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0위안 지폐에 그려진 탑, 이거였구나
이상기 2025. 9. 23. 09:33
[항저우 서호 풍경과 주변 문화유산을 살펴보다] 서호와 만송서원
황산와 항저우 마지막 기사다. 이번에는 항저우 서호와 만송서원을 자세히 다뤘다. 서호는 항저우 서쪽에 있어 서호라 불리게 되었다. 만송서원은 명나라 때 세워져 청나라 때까지 번성했다. 마지막에는 중국 서원과 조선 서원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살펴보았다. <기자말>
[이상기 기자]
서호는 어떤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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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호와 삼담인월 탑 |
| ⓒ 이상기 |
서호는 말 그대로 항저주 서쪽에 있는 호수다. 호수의 남북과 서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으로 상성구(上城區)가 있다. 호수 왼쪽에 남북으로 둑을 쌓아 서쪽 부분을 서리호(西里湖)라 부른다. 이곳에 쌓은 둑이 백제(白堤) 소제(蘇堤) 양공제(楊公堤) 조공제(趙公堤)다. 그중 소제는 항저우 태수를 지낸 소식(蘇軾)이 서호를 준설해 쌓았다고 한다. 이때 호수의 가장 깊은 곳에 세 개의 탑을 쌓았는데 그것이 삼담인월(三潭印月) 탑이다. 이 제방에는 6개의 다리를 건설해 배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했다.
서호에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열 군데 있어 서호 십경이라 불렀다. 소제춘효(蘇堤春曉, 소제의 봄날 새벽), 화항관어(花港觀魚, 꽃핀 항구에서 물고기 관찰하기), 유랑문앵(柳浪聞鶯, 물가 버드나무 꾀꼬리 노래 듣기), 뇌봉석조(雷峰夕照, 뇌봉탑 일몰), 삼담인월(三潭印月, 세 개 못에 비치는 달), 평호추월(平湖秋月, 고요한 호수에 비치는 가을 달), 쌍봉삽운(雙峰揷雲, 남쪽과 북쪽 봉우리(쌍봉)에 걸친 구름), 남병만종(南屛晩鐘, 남병산 정자사(淨慈寺) 저녁종), 곡원풍하(曲院風荷, 곡원(양조장)에 흩날리는 술향과 연꽃향), 단교잔설(斷橋殘雪, 단교의 겨울날 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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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드나무 늘어진 서호 |
| ⓒ 이상기 |
역사적으로 서호는 항저우의 수원으로 관개를 통해 농업에 이용되었다. 그러나 홍수로 수없이 물이 넘치고 파괴되었다. 당나라 때 항저우 태수를 지낸 백거이(白居易)가 이곳을 준설해 제방을 높이 쌓고 수로를 만들어 수자원을 보호하고 농업용수를 공급했다. 백거이는 '전당호 봄나들이(錢塘湖春行)'라는 시를 남겼다. 서호의 옛 이름이 전당호로, 백거이는 봄날 전당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고, 그 호수를 사랑해 떠나기 싫음을 노래한다.
고산사 북쪽 가정 서쪽으로 걸어가니 孤山寺北賈亭西
수면이 처음엔 잔잔하다 구름이 내려온다. 水面初平雲脚低
꾀꼬리 아침부터 좋은 자리 차지하려 싸우고 幾處早鶯爭暖樹
제비가 집을 찾아 진흙으로 집을 짓는다. 誰家新燕啄春泥
흐드러진 꽃이 점점 눈을 현란하게 하고 亂花漸欲迷人眼
돋아나는 풀이 말발굽을 겨우 가릴 정도다. 淺草才能沒馬蹄
호수 동쪽을 정말 좋아해 떠나기 싫은 것은 最愛湖東行不足
흰모래 둑 푸른 버드나무 그늘 있어서라네. 綠楊陰里白沙堤
수면이 처음엔 잔잔하다 구름이 내려온다. 水面初平雲脚低
꾀꼬리 아침부터 좋은 자리 차지하려 싸우고 幾處早鶯爭暖樹
제비가 집을 찾아 진흙으로 집을 짓는다. 誰家新燕啄春泥
흐드러진 꽃이 점점 눈을 현란하게 하고 亂花漸欲迷人眼
돋아나는 풀이 말발굽을 겨우 가릴 정도다. 淺草才能沒馬蹄
호수 동쪽을 정말 좋아해 떠나기 싫은 것은 最愛湖東行不足
흰모래 둑 푸른 버드나무 그늘 있어서라네. 綠楊陰里白沙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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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그림 속의 서호 |
| ⓒ 이상기 |
그리고 소식이 항주의 행정관인 통판(通判) 벼슬을 할 때 지은 칠언절구 두 수가 있다. '호수에서 배를 타고 술을 마시는데 날씨가 맑다 비가 온다(飮湖上初晴後雨)'로 서호 풍경을 읊은 서경시다. 날이 맑거나 비가 오거나, 사시사철 서호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다.
