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7년전 비웃음 산 연설 다시 한다…"이번엔 못 비웃을 것" 왜
"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내 행정부는 미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성취를 이뤄냈다.” "

2018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러나 각국의 정상들은 ‘키득키득’ 비웃었다. 머쓱해진 트럼프는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상황을 수습했고, 연설을 마치고는 “청중을 웃기려는 퍼포먼스였다”고 한 뒤 총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22일(현지시간) 백악관은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취임 8개월 만에 이룬 역사적 성과를 강조하는 중요한 연설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7년 전 전 세계 정상들의 비웃음을 샀던 연설을 다시 하겠다는 예고다.
“트럼프 비웃을 정상 한명도 없을 것”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유엔 총회에서 세계주의(globalism)를 비난하는 연설을 통해 조롱 섞인 비웃음을 받았지만, 이번엔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과거 비웃음을 샀던 미국 우선주의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무차별적 상호관세 부과, 동맹국에 대한 안보 비용 압박, 유엔 등 국제기구에 대한 지원 중단 등 당시의 ‘허언’에 가까운 말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모두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폴리티코는 오히려 “각국의 정상들이 경쟁적으로 아첨해가며 트럼프를 달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며 “트럼프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지도자가 7명에 달하고, 골프를 치기 위해 플로리다로 날아가거나 트럼프를 ‘아빠(Dad)’로 칭한 지도자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유럽 고위 당국자는 폴리티코에 “더 이상 웃을 일이 아니다”라며 “아무리 칭찬하고 선물을 줘도 트럼프는 여전히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힘’ 강조하며 세계 비전 제시할 것”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전 세계에서 미국의 힘이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성과로는 “7개의 전쟁 및 분쟁 종식” 등을 제시할 거라고 했다.

레빗 대변인은 이어 “글로벌주의 기관들이 어떻게 세계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건설적인 세계 비전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망명을 제한하는 새 제도를 포함한 이주 및 난민 문제와 관련한 일방적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백악관이 밝힌 ‘건설적 세계 비전’은 사실상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기능을 무력화하는 방향이 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지난해 미국이 부담하기로 했던 유엔 분담금을 국고로 돌렸다. 유엔에 돈을 내지 않겠다는 의미다. 또 차기 회계연도 분담금 역시 보류할 방침을 밝히며 미국의 유엔 분담금 미납 상황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유엔의 예산은 미국이 22%인 8억 2000만 달러를 부담하고, 중국이 6억 8000만 달러(20%)를 분담하는 구조다. 뉴욕타임스(NYT)는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의 동의를 받아낼 경우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유엔의 정기 회비를 내지 않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촘촘한 양자·다자 회담…‘이재명 대통령’은 없다
레빗 대변인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일정을 소개하면서 촘촘한 양자 및 다자 정상회담 일정을 함께 공개했다.

백악관이 밝힌 양자 회담 대상에는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아르헨티나, 유럽연합 등이 포함됐다. 또 카타르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파키스탄, 이집트, 아랍에미리드, 요르단 정상들과는 다각적 다자 회담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날 백악관이 공개한 일정엔 이재명 대통령의 이름은 포함되지 않았다. 레빗 대변인은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밤 100여 명의 세계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리셉션에 참석한 뒤 워싱턴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셉션 등을 통해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비공식적으로 대화를 나눌 가능성은 있다.
레빗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유엔 총회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복귀 이후인 26일 미국과 유럽 간의 라이더컵 골프 대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보다 비중 있게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적 대회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며 “그의 단호한 리더십 덕분에 골프팬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라이더컵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무역’에 ‘북한’까지…“트럼프 꼭 봐야 하는 건 아니다”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특히 유엔총회를 앞둔 지난 2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버리고 현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도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한 북·미 대화를 제시하면서 북한 변수가 돌출한 상태다.

일각에선 다음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미·중 정상이 모두 참석할 뜻을 밝히면서 한반도 상황이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국익에 반하는 무역 협상에는 합의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데 이어, 유엔총회 직전 다수의 외신 인터뷰를 통해 “무제한 통화 스와프 협정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가 이뤄질 경우 외환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재차 난색을 표했다.
반면 북한 문제에 대해선 북·미가 북핵 동결에 합의한다면 임시적 조치 차원에서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이와 관련한 한·미간 소통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한·미 양국간에 무역 협상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이견이 절충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엔 총회에서 이 대통령이 꼭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는 것이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내부 이견이 있다”며 “대체적으로 협상 전략의 차원에서 이번 방미 때는 한국 측이 먼저 미국에 회담을 제안하는 방식의 접근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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