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계 신성 미야케 쇼 "심은경 통해 국적과 성별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이선필 2025. 9. 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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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th BIFF] 경쟁 부문 초청 <여행과 나날> 미야케 쇼 감독 일대일 인터뷰

[이선필 기자]

 영화 <여행과 나날>을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
ⓒ 엣나인필름
심은경(극 중 '이')이 쓰는 글들이 영화로 구현되고, 그 안에서 두 남녀 캐릭터가 여름 바다를 배경으로 묘한 감정을 주고받는다. 극작가 이는 스스로를 재능 없는 작가로 소개하면서도 설산 깊은 여관에 이를 때까지 쓰고자 하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일본 영화의 미래로 꼽히는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 <여행과 나날>의 주요 설정이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설한 경쟁 부문 초청작인 이 작품은 특정 사건과 갈등의 해소가 중요한 게 아닌, 복합적인 정서의 감응이 중요해 보였다. 지난 8월 진행된 제78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한 미야케 쇼 감독을 지난 20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직접 만났다.

심은경이어야 했던 이유

<여행과 나날>은 일본 만화의 거장 쓰게 요시하루의 <해변의 서경>과 <혼야라동의 벤상>(혼란스러운 벤씨)를 원작으로 한다. 제목처럼 여름과 겨울이 주 배경으로 여름 편은 작가 이가 쓰는 영화 속 이야기로 고향을 찾은 소년 나츠오(만사쿠 다카다)와 여행 온 소녀 나기사(유미 카와이)의 만남을 다룬다. 겨울 편은 홀로 여행을 떠난 이가 산 중턱에서 무뚝뚝한 여관 주인 벤조(시로 사노)와 함께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는 과정을 그린다.

앞선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서 미야케 쇼 감독은 두 편의 만화를 보고 만화의 본질을 추구하는 작가의 힘을 봤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화를 결심한 것도 영화의 본질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결국 본질은 놀람 아닐까. 살면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만나면 당혹스럽기 마련이다. 근데 또 인간이기에 적응해간다. 예술을 접하는 순간 그런 놀라움이 반복된다고 생각한다. 영화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의 공통점이라 생각한다. 그 놀람 때문에 감각이 새로워지거나 변한다. 쓰게 요시하루 작가님의 작품은 만화의 관습과 규칙에서 완전 탈피해 있는데 계속 그 만화를 보면 놀람의 연속이다. 초현실적인 느낌이 있는 작품도 있는 반면, 제가 영화화 한 두 작품은 뭔가 굉장히 세련된 이야기 흐름을 보여주고 있거든. 그래서 저도 가능한 영화에서 장면이 바뀔 때마다 놀람을 주면서 어떤 아름다움으로 안내하고 싶었다."

그 아름다움을 영화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원작 만화의 설정을 그대로 따를 필욘 없었다. 애초에 남자가 주인공이었던 설정을 여성으로, 국적마저 바꾼 건 다름 아닌 심은경을 섭외하기 위함이었다. 2022년경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관객과 대화 행사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미 서로를 알아보고 있었다. 당시 감독의 작품을 미리 본 심은경이 먼저 행사 참여를 문의했을 정도였다고. 당황할 때마다 이가 한국말로 중얼거리는 설정도 심은경의 평소 말투를 참고한 결과물이었다.

"남자 만화가가 주인공이었는데 이미 만화 자체가 완벽한 작품이라 그대로 영화화하는 건 큰 의미가 없겠다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 한국인뿐 아니라 아시아, 혹은 남미 독자들이 내 얘기라 느낄 만큼의 보편성이 있다는 걸 깨닫고, 원작을 다시 읽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 심은경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떠올렸고, 그가 가지고 있는 영혼과 우리 작품이 좋은 공명을 할 것이라 생각해 캐스팅하게 됐다.

사실 그런 사람은 처음 만났다. 같이 일하기 전에도 그 후에도 심은경씨 같은 사람은 못 만날 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작업하면서 그는 정말 솔직하고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을 개인적으론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분이었다. 그리고 주변을 그렇게 잘 챙기는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이더라."
 영화 <여행과 나날>의 한 장면.
ⓒ 엣나인필름
 영화 <여행과 나날>의 한 장면.
ⓒ 엣나인필름
영화에서 아주 가끔 내뱉은 심은경의 한국어, 그리고 일본 작품을 쓰면서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표현하는 대목은 글을 다루는 창작자로서 감독 본인의 고민이 투영돼 보였다. 미야케 쇼 감독은 이 말에 동의하면서 "언어로 완벽하게 모든 걸 표현할 수 있다면 영화 같은 다른 예술이 필요 없을 것"이라 답했다. 그래서 <여행과 나날>은 더욱 사건 중심이 아닌 정서의 환기가 중심이 돼야 했다는 게 감독의 변이었다. 배우 및 스태프들에게 '각자 역할에 충실하되 자유롭게 대화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쓴 것도 그런 모호함을 뛰어넘기 위한 감독의 독려였을 터. 이를테면 여름 편에서 짝이 안 맞는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거나, 소녀가 하필 가운데 손가락에 붕대를 감은 채 다니는 설정도 감정적 환기를 위한 감독의 세밀한 설계였다.