물결이 햇빛에 반짝이는 맑고 아름다운 날 水光瀲灧晴方好
산색이 흐릿해지더니 기이하게도 비가 오네. 山色空蒙雨亦奇
서호를 미인 서시와 비교해 표현해 본다면 欲把西湖比西子
화장의 농담에 관계 없이 정말로 아름답구나. 淡粧濃抹總相宜
화항관어(花港觀魚)에서 삼담인월(三潭印月)까지 유람선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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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희제가 쓴 화항관어 비석 |
| ⓒ 이상기 |
이렇게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는 서호에서 우리는 화항관어와 삼담인월 두 가지만 살펴볼 수 있었다. 그것은 계절이 여름이었고, 때는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서호 남쪽 화항공원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호수 쪽으로 걸어간다.
양공제를 지나고 홍어지(紅魚池)를 지나 장산각(藏山閣)에 이른다. 홍어지는 말 그대로 금붕어가 노니는 연못이다. 장산각은 석가산 위에 지어진 사각형 정자로 서호를 바라볼 수 있다. 정자 근방에 청나라 강희제가 남쪽을 순행할 때 남긴 화항관어라는 글씨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화항관어 공원 남쪽을 남호라 부르는데, 이곳에는 연꽃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유람선은 화항 부두에서 타도록 되어 있다. 부두 주변으로는 버드나무가 하늘거리고, 그나마 그 아래 그늘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유람선을 타려는 사람들이 많아 줄을 서야 한다. 유람선은 섬 가운데 연못이 있는 삼담인월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이다. 거리라고 해야 3㎞ 정도 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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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호에 핀 연꽃 |
| ⓒ 이상기 |
삼담인월은 서호 속에 있는 섬으로 그 안에 다시 밭전(田)자 형태의 연못이 있다. 섬은 정원과 정자, 부두와 편의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담인월 남쪽 물가에는 세 개의 석탑이 세워져 있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소식이 서호를 준설하면서 세웠고, 현재의 것은 명나라 때 재건되었다. 석탑은 야간에 불을 밝혀 일종의 등대 같은 역할을 했다. 등불을 감싸고 다섯 개의 구멍이 있어 그 불빛이 물에 반사되어 달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세 개의 탑이 마치 달처럼 호수에 비친다고 해서 삼담인월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삼담인월 탑은 그 역사성과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10위안 짜리 지폐에 도안으로 들어가 있다. 삼담인월 호수 건너 북쪽 산 위로는 화엄경탑이 우뚝 솟아 있다. 화엄경탑 서쪽으로 소제가 있고, 둑방에 아치 형태의 과홍교(跨虹橋)가 보인다. 이 다리에 눈이 내리면 중간 높은 부분이 일찍 녹아내려, 마치 다리가 끊어진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강희제가 이걸 보고 단교잔설이라는 어필을 내렸고, 이때부터 단교로도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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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봉탑 |
| ⓒ 이상기 |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뇌봉탑(雷峰塔)을 올려다본다. 뇌봉탑은 송나라 때인 977년 부처님의 머리카락 사리를 모시기 위해 팔각형의 7층탑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후 전쟁과 방화로 인해 여러 번 파괴되었다가 명나라 가정제 때 5층 전탑 형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그리고 청나라 강희제 때 뇌봉석조라는 어제를 받게 되었다. 2002년 다시 지어져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 서호는 동쪽이 항저주 시내와 연결되어, 나무가 심어진 공원 너머로 현대식 고층 건물이 보인다.
