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남의 일 아니게 된 민주주의 퇴행 위험

더불어민주당은 무리한 방법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만든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한 정치인들이 모여 창당한 1955년의 민주당을 그 기원으로 삼고 있다. 그 이후 그 당의 명칭은 정치 상황에 따라 수없이 바뀌어 왔지만 ‘민주’라는 단어는, 열린우리당과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언제나 정당의 이름으로 유지해 왔다. 그만큼 민주당 계열 정당의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정당의 핵심 정체성이자 가장 소중한 정치적 명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은 오히려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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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회권력 장악한 뒤 사법부 공격
민주주의 후퇴 국가의 공통 징조
한국 위상 추락으로 이어질 우려
민주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

민주당의 최근 행보에 우려가 드는 까닭은 세계 여러 곳에서 민주주의 퇴행(democratic backsliding)을 겪은 나라에서 나타났던 현상과 놀랄 만큼 비슷한 특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퇴행한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보다 사법부에 대한 공세이다. 한 정당이 선거를 통해 의회 내 압도적 의석과 강력한 행정 권력을 장악하면, 그 힘을 기반으로 사법부를 압박한다. 이러한 공세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구성을 변경하기 위해 판사의 정원을 늘리고 그만큼을 자기편으로 임명하는 방식(court packing)이나, 사법부를 공개 비난하고 신뢰 하락을 명분으로 법원의 재판 관할권을 변경해서 별도의 법원을 만들거나 판사의 임명이나 평가 방식을 바꾸는 방식(court curbing) 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베네수엘라, 튀르키예, 헝가리를 비롯한 민주주의가 퇴행한 많은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났던 현상이다.
지금 민주당이 행하는 대법원장에 대한 공개적 비판, 기존 법원을 우회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시도, 대법관 증원과 정당 추천 인사에 의한 판사 평가 추진 등이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모두 이들 국가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이런 일을 추진할 때 이들 정권은 실패한 쿠데타나 경제, 안보상의 심각한 위기를 그 명분으로 내세웠는데, 이 또한 지금 우리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노골적 억압이 아니라 징벌적 배상 등의 방식으로 언론을 규제하려는 방안까지도 비슷하다.
과거에 민주주의는 군부 쿠데타나 대중 폭동과 같은 격렬하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의해 붕괴했다. 그러나 최근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몰락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쓴 레비츠키와 지블랫의 표현대로, “점진적으로, 감지하기 힘들게, 그리고 심지어 합법적으로” 진행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무모한 비상계엄 선포만이 민주주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위기 상황을 이용하여 사법부를 자기편에 유리하게 재편하겠다는 민주당의 시도 역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동안 이미 ‘제왕적’이라고 불린 대통령에, 단독 입법과 단독 예산안 처리, 공직자 탄핵까지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는 막강한 입법권을 가진 국회까지 장악한 정당이 사법부마저 사실상 ‘통제’하게 되는 상황을 두고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민주당이 지금 추진하는 이런 방안들이 정말 민주당의 뜻대로 다 입법화된다면, 머지않아 V-Dem이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등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보고 평가하는 기관에 의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퇴행’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민주당이 어떤 정치적 명분을 내세우든, 또 그것이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든, 그러한 조치들이 민주주의에 얼마나 해로운 것인가는 이들 기관이 측정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에 의해 입증될 것이다. 이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모두 이뤄냈다는 우리의 자긍심에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그동안 축적해 온 우리의 문화, 외교, 경제적 위상의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 후퇴와 국격의 실추는 결국 이재명 민주당 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과 함께 역사의 부정적 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 누구보다 민주당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대로, 한국 정치사를 되돌아볼 때 과도한 권력 집중의 시도는 언제나 국민의 큰 저항을 불렀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정치학회 개막식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정치학자들 앞에서 K민주주의와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위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제도 간 견제와 균형이고, 특히 사법부나 언론 등 ‘심판 기관’의 제도적 독립성과 자율성이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도 오랜 세월 그들이 소중하게 유지해 온 민주주의 수호라는 그들의 정치적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큰 위기로부터 어렵게 되살린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이재명 민주당 정부의 권력 행사에 대한 제도적 자제와 신중함이 필요해 보인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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