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다니는 게 낙이에요" 치매 걸려도 집 안 떠날 수 있는 마을

월간 옥이네 2025. 9. 2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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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 치매 환자도 일상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옥천 이원면 신흥1리 치매안심마을 탐방기

<월간 옥이네> 9월호는 '치매 생태계'를 특집으로 엮었습니다. 치매안심센터와 치매안심마을, 세 차례의 세미나 현장, 그리고 가족과 요양보호사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기자말>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 이원주민쉼터
ⓒ 월간 옥이네
농촌 마을 곳곳을 다니다보면 "평생을 이 마을에 살아왔다"는 어르신들을 쉽게 만나곤 한다. 그 시간 동안 쌓인 일상의 감각도 뿌리 깊을 테다. 그렇기에 노년기 낯선 환경으로의 이동은 그 감각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 일상의 공간에서 쌓아온 감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질병에 비해 더 큰 이유 중 하나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오래도록 마을에 머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결국 노년기에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일과도 같다. 치매가 있다 해도 이러한 바람은 마찬가지, 안전에 위해가 되지 않는 경증의 경우라면 일상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건강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각 지역 치매안심센터에서 지역자원 조사, 치매 인식도 조사, 주민 요구도 등을 반영해 지정하는 치매안심마을은 "우리 오래도록 존엄한 삶을 살자"며 지역과 마을이 힘을 합한 결과물이다. 주민들의 치매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 치매 인식 개선 캠페인 등을 진행하고 마을 자원을 활용해 치매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을 갖춰나가는 것. 충북 옥천에서는 군서면 월전리(2017), 이원면 신흥1리(2018), 안남면 연주1리(2019), 옥천읍 가화리(2020), 청성면 산계2리(2024) 총 다섯 마을이 치매안심마을로 지정돼 있다. 이 중 이원면 신흥1리에 방문해봤다.

우리 마을, 울타리가 되죠

이원면 신흥1리, 거리를 걷다 보면 이원면사무소와 이원파출소, 이원농협·신협 등 편의시설이 어깨를 맞대고 자리 잡았다. 그 곁으로 군데군데 숨어 있는 작은 카페와 식당, 상점들. 과거 이원장이 열려 사람들을 비집고 지나가야 했을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했다는 그 거리. 이전만큼은 못하지만 신흥1리는 여전히 이원면 소재지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중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내일로'는 3년 전, 국토교통부 소규모 도시재생사업으로 설립된 주민센터이자 마을카페로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 이곳은 이원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박영웅) 박수민(59) 이사가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문을 열고 운영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아르바이트생이 운영했다가 지난해 11월부터는 제가 전담해 운영하고 있어요. 마을 카페인 만큼 이곳에는 주로 마을 어르신들이 찾아오세요. 매주 화·목요일 경로당에서 건강체조 수업이 끝나고 난 뒤가 제일 붐벼요. 저희 카페가 7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아메리카노를 1500원에 드리는데, 어르신들이 단체로 오셔서 돌아가며 서로 커피를 사주세요(웃음)."
 내일로 카페 박수민 이사와 진주희 감사. 진주희 감사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종종 카페 운영을 돕고 있다.
ⓒ 월간 옥이네
 내일로 카페를 이용하는 주민들
ⓒ 월간 옥이네
박수민 이사는 신흥1리의 주민이기도 하다. 그는 5년 이상 사회복지사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마을 어르신들과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내일로가 단순한 카페를 넘어 어르신들의 커뮤니티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핵심 역할을 하는 셈.

"어르신들이 오시면 마음껏 담소도 나누시고, 편히 쉬다 가실 수 있도록 하는 편이에요. 더러 어머님들이 '너무 떠들어서 미안하네'라고 하시기도 하는데, 그러면 '마음 편히 말씀 나누다 가세요. 수다도 떨어야 스트레스도 풀죠'하면서 웃곤 해요(웃음)."

계산하거나 인사할 때, 홀로 찾아온 어르신이 있을 때는 일부러 찾아가 안부를 묻기도 한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거나, 계산을 어려워하는 손님이 있을 때는 천천히,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편이라고.

"경증 치매라면 주변에 큰 불편을 주지 않아요. 집에서 활동하시며 치료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죠. 마을에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 갈 수 있는 익숙한 장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중증의 경우는 집에 계시는 게 더 위험할 수 있어요. 실종되시거나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어르신에게도 시설이 갖춰진 곳이 더 편안하리라 생각해요. 이런 경우 국가에서 관리하는 치매 전문시설이 마련된다면 좋겠죠."

이곳에서 홀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던 신흥1리 주민 허순애(75)씨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틀에 한 번꼴로 내일로를 찾는다는 그는 평소 마을에서 자주 가는 장소들을 소개했다.

"카페가 있어서 너무 좋지요. 내일로 카페, 마을회관, 소망약국, 내고을식당. 이렇게 자주 가요. 이렇게 다니는 것이 내 낙이지요."

모두 이웃 주민이 모여있는 곳이기에 허순애씨에게도 더없이 친숙하고 안전한 공간일 테다. 마음 편히 오갈 수 있는 마을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일상의 큰 활력이 되곤 한다.

