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그대는 ‘공간 레시피’를 가졌는가

2025. 9. 20.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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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와 성경 사이에 서서.’ 보름스 홀 모습으로 보름스 회의에서의 마르틴 루터를 그려낸 역사화 사본이 걸려 있다. 당시 루터는 고백했다. ‘내가 여기 서 있노라’(Here I Stand Room). 하이패밀리 제공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께 꾸지람을 듣고 난 날이었다. 하굣길에 나는 어김없이 교회 지하실을 찾았다. 마땅히 갈 데도 없었다. 성적은 바닥을 기고 머리는 돌덩이처럼 굼떴다.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박아도 별수 없었다. 손만 아팠다. 눈물을 쏟아냈다. 손이 아파서가 아니었다. 인생이 서러워서였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그리웠다.

뜻밖에도 이런 기억을 불러낸 것은 작가 김택근이었다. 그는 유년 시절 예배당을 이렇게 묘사한다. “예배당은 누추해도 정갈했습니다. 작아서 그 속에 들면 누구도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들은 사연 하나씩 품고 새벽마다 교회에 모였습니다. 사연에는 슬픔이 묻어 있었습니다. 예배당 안은 고요해서 아침 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들이 돌아가면 마룻바닥에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주 조용한 눈물방울들. 햇살도 그 눈물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내 영혼이 숨 쉴 수 있었던 작고 작은 공간, 그것은 결국 어머니 품이었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 치마폭에 파묻혀 엉엉 울던 기억을 그리워한다. 어디 나만이었을까. 시집살이 서러웠던 아낙네들에게 빨래터와 부엌은 또 하나의 기도실이었다. 남정네들은 사랑방에 진 치고 온갖 객담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댔다. 밑도 끝도 없는 수다는 그 자체로 치유였다. 서울대병원 성상철 교수가 말한 대로 최고의 약, ‘구라마이신’이었다. 해독은 물론 개인을 공동체의 연대로 끌어올리는 놀라운 처방이었다.

이 공간의 힘을 한 걸음 더 넓힌 이가 건축가 유현준 교수다. 그가 말한다. “펜트하우스에서 인스타그램만 보는 부자보다 자기만의 공간 레시피가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삶을 누렸어요.” 레시피란 요리법을 뜻한다. 중세에는 약을 짓는 처방전이었다. 지금은 성공 비결을 말할 때도 쓰인다. 내 방식대로 풀면 이렇다. 슬픔이 몰려올 때 찾아가 기도할 골방, 친구와 밤새 수다를 떨 수 있는 카페, 아내와 정겨운 대화를 나눌 산책길, 정신이 산만해질 때 ‘멍상’(멍때리기)에 잠겨 숨 고를 수 있는 벤치, 이런 공간 레시피를 가진 사람이 진정 행복자다.

스페인어에 ‘케렌시아(querencia)’라는 말이 있다. 투우장에서 소가 잠시 숨 고르는 장소를 뜻했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피난처, 안식처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이다. 예수님도 종종 사람들을 피해 조용한 곳으로 가셨다.(막 14:23) 선지자 엘리사는 수넴 여인이 내어준 별실(다락방)에서 자주 쉼을 누렸다.(왕하 4:8) 광장이 아니었다.

최근 나는 두 평 반 남짓한 방에 500년 역사를 담아 보았다. 이름하여 보름스 홀(Diet of Worms Room). 방 한편에는 교황의 권좌를 상징하는 의자, 맞은편에는 종교개혁가 20인의 목각 초상이 있다. 벽에는 면죄부와 루터의 재판 장면 그림, 그림 아래에는 루터 성경을 배치했다. 꾸며 놓고 보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중세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감동. 공간의 미학이다. 앙증맞고 아기자기하다. 루터처럼 황제 앞에서 당당하게 소리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보름스 홀 개관 날 재하(초3)가 교황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더 이상 교회당 크기와 좌석 수를 자랑할 때가 아니다. 교회가 제공해야 할 것은 공간 레시피다. 아니, 우리 스스로 공간 기획자가 돼야 하지 않을까. 종종 함석헌 선생의 시를 패러디해 스스로 묻는다. “그대는 공간 레시피를 가졌는가. 세상의 소리가 닿지 않는, 세상의 냄새가 스며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가졌는가. 마음의 대문을 열고 수다를 떨 카페를, 사랑하는 이와 나설 산책길을 마련해 두었는가. 펜트하우스 부러워 말고, 공간 레시피로 세상의 공간을 다 누려보라. 거기 행복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으니.”

공감 지능이 모자라 지청구를 듣던 내가 어느새 공감 인간을 넘어 공간 인간을 꿈꾼다. 알고 보니 공간은 벽이 아니라 창이었다. 고요한 골방, 수다스러운 사랑방, 사색의 산책길, 그곳에서 비로소 타인의 눈물과 웃음을 만난다. 공간 속에서 공감이 자라나고 공감이 공간을 풍요롭게 한다. 그 어울림 속에서 나는 온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하이패밀리 대표
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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