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현의 글로벌 이슈 진단] 급등하는 파키스탄 몸값…‘비핵화 불가’ 북에 잘못된 신호

차세현 2025. 9. 24.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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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현 논설위원

인도, 이스라엘과 함께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라고 불리는 파키스탄의 주가가 최근 급등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성공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는 전략적 상호방위협정까지 체결했다. 파키스탄은 오랫동안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런 몸값 상승은 역설적으로 파키스탄이 핵보유국이어서다. 파키스탄으로부터 핵 기술을 넘겨 받았고, 마찬가지로 현재 핵보유국 지위를 노리고 있는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북한에 핵 기술 넘긴 파키스탄
제재 뚫고 사실상 핵보유국 돼
이젠 미국·사우디까지 러브콜
김정은도 “비핵화 절대 없다”

지난 17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오른쪽)와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에 핵우산 제공”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 17일 전략적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는 ‘양국 중 어느 한 나라에 대한 침략을 양국 모두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협정은 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지도부 제거를 이유로 카타르 공습을 감행해 중동 정세가 한층 불안정해진 가운데 체결된 것이다.

이번 협정 체결은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사우디의 누적된 실망감의 결과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해온 사우디가 폭주하는 이스라엘의 안보 위협에 맞서기 위해 파키스탄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일 카와자 아시프 파키스탄 국방부 장관은 인터뷰에서 핵 억지력이 사우디에도 제공되느냐는 질문에 “협정에 따라 우리가 보유한 능력을 사우디에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래식 무기 전력에서는 미국 무기로 무장한 사우디가 파키스탄보다 월등하지만, 사우디는 이슬람권 유일의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의 핵우산을 원한 것이다.

사실 사우디가 과거 파키스탄 핵 개발의 산파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란 팔라비 왕정 붕괴(1979년), 이스라엘 핵실험(1979년), 이란·이라크 전쟁(1980~88년) 등으로 안보 위협을 느낀 사우디는 1974년 앙숙인 인도의 핵실험으로 공포에 빠진 파키스탄의 핵 개발을 물밑에서 지원했다. 미국 원자력과학자회보에 따르면 1998년 첫 핵실험에 성공한 이후 파키스탄은 현재 약 17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환심까지 산 파키스탄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인 2005년 이후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어 온 미국의 외교정책은 트럼프 2기 들어 급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백악관 복귀 후 파키스탄 군부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3월엔 파키스탄이 2021년 카불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이 사망한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이슬람국가(IS) 요원을 체포한 것을 치하했다.

5월 인도·파키스탄 군사 충돌이 벌어지자 트럼프는 개입했고, 휴전 합의 직후 “우리가 핵 분쟁을 막았다”고 선언했다. 파키스탄은 트럼프에 감사를 표하면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쇼맨십을 발휘했다. 6월 트럼프는 파키스탄 군부 실세인 아심 무니르 육군 참모총장을 백악관에 초대했다. 7월엔 상호 관세와 관련해, 파키스탄 석유 매장지에 대한 미국 기업의 탐사권 확보를 조건으로 관세율을 19%로 낮춰줬다.

트럼프의 친파키스탄 행보는 인도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모에드 유수프 파키스탄 비컨하우스 국립대 총장은 최근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의 인도에 대한 지난 20년간의 베팅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인도는 미국 요구에 동조할 의지가 없으며 여전히 국제 질서의 다극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미국의 친인도 정책에 대한 반작용은 파키스탄의 친중국 행보로 이어졌다. 파키스탄은 무기의 80%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또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책에 호응해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중국 신장~파키스탄 과다르 항구) 건설을 통해 중국의 숙원인 인도양 진출의 교두보를 제공했다. 이런 상황에서 파키스탄은 뜻하지 않게 미국까지 우군화하는 호기를 맞은 것이다.

‘파키스탄의 길’ 가겠다는 북한

널리 알려진 대로 북한 핵 개발은 파키스탄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지난해 10월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이자 북한에 핵 기술을 전수한 압둘 카디르 칸(사진)이 사망했다. 그는 2004년 2월 파키스탄 국영방송에 나와 1990년대에 북한, 리비아, 이란 등 미국이 지목한 ‘불량국가(rogue state)’에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에 필요한 원심분리기와 농축 기술을 제공했다고 인정했다. 이로 인해 북·미 제네바 핵 합의(Agreed Framework)는 파기됐고,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을 했다.

파키스탄은 핵실험 이후 미국 등 전 세계의 혹독한 경제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2001년의 9·11 테러에 이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제재를 풀고 사실상 핵 보유를 묵인받았다.

북한은 각종 제재에도 불구하고 6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미국 본토까지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통해 파키스탄과 같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노리고 있다. 북한은 트럼프 1기 때 2018~19년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고 주요 대북 제재 해제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핵보유국 지위를 헌법에 명문화한 뒤 미국과 더이상 비핵화 협상에 나설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입장은 지난 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재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단언하건대 우리에게 ‘비핵화’라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며 “제재 풀기에 집착해 적국들과의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파키스탄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차세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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