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재난사태 해제에도 여전히 불안한 강릉 민심... 왜?

진재중 2025. 9. 24.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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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단비로 회복된 오봉저수지 저수율, 반복되는 재난에 안도와 불안 공존

[진재중 기자]

강원도 강릉시 오봉저수지 전망대에 서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 내린 비로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빠르게 회복됐다. 한때 11%까지 내려갔던 저수율은 60%를 넘겼고, 검 붉게 얼굴을 내밀었던 바닦은 불어난 물에 잠겨 자취를 감췄다. 시민들은 모처럼 안도의 숨을 내쉬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다.

"내년엔 괜찮을까?"

할아버지 한 분이 던지는 안도와 불안의 외침이다.

저수지 관리만 잘해도 강릉 물 부족 해결 가능
▲ 오봉저수지 안도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강릉시민들
ⓒ 진재중
강릉은 지형상 물이 부족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백두대간을 품고 있는 오대산, 대관령, 삽당령, 닭목령은 풍부한 수자원을 공급할 수 있는 산줄기와 계곡을 갖추고 있다. 강릉시 남쪽의 옥계저수지에서 북쪽 향호저수지까지 총 11개의 저수지가 있고, 주문진 신리천을 포함한 크고 작은 8개의 계곡도 자리한다. 전문가들은 이들 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강릉이 안정적인 물 공급이 가능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고 분석한다.
▲ 대관령 강릉은 백두대간을 품고있는 대관령, 삽당령, 닭목령 등 산간 계곡이잇어 수자원이 풍부한 도시다
ⓒ 진재중
강릉의 하천은 경사가 급하고 강폭이 좁아 비가 내려도 물이 곧바로 동해로 흘러가 버린다. 문제는 이렇게 빠져나가는 물을 효율적으로 저장할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식수의 87%를 책임지는 오봉저수지가 중심 역할을 해왔지만, 장기 가뭄 상황에서는 대응이 어려웠다. 대체 수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도암댐 역시 24년간 사실상 방치돼 위기 상황에서 충분한 물을 공급하지 못했다.
23일 8시 기준 강릉의 11개 저수지 중 5곳은 저수율이 100%를 넘어 물이 넘치고 있다. 이는 저수지 관리가 물 부족 문제 해결의 핵심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강릉지역 저수지 저수율. 삼교·경포·언별·옥계저수지는 22일 오후 9시현재, 저수율이 100%를 넘고 있다.
ⓒ 진재중
가뭄 대응 근본 대책 여전히 제자리

강릉의 가뭄 대응은 매년 제한급수와 절수 캠페인에 머물고 있으며, 대체용수 확보나 다목적댐 건설 같은 근본 대책은 수십 년째 진전이 없다. 결국 지역 갈등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도암댐에만 의존해 온 것이다.

"비만 오면 해결된다"는 안이한 인식도 문제를 키웠다. 실제로 이번에도 지난 17일부터 내린 100㎜가 넘는 집중호우로 저수율이 급격히 반등했다.

마른장마, 돌발가뭄, 기록적 폭염과 폭우 등은 기후위기의 한 단면으로, 시민들은 앞으로 이러한 극단적 현상이 더 잦아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강릉 포남동에 거주하는 이재영(52)씨는 단수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는 수돗물 한 방울이 금보다 귀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서해와 남해안은 폭우로 피해를 입는 동안 동해안은 여전히 가뭄에 시달리는 현실이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강릉은 2~3년에 한 번꼴로 가뭄을 겪어왔지만, 매번 비만 기다릴 뿐 근본적인 물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이번 사태는 결국 시의 안일한 물 관리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닥을 드러내 강릉시민을 위기에 빠트렸던 오봉저수지
ⓒ 진재중
이번 강릉 가뭄 대응 과정에서 부처 간 역할 분담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각각 전력댐과 다목적댐을 관리했지만, 지역 단위의 소규모 저수지까지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용 저수지 관리에 집중했으나 식수 확보와는 연결되지 않았다. 기상청은 가뭄 예보를 제공했지만 실제 대응을 지휘할 권한은 없었고, 행정안전부는 재난관리 주무부처임에도 소방차를 통한 급수 지원 정도에 머물렀다.

결국 국방부가 군용 급수차와 헬기를 투입하고, 해양수산부 소속 해경 경비정까지 동원되는 총력전이 펼쳐졌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강릉 가뭄은 많은 인력과 장비가 투입됐음에도 시민들이 필요한 물의 절반가량만 공급되는 한계를 드러냈다. 관리 주체가 분산돼 있어 재난 상황에서 신속한 의사결정과 통합 대응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뼈저리게 드러난 사례였다.

강릉 시민 한태경(57)씨는 군 차량과 헬기, 해군 함대까지 동원될 만큼 전쟁 같은 상황이었지만 오봉저수지 채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군용헬기까지 동원, 오봉저수지에 물을 공수했다
ⓒ 진재중
 전국에 소방차가 북강릉운동장에 집결하고 있다.
ⓒ 진재중
 하루에 400여대 이상 물수차가 동원돼 오봉저수지에 물을 공급했다.
ⓒ 진재중
강릉의 사례는 결국 '누가 물을 책임질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이번에 비가 내려주지 않았으면 강릉시의 물부족 문제는 그야말로 재난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강릉 시민들은 한결같이 "이번 단비가 아니었다면 오봉저수지를 채우는 일은 요원했을 것"이라며 하늘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동시에 이번 경험을 계기로 물 관리 체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 강릉시 청사 물부족사태로 강릉시의 행정부재와 물관리 정책의 문제점이 노출됐다.
ⓒ 진재중
'물의 도시' 강릉을 위한 질문

강릉은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관광도시이지만, 정작 시민들의 식수는 늘 부족하다. 특히 여름철에는 관광객까지 몰리며 시민들이 쓰는 물보다 더 많은 수요가 발생한다. 강릉의 가뭄 문제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이 함께 고민해야 할 '대한민국의 물 문제'다.

다행히 예상보다 많은 비가 내려 일시적인 숨통은 트였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임시방편적 대응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책이다.

다목적댐 건설, 분산형 용수원 확보, 지자체 물 관리 권한 강화, 기후위기 시대에 맞춘 예·경보 시스템 구축 등이 그 예다.
▲ 대관령에서 바라본 강릉 산과 바다와 호수가 어우러져 살기좋은 도시로 알려졌던 강릉, 도시 이미지를 물 관리정책의 부재로 많은 오점을 남겼다.
ⓒ 진재중
▲ 오봉저수지 강릉의 87%의 물을 공급하는 물 저장고, 저수율이 60%를 넘기고 있다
ⓒ 진재중
23일 오전 8시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61.9%를 가리키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30일 선포했던 재난사태를 23일만에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가뭄 재난사태가 잠시 풀리는 듯 보이지만, 시민들의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어쩌나"라는 질문은 단순한 우려가 아니다. 이는 강릉이 더 이상 '비만 바라보는 도시'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요구이며, 근본적인 물 관리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무거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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