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절대권력과 위기의 삼권분립

이상렬 2025. 9. 1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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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수석논설위원

이재명 정권은 ‘전임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뭘 해도 불법 계엄을 일으킨 전임 대통령보다 낫겠거니 여기는 기류가 시중에 상당하다. 가령 대통령의 형사사건 변호인들이 잇따라 정부 요직에 기용되는 일은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얼마 전엔 외교 경험이 전무한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 변호사가 유엔 주재 대사에 임명됐다. 지금 유엔이 어떤 곳인가. 미·중 패권 경쟁과 트럼피즘의 등장으로 국제 질서가 새로 쓰이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가 외교전을 펼치는 최전선 아닌가. 외교가의 우려는 심각하다. 증인 없는 인사청문회는 또 어떤가. 국무총리를 비롯해 많은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증인 한 명 없이 진행됐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결실 중 하나로 꼽히는 인사청문회는 이렇게 형해화됐다.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고위 공직자 자질 검증은 물 건너가고, 국정 투명성은 퇴보할 것이다.

「 권력 서열론은 삼권분립 위협
여당의 대법원장 공격 도 넘어
사법부 독립 없으면 독재 못 막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절대권력’을 만끽 중일 것 같다. 산업재해에 대한 강력 제재를 언급하자 전국의 건설 현장들이 멈춰섰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소극적인 국내 투자를 거론한 다음 날 공교롭게도 연기금이 주식을 대규모로 순매수했다. 대통령 스스로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됐으니”(12일 타운홀 미팅)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 ‘힘’이 급기야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건드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권력 서열론’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선출 권력, 간접선출 권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거로 뽑힌 행정부(대통령)와 입법부(국회)가 사법부(법원)보다 우위에 있다는 권력 서열론대로라면 삼권분립은 존립할 수 없다.

대통령 윤석열에게 파면 선고를 했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 헌법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했다. 헌법엔 삼권분립의 원칙이 명확하게 쓰여 있다. 제40조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로, 제66조엔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로, 제101조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로 돼 있다. 헌법 어디에도 행정·입법·사법 권력의 서열이 매겨져 있지 않다.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해 헌법에 따라 만든 기관”(문 전 대행)이다. 헌법도 헌법이지만, 세상사의 이치로만 따져도 권력 서열론과 삼권분립은 상극이다. 서열이 있다면 낮은 서열이 높은 서열을 어떻게 견제한단 말인가. 서열이 정해지는 순간 견제와 균형은 힘을 잃게 된다. 정부와 의회가 민주주의를 저버리고 국정을 망가뜨릴 때 제동을 걸 수 있는 건 사법부밖에 없다. 그래서 독재자들이 정권 잡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사법부 장악이고, 말을 듣지 않는 판사들을 싹 교체하는 거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비롯해 21세기 독재자들이 다 그렇게 했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10일 서강대학교에서 '법률가의 길-헌법소원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위헌 소지에 휩싸인 내란전담재판부 논란 와중에 집권당 대표가 깃발을 든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압박도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 존중과 동떨어져 있다. 더구나 민주당 일각의 움직임은 어떤 각본 아래 ‘대법원장 흔들기’가 진행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지금까지는 대략 이런 순서다. ① 면책특권을 이용해 의혹 제기 ② 의혹을 수사해야 하고, 의혹 때문에 직무 수행이 부적절하다고 공격 ③ 당사자가 부인하면 왜 이렇게 빨리 부인하느냐고 공격. 이는 대법원장만의 일이 아니다. 대법원장에게도 이런 공격을 퍼붓는 걸 지켜보는 판사들이 과연 대통령 사건을, 집권세력 연루 사건을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판결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미 대통령이 ‘선출권력이 임명권력보다 위’라고 규정했지 않은가.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은 절대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다. 전 세계 민주국가가 그걸 지키려고 한다. 역사는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독재로 가는 길이 열렸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그래서야 되겠는가.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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