"다른 얘기지만 그런 디테일을 딱 짚어서 물어봐주셔서 너무 기쁘다. 붕대는 아무래도 계속 소녀에게 걸리적거리는 것이겠지. 소년과 대화할 때도 바다에 나갈 때도 신경쓰이는 무언가인데, 그 설정은 결국 과거의 상처라도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걸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하필 중지인 것도 일종의 유머다. 손가락 욕을 못 하는 상태잖나. 결국 이 사회에 지고 있다는 느낌, 그 사회를 향해 대항하지 못하는 걸 상징하고 싶었다.

소년의 슬리퍼가 짝짝이인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현실에서 좀 붕 뜬 느낌이랄까. 다른 사람 신발을 신고 있다는 건 자기 인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 인생에 편승하는 느낌에 가깝다. 자기만의 내면, 이야길 찾지 못한 채 뭔가 망겨진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다."

철저한 극장주의자

이 대목에서 미야케 쇼 감독은 <여행과 나날>을 관통하는 정서를 두고, 사라지기 쉬운 것의 소중함을 찾는 마음이라 설명했다. 여름 바다의 배경이 된 곳은 도쿄에서 배로 3시간 거리인 코우즈 섬 해변이었고, 겨울은 야마가타현 쇼나이 지역에 있는 작은 산맥이다. 감독은 "이번 영화는 쉽게 말하자면 거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촛불을 지키는 것과 같고, 눈 속에서 솜 뭉치를 찾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시끌벅적한 현장보단 모두가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에서 촬영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감독의 전작 <새벽의 모든> <너의 눈을 들여다 보면> 등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할 때의 기준이 궁금했다. 참고로 미야케 쇼 감독은 차기작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역시나 원작이 있는 작품이었다. 동시에 그는 "최근 작품들이 소설이나 만화가 원작이었는데 이후엔 직접 본인의 각본을 써서 연출할 생각"이라 귀띔했다.

"가장 절대적인 건 등장인물에 제가 흥미를 느끼느냐다. 주로 제가 가지고 있지 않는 걸 가진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예를 들어,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사람, 솔직한 사람이 내면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끌리는 편이다. 사실 한국과의 합작도 흥미가 있는데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단 주제가 먼저 정해져야 한다고 본다. 한국은 제가 굉장히 친근감을 느끼고 있기에 이번 작업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영화 <여행과 나날>을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
ⓒ 엣나인필름
하마구치 유스케, 야기라 유야 등과 함께 차세대 일본 영화인이자 희망으로 꼽히는 그다. 대학생 시절 극장에서 5년여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꿈을 키웠던 그는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극장주의자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금껏 영화를 만드는 데에 고민도 있지만 즐거움도 있었다. 잘 만들고 싶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들이 많기에 계속해서 영화를 찍고 있는 것 같다. 이게 내면의 동기고, 외부적으론 전 정말 극장에서 자랐다고 할 정도로 그곳을 좋아한다.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관객으로서도 5일 연속으로 찾은 적도 있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제가 영화에 대해 품고 있는 신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집에서 인터넷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영상을 잘 보지 않는다. 집에선 책 보는 게 훨씬 좋더라. 제게 영화라는 건 극장에 가서 느껴야 하는 무엇이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극장에서 얼마나 즐겁고,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느냐 고민하는 것 같다. 그런 영화를 계속 만들어가고 싶다."

동시에 미야케 쇼 감독은 J리그와 프리미어 리그를 즐겨보는 축구광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 또한 그렇다고 얘길 하니 열심히 공부해서 꼭 축구 얘길 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작업하지 않을 땐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길 즐긴다는 그에게 끝으로 솔직한 인간상의 정의를 되물었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생을 홀로 사는 게 아니기에, 사회 속에서 살다 보니 주체적으로 살기 쉽진 않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받기 위해 혹은 누군가에게 맞추기 위해 내 것이 아닌 행동을 하다 보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기도 하는 것 같다. 진정한 행복이란 건 결국 이 사회에서 어떻게 나답게 살아가는 것인가 묻고, 찾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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