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도 끊기도 옛길도 없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나일영 2025. 9. 2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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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산 점재 넘는 길에서 만난 임도... 마구잡이 개발 지양해야

[나일영 기자]

 사구저수지를 지나 산속 밭에 무성한 풀을 헤치고 간다. 그 옆으로 윤도산 정상의 모습이 보인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다랑이논 끝에 사구저수지(전남 해남)가 풀숲에 감취었다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주변으로 갈대와 수풀이 에워싼 자연 연못 같은 모습이 신비감마저 자아낸다.

지도에서 보면 바늘 구멍 같이 아주 작은 저수지다. 그러나 규모로 꿈의 크기를 잴 수는 없다. 장비도 예산도 없던 시절인 80년 전(1945), 산에서 흐르는 도랑을 막아 다랑이에 물을 댔던 사구마을 주민들의 꿈이 심어진 소중한 저수지다.

국토종주길을 출발해 처음 보는 저수지이지만 앞으로 산자락을 걸을 때면 수없이 보게 될 게 마을저수지다. 산 밑에 터를 잡은 자연마을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생활용수를 해결했던 생명 장치다. 지형에 따라 한 마을이나 두 마을에 하나, 또는 여러 마을에 하나씩 꼭 필요했던 것이 농경사회의 필수 시설인 '제(堤)', 또는 '지(池)'였다. 그래서 '제(堤)'는 생명과 풍요, 그리고 협동하며 살았던 지역 공동체를 상징한다.

무지막지한 요즘의 댐과 달리 옛 '제(堤)'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을 활용하고 자연과 상생하던 시설이다. 설혹 나중에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물이 흐르는 자연의 생리를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에 자연에 해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외에도 무수한 생명에게 도움을 주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하며 자연의 일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구저수지가 마냥 사랑스러운 이유이다.

국토종주의 목적

사구저수지를 지나 산 속 밭을 통과하고 도랑을 넘는다. 옛날엔 버젓했을 점재길에 풀이 무성하다. 시대는 걷는 것을 불편한 것으로, 차를 편리한 이기로 만들었다. 그 결과로 옛길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옛길을 찾아 우리의 국토를 걷는다. 걸으며 우리의 땅의 향기를 맡고, 이 땅에 사람들이 뿌렸던 땀과 눈물에 같이 공감한다. '국토종주 완주'라는 표피적 목표가 아닌 이 땅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우리가 국토종주를 하는 본래의 목적이다.

수풀을 헤치고 나니 옛 길이 보인다. 이 길을 다시 살리고 싶었던 후대 사람들이 설치한 '땅끝길' 팻말도 보인다.

걷는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한 길이지만, 슬픈 현실은 아무리 길이 좋아도 사람들이 걷지 않으면 묻히고 잊혀질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종단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점재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무수한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고 채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숲속의 나무가 빼곡한 좁은 비탈길을 돌고 돌아 점재 고개를 오른다. 몸에 평지를 걸어올 땐 몰랐던 에너지가 차오르며 땀이 주륵주륵 흐른다. 사실 걷기는 이맛이다.

걷기의 맛을 조금 맛보려는 찰나 벌써 빛이 환히 드러나는 점재 정상의 능선이 보인다. 허헛 웃음이 나온다. 잠시의 오르막이었지만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점재 정상의 땅바닥에 앉아 땀을 식히며 시원한 바람을 맞는 기분은 어느 궁궐 황제의 의자에 앉아도 맛보지 못할 맛이다. 단원들 모두 땀을 흘린 뒤의 상쾌하고 즐거운 기운이 솟구쳐 오른다.

잠시 쉬는 찰나 잔뜩 찌푸렸던 날씨가 후두둑 비를 뿌린다. 우산을 꺼내니 숨바꼭질하듯 다시 비가 멈춘다. 오든 오지 않든 지금은 더위로 지치지 않게 해 주는 이렇게 찌푸린 날씨가 고맙다.