치매안심등불, 내 역할 중 하나지요

이원면사무소 인근에 위치한 이원슈퍼는 옥천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안심등불' 기관으로 지정한 곳이다. 치매안심등불은 지역주민의 접촉 빈도가 높고 치매 환자 실종 예방에 관심이 높은 기관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것으로, 배회하는 치매 환자가 안전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슈퍼 운영한 지 30년이 넘었어요. 예전에 센터에서 나와서 치매안심등불에 대해 설명해주시곤 현판을 달아도 되겠냐고 물어보셨어요. 우리 슈퍼가 마을 사랑방 역할도 하거든요. 저도 이곳 주민이니까 서로 잘 알고, 마을 소식도 자주 접하죠."

이원슈퍼 강금자(72)씨는 현판을 부착한 이후로 오가는 주민들을 이전보다 면밀하게 살펴보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집 찾아가기를 어려워했던 어르신을 안내해드렸던 경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평소에 잘 알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집을 못 찾겠다고 저한테 도움을 청하시더라고요. 문 앞에 나가서 길을 설명해드렸는데, 조금 이따가 또 가게에 오셨어요. 미안하다고, 가는 길을 또 잊었다고요.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그분 아드님한테 '어머니 상황이 이러이러하다'고 알려드리기도 했었죠. 가까이 있는 가족들은 '우리 어머니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오래도록 마을 가게를 운영해왔기에, 또 주민들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테다. 그는 이원슈퍼가 치매안심등불로서 기능하는 것을 본인의 역할 중 하나로 여기며 가게를 지키고 있다.
 충북 옥천 이원면사무소 인근에 위치한 이원슈퍼는 옥천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안심등불' 기관으로 지정한 곳이다.
ⓒ 월간 옥이네
주민 교류의 중심지, 경로당

마을회관은 마을의 여러 행사가 열리는 중심지다. 누구든 편하게 드나들 수 있고, 일주일에 세 차례 체육 교실이 열리는 곳, 함께하는 식사시간이 있는 곳도 바로 마을회관.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이곳에서 매년 주민을 대상으로 치매인식개선 홍보 및 캠페인, 치매인지선별검사, 치매예방 및 인지강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치매 검사는 경로당(마을회관)에서 받아봤지요. 이상 없다고 나와서 다행이지만 매번 긴장은 돼요. 경로당이 있으니까 친구들이랑 얘기도 하고 이렇게 운동도 하는 거예요. 이것 없으면 답답해서 어떻게 지내나 몰라요." (양예순씨, 89)

"경로당은 없어선 안 될 공간이에요. 치매예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연세가 많으신 만큼 때로는 기억력이 예전만큼 못한 분들도 있지만, 같이 체조도 하고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니까 서로 보호해줄 수 있어요." (안영자씨, 79)

안영자씨는 1년 전부터 뇌졸중을 앓는 남편을 요양보호사로서 직접 돌보고 있기에, 돌봄 공간으로서의 마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기도 하다.

"제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것은 50대일 무렵, 이원농협에서 무료로 요양보호사 교육을 할 때였어요. 자격증 취득하고 1년 정도 옥천성모병원에서 치매 환자를 1:1로 돌봤던 적이 있는데 업무 강도가 높아서, 이후로 일하지 않았었죠. 이렇게 남편을 돌보는 데 활용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웃음). 함께 지내는 남편을 돌볼 수 있고, 또 이것이 생계에도 도움이 돼 다행이다 싶어요. 아픈 이후로 바깥출입을 꺼리는 남편이지만, 하루에 1시간씩은 경로당 안쪽 운동기구를 활용해 재활도 하고 있어요. 저도 가끔 경로당에서 이렇게 이웃과 담소도 나누고 하지요."

가족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로서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병이 나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이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증상이 심해진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 안영자씨는 "마을에 자신처럼 가족 돌봄을 하는 분들이 서로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위로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지금처럼만 같다면 앞으로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힘들어도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을에서 지내고 싶죠."
 충북 옥천 이원면 신흥1리 마을회관
ⓒ 월간 옥이네
이원면 신흥1리는 면소재지라는 특성상 비교적 다양한 가게와 편의시설, 쾌적한 마을회관 시설과 프로그램 운영이 치매안심마을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었다. 치매안심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은 높지 않은 편이지만, 그 인식과 별개로 마을이 자연스럽게 주민들을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을 해오는 듯했다.

더불어 마을 카페 내일로는 현재 치매안심등불 혹은 치매선도단체 등 치매 관련 시설로 지정돼 있지 않지만, 이곳에서 인지 저하 혹은 경도 치매 증상이 있는 어르신이 바리스타 등 다양한 교육을 받고 일정 기간 일을 해볼 수 있도록 하는 일자리가 생긴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이를 통해 마을 주민과의 교류가 늘고, 자존감을 살릴 수 있게 된다면 이들의 건강도, 주민들에게 치매 인식 개선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월간 옥이네 통권 99호 (2025년 9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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