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욱의 시시각각] 야당이 동대구역 대신 가야 할 곳

지난주 정치권 최고의 명장면은 12년 만에 이뤄진 이명박(MB)·박근혜 전 대통령의 만남이었다. 지난 1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기념식이 그 역사적 무대였다.
"아, 오랜만이에요. 여전하시고? 건강하시고요? 오늘 참석자 중에서 가장 멀리서(대구시 달성군 사저) 오셨습니다"(MB) "오랜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뵙게 돼 반갑습니다"(박근혜)라며 둘은 손을 맞잡았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자신의 측근들도 깜짝 놀랐을 만큼 MB는 과감하고 화끈한 매너로 손을 내밀었다. 박 전 대통령의 따뜻한 응답도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은 불과 1.5%포인트 차로 승부가 갈린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혈투의 당사자다. 보수 진영을 '친이'와 '친박'으로 양분했던 희대의 라이벌 관계다. 뜨겁게 맞붙었고, 냉랭하게 대립했다. 보수 정치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내전의 시대'였다. 하지만 동시에 보수의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다. 집권이 유력한 두 장의 카드를 쥐고 있었다. MB가 중도 실용을 대표했다면, 박 전 대통령은 정통 보수를 대변했다. MB가 중도층을 견인하면, 박 전 대통령은 보수층 지지를 공고하게 했다. 당내엔 "10년 집권의 시대가 열렸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당시 MB 캠프의 단골 건배사였던 "오빠! 먼저!(박근혜는 차기라는 뜻)"는 결국 현실이 됐다. 12년 만의 만남이 극적으로 성사된 뒤 "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해졌다"는 보수 진영 인사들의 반응이 쇄도했다.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 현재 국민의힘이 마주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과의 대비 효과가 더해진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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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박근혜가 소환한 보수 전성기
'내란 잔당' 비판받는 현실과 대조
개헌 주도로 속죄·혁신 길 열어야
」
윤석열·김건희 시대가 할퀴고 간 국민의힘의 모습은 가혹하다. 어디 한 곳 희망을 찾을 만한 구석이 안 보인다. '윤석열 잔당'이나 '아류'란 호칭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사들이 당내 주류에 포진했다. '그 나물에 그 밥'들이 떡하니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 비주류도, 당내 중립지대도 희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척박한 당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나르시시스트 유형의 인물, 줏대나 용기 없이 여론과 이미지 관리에만 민감한 기회주의적 인물이 꽤 보인다. 중도층은 당 주류에 등을 돌리고, 정통 보수는 비주류에 등을 돌린다.
국민의힘을 옥죄는 '내란 프레임' 역시 여전히 공고하다. 정부·여당의 독주가 못마땅해도 "나라 망친 야당보다는 낫다"는 정서가 팽배해 있다. 여당의 절반 수준인 정당 지지율, 특히 중도층과 사무·관리 직군에선 민주당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텃밭인 동대구역으로 몰려가 험한 말을 쏟아낸다고 달라질 건 별로 없어 보인다.
내란 프레임에서 탈출하려면 오히려 과감하게 반대쪽으로 가야 한다. 기존의 정치 문법을 깨는 역발상의 결단이 필요하다. 향후 정치권의 핵심 이슈가 될 헌법 개정 작업을 야당이 주도하는 것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직후만 해도 국민의힘은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첫 시작이 개헌"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개헌을 1호 국정과제로 지정하며 적극적으로 달려들자 "장기 집권을 위한 개헌"이라며 유보적으로 돌아섰다.
'윤석열·김건희 정권'의 구시대적 국정 운영과 망상적 계엄에 국민의힘이 져야 할 책임은 막중하다. 향후 어떤 기괴한 지도자가 등장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국가의 새 틀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국민에게 속죄하고 새로 태어나는 길이 열린다. 한국 정치의 부조리와 낡은 구조를 허무는 역사적인 작업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내란당' '국민의짐'이라는 오명을 벗는 반전의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가야 할 곳은 동대구역이 아니라 개헌 문제를 논의할 공론의 장이다. 국회 개헌특위가 야당의 전폭적 협조 속에 하루빨리 출범하길 간절히 기대한다.
서승욱 디지털국장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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