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에 180도 달라진 트럼프 "우크라, 원래 영토 그 이상 가능"

“도널드 트럼프가 지금까지 유엔 총회에서 한 연설 중 가장 황당했다. 마치 선거 유세 같았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시종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무능하다고 비판한 트럼프 대통령 연설에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내놓은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 제한 시간 15분을 훌쩍 넘긴 ‘54분 연설’에서 상당 부분을 자신의 강력한 경제ㆍ국방 정책, 반(反)이민 정책으로 미국이 진정한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며 업적을 자화자찬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취임 7개월 만에 7개의 전쟁을 종식시켰다. 이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한 업적”이라고 주장하며 유엔을 향해서는 “그동안 도움을 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공허한 말뿐이었다”고 비난했다. 각국 정상들과 세계 협력을 논의해야 할 유엔 총회에서 유엔의 존재 이유 자체에 대해 극히 냉소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54분 연설 대부분 청중 ‘침묵’

트럼프 대통령은 “프롬프터가 작동하지 않으면 더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겠지만 프롬프터를 조작하는 사람은 큰 곤경에 처할 것”이라며 “유엔이 내게 제공한 것은 고장난 프롬프터와 에스컬레이터뿐”이라고 비꼬았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연설 내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던 청중석에서 거의 유일하게 웃음소리가 들렸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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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나라, 지옥으로 가고 있다”

최근 영국ㆍ캐나다ㆍ호주 등 서방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를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의 만행에 대한 너무 큰 보상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핵화 논의를 제외한 북ㆍ미 대화에는 응할 수 있다고 밝힌 북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취임 후) 영국ㆍEUㆍ일본ㆍ한국ㆍ베트남 등 수많은 국가와 역사적인 무역 합의를 잇달아 성사시켰다”며 무역 협상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연설을 두고 영국 BBC 방송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사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며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트럼피즘의 원형’으로, 비판자들에게는 ‘제정신 아닌 트럼피즘’으로 보일 것”이라고 짚었다.
우크라에 “본래 영토, 그 이상 이룰 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본래 모습을 그대로 되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이상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간 우크라이나를 겨냥해 “카드가 없다”며 사실상 영토 일부 포기를 전제로 한 종전 협상을 윽박질렀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다. 지난 8월 알래스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우크라이나 종전 해법을 논의하고 러시아ㆍ우크라이나ㆍ미국 3국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종전 외교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는 가운데 나온 ‘친러 행보’의 대반전이다.
“나토 영공 침범 러 항공기 격추해야”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그의 결단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치켜세웠다. 그간 우크라이나 지원론을 펴 온 공화당 내 전통 보수 진영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푸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로저 위커 상원 군사위원장) 등 호응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 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국가들이 러시아 항공기가 자국 영공에 진입하면 격추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다. 최근 러시아 드론ㆍ전투기가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등 나토 회원국의 영공을 침범하는 사례가 늘면서 회원국 간 집단방위 조항을 명시한 나토 5조 발동 가능성을 러시아에 경고하는 등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을 여전히 믿느냐”는 물음에는 “한 달쯤 지난 뒤 알려주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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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트럼프’ 밀레이 만나선 “돕겠다”
이날 유럽 동맹국, 러시아 등을 ‘모두 까기’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남미의 트럼프’라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에게는 따뜻한 호의를 베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대통령을 만나 “우리는 아르헨티나를 도울 것이다. 아르헨티나에 구제금융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세계은행은 아르헨티나에 공공부문 자금 조달과 민간부문 투자를 결합한 패키지 형태로 총 40억 달러(약 5조5000억 원) 규모의 자금 지원에 나서겠다고 했다. 세계은행은 “아르헨티나에 향후 몇 달 동안 최대 40억 달러를 투입할 것이다. 이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개혁 의제를 도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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