랑거리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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