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생일에 준비한 것... 이거 하나면 '찬사'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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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규 기자]
9월이 되자 아침저녁으로 가을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은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고, 기후 변화로 인해 이른바 '처서 매직'도 의미가 없어진 요즘이지만, 그래도 계절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늦더위가 힘들긴 해도 습하지는 않아서 견딜만한 것을 보면 이제 본격적인 가을도 머지않았음을 알겠다.
동네 마트는 조금 이르게 가을을 맞았다. 초가을 제철 과일이며 채소들이 하루가 다르게 매대에 오르고 있다. 그중 내 눈길을 끈 것은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 가득한 자줏빛 무화과들이다. 영암에서 올라온 잘 익은 무화과가 한 상자에 5000원 남짓으로 싸다.
무화과는 따뜻한 남해안 쪽에서 재배되는데, 거의 대부분은 영암 등 전남 지방에서 생산된다. 8월 하순부터 10월 초가 제철이니 지금이 본격적인 무화과 시즌이라고 봐야겠다. 얼마 전까지는 수도권에서 무화과 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자주 눈에 띈다. 무화과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웃집 무화과나무의 추억
무화과를 처음 접한 건 어릴 때였다. 고향인 부산에서도 무화과 구경은 쉽지 않아서 시장에 나가 무화과를 사 온다거나 했던 기억은 없지만, 희한하게도 일반 가정집 마당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를 더러 볼 수 있었다.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1970년대 초반경, '응답하라' 시리즈(tvN 드라마)에 나올 법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늘어선 가옥들의 구조는 대략 비슷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통로를 겸한 손바닥 만한 마당이 있고, 그 옆으로 몇 그루의 나무들이 소박하게나마 조경을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집장사' 라는 사람들이 지어서 팔았다는 그런 비슷비슷한 구조의 양옥들은, 그래도 들어가 보면 생김새도 조금씩은 차이가 있고 나무들 종류도 같은 듯 달라서 나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가 세를 살던 집 마당에는 예쁜 백목련이 봄마다 꽃을 피웠는데, 이웃집에는 목련 대신 제법 높은 무화과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가지가 담을 넘어 들어오는지라 옥상에 올라가 손을 뻗으면 잡힐 정도였다. 꽃도 피지 않는 가지 끝에는 이상한 열매가 몇 개 달려 있었는데 그게 무화과였다. 또래 아이들이 "이찌지꾸"라고 일본말로 부르던 그것. 반으로 갈라 보면 자글자글한 씨앗이 보였고, 말할 수 없이 달콤했던 그 맛이라니. 나는 가끔 홀린 듯 열매를 따 먹곤 했다. 이웃집 아주머니한테 허락을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아주머니는 알면서도 웃어넘기지 않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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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철 무화과를 듬뿍 넣어 만든 샐러드 |
| ⓒ 여운규 |
값진 선물을 준비하거나 비싼 음식점을 가는 것도 좋지만 생일만큼은 손수 만든 음식을 놓고 축하를 주고받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명절에는 차례상 차리느라 애쓸 것 없이 잘 쉬면서 외식이나 여행으로 가족 간의 화목을 다지는 게 더 의미가 있고, 생일날은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축하를 나누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제 무엇을 먹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다. 생일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음식이 미역국 불고기 잡채 등등이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올해는 제철 음식으로 포인트를 주고 싶었다. 마침 우리 집의 생일 주간은 무화과의 제철과도 정확히 겹치지 않는가. 생일상에 무화과를 올려보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무화과는 이름과 달리 꽃이 없는 식물이 아니고, 열매 속에 숨은 꽃을 먹는 거라고 했다. 꽃다발 대신 먹는 꽃이라니. 뭔가 축하하는 의미가 강조되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만들어 본 것이 무화과 샐러드였다. 만드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 잘 익은 무화과를 5~6개 정도 준비해서 사 등분 한다.
- 루꼴라를 잘 씻어 접시 바닥에 깔고 방울토마토를 잘라서 적절히 놓는다.
- 그릭 요거트와 크림치즈를 섞은 것에 꿀이나 올리고 당 등을 넣어 잘 섞어서 접시 가운데 담는다. 부라타 치즈가 있으면 더 좋다.
- 맨 위에 잘라둔 무화과를 장식하듯 올리고 올리브유에 레몬즙이나 화이트 와인 식초를 섞어 만든 드레싱을 골고루 뿌리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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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리비도 제철을 맞았다. 화이트 와인으로 술찜을 만들었다. |
| ⓒ 여운규 |
청무화과 케이크의 달콤함이란
하지만 달콤한 무화과는 뭐니뭐니해도 디저트로 쓰일 때 더 완벽하다. 아내 생일 다음 주에 맞이한 어머니 생신에는 미역국 등 전통적인 생일상을 물린 다음 무화과 케이크가 마무리로 등판했다. 생일에 케이크가 빠지면 섭섭하니까. 다만 케이크 굽기란 손수 하기엔 너무 어려운 과제였으므로 특별한 곳에서 주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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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수영동의 보석같은 레스토랑 '파우재'에서 만든 청무화과 레드벨벳 케이크 |
| ⓒ 여운규 |
결과는 역시 명불허전. 생일잔치를 마무리하는 최강의 메뉴였다. 혹독한 여름 더위를 견뎌낸 보상과도 같은 달디단 무화과를 맛보며 우리는 어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달콤한 무화과의 계절은 한두 달 정도로 결코 길지 않지만 그만큼 소중하다. 우리 일상의 기쁨과 행복 또한 비록 영원히 이어지진 않겠지만 무화과의 단맛과 함께라면 더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그런 기억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원천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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