임도도 끊기도 옛길도 없다면
 점재 정상 어귀에 이정표 한트 한국종단트레일 리본이 걸려있는 모습을 보니 반갑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이제는 영전리를 향해 내려갈 차례다. 그러나 약 7년 전에 점재 정상 옆으로 임도가 설치되면서 영전리로 내려가는 옛길은 흔적도 없이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산 아래로 향하는 임도가 새로 설치돼 있다. 하는 수 없이 새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몇 구비 돌아 가다 보니 이 임도마저 공사가 중단돼 끊겨 있다. 임도도 끊기고 옛길도 없으니 산 속 미아가 될 수도 있다.

마을과 마을을 잇고 사라져가는 옛길을 복원하는 취지의 한국종단트레일이라 하더라도 요즘 산에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임도를 만나면 난감해진다. 산의 경사면에 길을 놓으며 높은 축대가 설치되는 데다 대부분은 사람들이 다니던 옛길을 무시한 채 조성되기 때문이다. 임도의 산림훼손 정도와 산사태 등의 부작용은 굳이 말 안해도 모두가 알 정도다.

지난해 10월 산림청이 국회에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산사태로 인한 임도 피해가 1162건에 달한다. 산림청은 임도 신설을 위해 지난 10년간 1조 6897억 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다. 한 해 평균 개설 임도의 거리(745km)는 서울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와 맞먹는다. 산림훼손의 정도가 그만큼 막대한 실정이다. 그러나 구조개량 예산은 지난 10년간 2666억 원에 불과하다. 임도 신설 예산의 15.8%에 불과하다. 임도의 보수·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산림을 훼손만 할 뿐 책임을 안지는 셈이다.

임도는 법적으로는 정부의 예산으로 관리하는 도로임에도 산지 관리 시설이라는 이유로 도로법의 일반 도로나 철도에 비해 재해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설된다. 산지 개발에 의한 훼손지 복구 대책도 거의 없다. 임도 개설의 은밀성도 문제다. 산림청과 시도, 시군 산림 당국과 일부 업자들에 의해서만 시공되고 관리되다 보니 산사태 대책이나 검증 절차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산림청은 2030년까지 임도 1만 1009㎞를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산림 관리와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재해 예방을 한다고 만든 임도가 오히려 산사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외 산림 훼손과 생태 축 단절, 산지 지형 변형 등 부작용이 막대하다. 산불이 났을 때도 바람을 타고 불씨가 날리므로 임도의 역할이 제한적이다.

지금처럼 마구잡이 개발은 지양돼야 한다. 임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면밀히 조사해 최소화하고 대신 산불 예방과 야간 활용 헬기 확충, 진화 인력과 시스템 구축, 인공 강우 대책 등 다양한 분야와 연대할 일이 너무나 많다.

지난 7월 30일 산청 산사태는 우리나라 산림정책의 허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2010년 산불 이후 복원을 목적으로 간벌과 숲 가꾸기 사업이 진행됐는데, 산사태가 이들 사업이 이뤄진 곳에서 발생했다. 자생 활엽수를 일부러 잘라내고 토양 적응 단계를 무시한 인공조림을 했다. 뿌리 활착이 안돼 조림 묘목들이 고사하고 비가 오면 산사태로 이어진다. 임도가 만들어진 곳에서 산사태가 났고, 사방댐은 방지 효과를 못 냈다.

가만 있는 산을 벌목하고 임도를 만들고, 산사태를 막는다고 사방댐을 짓고 수로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또 산림이 훼손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번은 실수라고 칠 수 있지만 같은 일이 여전히 지금도 반복되는 것이 문제다. 자연의 생리를 무시하고 쉽게 예산 쓰는 데만 바빴던 결과다.

그나저나 아무리 우리가 '날것의 길'을 걷는다 해도 끊기거나 막힌 곳을 갈 수는 없다. 일단 길을 찾아 내려가야 한다.
▲ 점재 넘는 길 풀이 자란 밭과 도랑을 통과해 점재에 오르는 옛길로 들어섰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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