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돌연 취소... 교육부장관님, '내 팔 하나쯤 내줄 각오'가 필요합니다

서부원 2025. 9. 2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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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편지] 교육'혁명' 시급한 공교육 현장, 대의 앞에 좌고우면할 여유도 권리도 없습니다

[서부원 기자]

 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5.9.12
ⓒ 연합뉴스
늦었지만, 장관 임명을 감축드립니다. 교사 출신이 교육부 장관이 되어야 함을 주야장천 외쳐온 터라 장관님이 지명됐다는 소식에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 아이처럼 설렜습니다. 3선의 교육감까지 역임하셨으니 학교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장관님께선 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장관님을 직접 뵌 적이 있습니다. 몇 해 전 17개 시도 교육감을 모신 EBS 특집 방송 때 교사 대표로서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그때 몇몇 교육감님께 현안에 대해 질문했는데, 되레 제가 떨리고 손에 땀이 나서 혼났습니다.

우선, 느닷없이 장관님께 편지를 올리게 된 이유부터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고교학점제 개선안을 발표하려다 불과 두어 시간을 앞두고 전격 연기되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교육개혁의 시작부터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교육개혁이라는 범주 안에 고교학점제는 일개 소주제도 못 되지만, 장관님의 취임 이후 첫 번째 내놓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하여 내용과 절차에서 섬세하고 치밀한 접근이 요구됩니다. 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티끌만 한 빌미라도 주어서는 곤란합니다.

어차피 2학기가 시작되었고, 전국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중간고사 기간에 돌입하였습니다. 지금 고교학점제 개선안을 발표한다고 해서 남은 학기 중에 크게 달라질 건 없습니다. 서두르다간 일을 그르치기 십상입니다. 개선안에서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실효성'이라는 전가의 보도

잠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여기서 고교학점제 개선안에 대한 소견을 말씀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장관님께서 너무 작은 것에 매몰되어 정작 교육개혁이라는 대의에 소홀해질까 두렵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듯, 이른바 '늘공' 관료들에게 휘둘리면 개혁은 필패입니다.

"그래서 대안은 뭡니까?" 십수 년째 교육 관련 기사를 써온 제가 요즘 메일 등을 통해 자주 받게 되는 질문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공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는 건 좋은데, 비판만 하지 말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입니다. 글을 쓸 때마다 나름의 대안을 덧붙였는데, 그들의 성엔 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처음엔 꼬박꼬박 답변을 보냈는데, 그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요즘엔 그냥 '스킵'합니다. 스크롤 하다 보면, 욕설 섞인 답글도 많아 괜히 제 마음에 생채기만 남습니다. 몇 줄짜리 답글이 아닌, 제 주장을 반박하는 기사가 올라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들먹이는 건, '실효적인' 대안입니다. 지금껏 수많은 기사를 통해 제시한 대안은 죄다 실효성이 없다며 무질러버립니다. 기실 그들이 요구하는 건, 붕괴 직전인 우리 공교육을 쾌도난마식으로 일거에 정상화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 대책입니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건 그들도 모르지 않습니다.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이미 교육의 관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습니다. 교육과정을 아무리 개정하고, 대입 제도를 조변석개하듯 고쳐도 아이들의 고통이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심해졌습니다.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 '실효적인'의 반대말은 '근본적인'입니다. 근본적인 변화를 강조하면, 그들은 대번 실효적이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모두가 변화로 인해 혼란스러워하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진짜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런 대안은 없습니다.

거친 비유일지언정, 남의 목숨을 취하고자 한다면 내 팔 하나는 내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교육개혁이라고 다를 바 없습니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손해도 입히지 않고, 타인의 고통만 전제되는 개혁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질 뿐입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동서고금의 개혁들이 평지풍파만 일으킨 채 대부분 좌초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선 개혁의 실패는 다음의 개혁에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좌절감으로 인해 그 어떤 개혁도 실패하고 말 거라는 집단 기억을 강화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된 '개악'으로 새까맣게 탄 공교육 불판, 통째로 갈아엎어야

단언컨대, 제도의 개선만으로는 얽히고설킨 우리 교육의 난맥상을 풀 수 없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교육개혁은 명실공히 환골탈태의 '교육혁명'이어야 합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개혁의 성공은커녕 반동 세력의 준동조차 피할 길이 없어집니다.

장관님께서 더 잘 아실 테지만,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대입 제도만 해도 '개선'이라는 이름을 내건 '개악'의 역사였습니다. 역대 정부마다 교육개혁을 부르댔지만, 매번 얼마 못 가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정부 때부턴 국정 과제에 오르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특히 지난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은 '반교육'의 끝판왕이었습니다. 공교육의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생뚱맞게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목매단 건 격화소양 격이었습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 미국 유학파 경제학자 출신이었으니 배가 산으로 갈 건 능히 예견된 바였습니다.

'계륵'이 된 고교학점제의 파행도 거기서 비롯됐습니다. 학교 현장을 전혀 모르는 장관이 제도의 취지와 대입의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답시고, 고교학점제와 양립할 수 없는 내신 등급제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바뀐 거라곤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조정한 것뿐입니다.

두 제도의 '공존'은 지금 만신창이가 된 고등학교의 현실이 증명하듯 '게도 구럭도 다 잃은'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둘의 장점만 취해 한 교육과정에 욱여넣으려다 보니, 학교 현장은 온갖 편법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교사와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까지도 "이게 대체 뭐 하자는 거냐"는 볼멘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른바 '교육 선진국'으로부터 아무리 좋은 제도를 끌어와도 우리의 현실에 대입하는 순간 취지는 훼손되고 변질됐습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이 그랬고, 수행평가가 그랬습니다. 아이들조차 이를 불공정과 편법, 관행의 온상으로 여길 만큼 이미 반교육적 제도로 낙인찍혔습니다.

이젠 온 국민이 우리 공교육을 향해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며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편법을 또 다른 편법으로 보완하는 건 미봉책일뿐더러 우리 교육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자초하는 악수입니다. 취지를 살리기는커녕 온갖 편법만 난무한다면 폐지하는 게 최선일 수 있습니다.

'교육은 결코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이 무색해진 요즘입니다. '선무당 사람 잡는' 격의 어쭙잖은 교육 정책의 홍수 속에서 교사들은 빠르게 지쳐가고 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효능감은커녕 깊은 좌절감과 열패감이 전국 초중고 교사들의 머리와 가슴을 옥죄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 공교육은 고교학점제 하나에 애면글면할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매번 실패로 귀결된 역대 정부 교육개혁의 흑역사를 아신다면, '개선'과 '보완', '수정' 따위의 하나 마나 한 관료주의적 언사에 현혹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 공교육에는 '혁명'이 필요합니다.

이 땅의 교사들은 '교육혁명'에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존감에 생채기가 났을지언정 교육자적 소명과 열정을 꺼트리진 않았습니다. 부디 장관님께서 '새까맣게 탄 공교육의 불판을 통째로 갈아엎는 데' 앞장서 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학교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장관님께는 '교육혁명'의 대의 앞에 좌고우면할 여유도 권리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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