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선] 노동시장 경직성 높이는 노란봉투법

김동호 2025. 9. 2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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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논설위원

노란봉투법, 이름만 봐선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다. 지난 4일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자 비로소 많은 사람이 노동조합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법 제2조와 제3조의 개정안을 의미한다. 2014년 쌍용차 파업 근로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나오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일부 시민이 힘내라면서 노란 봉투에 성금을 담아 전달한 것을 계기로 노조법 개정이 추진됐다. 결국 노란봉투법은 파업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노조원의 면책을 강화하는 노조 친화 정책의 상징이 됐다.

「 주요 대기업 신규 채용 나섰지만
전반적인 고용 환경 여전히 나빠
노조법 관련 불확실성 해소해야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 17일 국회에서 진행된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노란봉투법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법은 내년 3월 시행을 앞뒀지만, 기업 현장에선 벌써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대차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상대로 제기한 3억6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했고, CJ대한통운은 전국택배노조를 상대로 낸 24억원 규모의 손배소를 취하했다. 현대제철은 비정규직 노조원들에게 제기한 46억원 규모의 손배소를 철회했다. 세 회사 모두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였다는 점에서 고용의 지위가 취약한 노동자 보호라는 측면에선 의미가 있다. 사용자 범위를 넓히고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면책 범위를 넓힌 노란봉투법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 경영자는 이 법을 좋아할 리 없다. 기업은 회사의 존망이 걸린 생존 경쟁에서 언제든 사업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와 마찰이 발생한다. 자칫 고용 지위가 취약한 비정규직부터 일자리를 잃고 하청 근로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수 있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경영 판단의 자유가 있지만, 이 과정에서 고용 지위가 불안한 근로자는 하루아침에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한국에선 그 대신 정규직 보호는 강력하다. 정리해고와 희망퇴직·권고사직이 아니라면 노동력 조절을 위한 레이오프(일시적 해고)나 근무 성적 저조에 따른 통상해고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기업은 정규직 고용에 인색하다. 그 피해는 신규 취업자에게 간다. 최근 청년(15~29세) 고용률은 16개월째 내림세다. 주요 대기업 중 삼성만 신입 공채를 유지한다.

노란봉투법이 내년 3월 시행되면 어떻게 될까. 노조법 3조는 회사가 손해를 봐도 배상 청구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놓았다. 사용자들에게 이보다 더 큰 걱정은 노조법 2조의 개정 내용이다. 노조법 2조 2호에서는 사용자 범위를 원청까지 넓혔다. 벌써 기업 현장 곳곳에서 원청과의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하청 노조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노조법 2조 5호의 쟁의 대상 확대도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동안 쟁의 대상은 근로조건이 초점이었으나 ‘사업상 결정’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노조가 회사의 경영 판단을 놓고 파업까지 벌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에게 노조는 공포의 대상이다. 회사로선 노조의 힘이 세진 만큼 일단 노조가 더 커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사람을 최소화하는 대신 ‘로동자(로봇+노동자)’를 대거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주요 로봇 기업 주가는 거듭 폭등하고 있다. 증시의 이런 반응은 앞으로 사람을 로봇으로 대체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란 예고가 아닌가 싶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자 키오스크를 들여놓은 식당이 우후죽순 늘었던 것과 같다.

지난 2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하반기 채용박람회에서 학생들이 기업체 담당자들과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은 청년 구직자를 궁지로 몰 수 있다. 회사가 신규 고용을 기피하고 사람을 대체할 인공지능(AI)이나 AI 로봇을 더 활용하는 게 합리적 경영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 안에 있는 사람은 평생직장을 누릴 수 있지만, 취업의 문은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난 18일 삼성전자를 필두로 현대차·SK 등 주요 대기업이 신규 채용을 크게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은 고무적이다. 100대 기업에도 이런 기대가 모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청년 고용의 물꼬가 트인다고 낙관하기 어렵다. 고용의 8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은 노란봉투법이 버티고 있는 한 고용의 문을 활짝 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자신의 경제자문 교수들이 사안마다 “이런 장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 이런 문제도 있다”고 하자 “어디 양손잡이 학자 없냐”고 답답해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한쪽 면만 보고 쉽게 결정되는 것은 없다는 현실을 역설한 것이다. 기존 노동자의 권리를 너무 보호하면, 청년의 취업 문은 좁아지게 된다. 악순환을 바라지 않는다면 재계가 고용을 기피하지 않도록 사용자 범위와 쟁의 대상 범위를 최소로 줄이는 방향의 보완책이 나와야 한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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