만송서원(萬松書院)의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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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송서원 강당과 동서재 |
| ⓒ 이상기 |
서호를 유람하고 나서 우리는 이제 만송서원으로 간다. 만송서원은 서호 남쪽 봉황산(鳳凰山) 기슭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명나라 때 세워진 보은사(報恩寺)가 있었다. 명나라 홍치제 때인 1498년 보은사 구지에 만송서원이 처음 세워졌다. 청나라 강희제 때인 1671년 만송서원을 중건하고 태화서원(太和書院)이라 부르게 되었다. 1716년 강희제가 절수부문(浙水敷文)이라는 사액을 내리면서 부문서원이 되었다. 절수는 항저우를 말하고 부문은 글을 가르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송서원은 태화서원, 부문서원으로도 불리고 있다.
1751년에는 건륭제가 남쪽지방을 순례하면서 부문서원에 호산췌수(湖山萃秀)라는 편액을 내렸다. 호산 역시 항저우를 말하고 췌수는 빼어난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에 강학한 빼어난 사람으로는 양명학을 창시한 왕수인(王守仁)이 있다. 지행합일과 지행병진을 강조한 그는 만송서원에서 심학(心學)을 강의했다. 그는 또 만송서원중수비 기문을 썼다. 부문서원장을 지낸 사람으로는 노증욱(魯曾煜), 육종해(陸宗楷), 반정균(潘庭筠) 같은 사람이 있다. 이들은 학덕이 높고 성정이 고결했으며, 문장에도 일가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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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송서원 입구 세 개의 석패방 |
| ⓒ 이상기 |
만송서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세 개의 석패방이다. 가운데 정면에 만송서원 편액이 음각되어 있고, 좌우에 태화서원과 부문서원 편액이 음각되어 있다. 편액 위에는 두 마리 용이 구슬을 차지하려 싸우는 모습이 양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패방을 지나면 강당인 명도당(明道堂)과 사당인 대성전이 나온다. 명도당 안에는 건륭제가 쓴 정의명도(正誼明道)라는 글씨가 걸려 있다. 정의는 도의(道義)를 바로 세운다는 뜻이고, 명도는 도를 밝힌다는 뜻이다.
대성전에는 대성지성 공자를 중심으로 좌우에 복성 안자, 술성 자사, 종성 증자, 아성 맹자가 모셔져 있다. 이들 조소상 위로는 만세사표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강희제가 공자를 찬양해 쓴 글씨다. 벽에는 공자 관련 일화가 그림과 글로 표현되어 있다. 서원을 나오면서 명도당 앞에 있는 동재(居仁齋)와 서재(由義齋)를 둘러본다. 이들 거인재와 유의재에는 중국 서원의 역사와 만송서원의 역사가 도표와 그림 그리고 관련 서적을 통해 잘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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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송서원 옛 그림 |
| ⓒ 이상기 |
만송서원 옛 모습 그림이 눈에 띈다. 송나라 때 대표적인 서원 백록동서원, 악록서원 등이 소개되어 있다. 신유학을 완성한 주희, 육구연 등의 사상이 설명되고 있다. 그리고 서원 경내에는 이들 신유학을 주도한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주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들 인물을 보며 중국 서원과 우리나라 서원의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의 서원에서는 공자와 네 성인, 그리고 신유학을 이끈 현인을 모시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서원은 서원과 연고가 있는 현인을 모시고 배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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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성전에 모셔진 공자와 네 성인 |
| ⓒ 이상기 |
그 때문에 중국 서원의 사당 이름은 대성전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서원의 사당 이름은 서원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달리 지어진다. 예를 들어 안동 도산서원에는 퇴계 이이를 배향하고, 사당 이름을 상덕(尙德)이라 지었다. 충주 팔봉서원에는 기묘명현인 이자, 이연경, 김세필 그리고 노수신을 배향하고, 사당 이름을 숭덕(崇德)이라 지었다. 같은 점은 전학후묘 형식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강학공간이 앞에 있고, 제향공간이 뒤에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중국 서원과 우리 서원에 대해 연구해 좀 더 구체적으로 글을 써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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