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원의 마음상담소] 덜 착한 마음으로

2025. 9. 1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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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20여년 전, 3년 내내 모 대학병원에서 자살기도자가 응급실로 내원하거나 중환자실로 입원하면, 그 즉시 뛰어가 임상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한 시간 넘도록 자살 이유에 대해 면담을 하다 “환자분이 왜 죽으려 하세요?” 참고 참다가 말을 건네면, 예외 없이 돌아오는 답은 “그러게요” 였습니다. ‘그러게요.’ 그 답에 매번 그렇게도 화가 나, 늘 방으로 돌아와 화를 삭여야 했습니다.

그즈음 언젠가, 자살의 위험요인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직후 관련 부처와 통화할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안건을 어찌어찌 처리한 이후, 담당 직원분은 목소리를 낮추어, “이건 정말 제가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요”라며 운을 떼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고 보세요?” 어째서인지 그 예상치 못했던 질문을 받았던 그 순간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일말의 숙고도 조금의 지체도 없이 드렸던 답도 또렷합니다. “착해서요.”

「 사회의 비현실적 기대 짓눌려
자신을 태워버리는 경우 많아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지 말길

김지윤 기자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는 그 순간의 제 답변에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답은 맞는 답이었을까. 내내 곱씹었습니다. 그러나 매번 결과값은 같았습니다. 네, (대체로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착해서 자살합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데, 그게 옳다고 믿어 자살합니다. 혼자 생각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살합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 눈에 미치지 못해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서, 기준에 맞지 않아서, 짐이 되어서, 도움이 되지 않아서, 자살합니다. 사회가 부과하는 완벽함에 다다르려는, ‘사회부과 완벽주의’ 때문입니다.

사회의 비현실적인 기대에 기꺼이 부응하려 강박적 노력을 기울이다 결국 스스로를 태워버리고 마는 사회부과 완벽주의는, 자신만의 고유한 기준을 세우고 다다르려는 ‘자기지향 완벽주의’와는 다릅니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타인에 위탁합니다. 사회부과 완벽주의는 최근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이는 자살의 증가 추세와 맞물리는 패턴입니다. 1989~2017년의 데이터들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및 초기 성인기에서 사회부과 완벽주의가 30년 사이 3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이 완벽주의의 유형은 우울, 불안, 거식, 폭식, 강박, 충동 조절의 어려움, 인터넷 사용 문제, 자해, 자살의 주요한 원인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연구실에서 발표한 연구 역시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자살하려는 의도는 없이 반복적인 자해를 하는 분들은, 단순히 정서 조절력이 약하다 할 수 없는, 오히려 참고 또 참아내는 분들이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감정적 고통을 감내하며 스스로를 해치는 분들.

불가능한 기준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참고 노력하라는 사회의 유독한 메시지가 사회부과 완벽주의의 주된 원인입니다. 성취는 이래야 하고 외모는 이래야 하고 수입과 사는 곳은 이래야 하고 심지어 성격은 이래야 하고. 이전 세대 같았으면 첫 줄만 읽고는 ‘배 째라’며 찢고도 남았을 비현실적인 기준표를 요새는 마음에 깊이 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문제가 됩니다.

수용전념치료라는 한 심리 치료적 관점에서는 인간을 ‘문제 해결 기계’로 봅니다. 어떻게든 문제를 찾아내어 제거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이들을 실망시킨다고 생각하고 내 모든 것이 민폐이고 문제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나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명쾌한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애초에 문제를 규정하는 방식이 틀렸습니다.

선한 분들, 이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세요. 영화 ‘트루먼 쇼’에서처럼,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사회가 억지스레 만든 세트장인 것을 알아차리고, 거리를 두어 생경하게 바라보세요. 다른 사람들의 삶에 주인공이 되고자 하지 말아요. 그런 기준을 부과하려 드는 사람들의 세상에 엉뚱하게 서 있지 마세요. 그 세트장에서는 (스스로가 가장 자랑스러운 혹은 세상에서 가장 측은한) 본인들이 주인공 하게 두세요. 나에게 실망하도록 두세요. 어차피 나를 위한 세트장도, 나를 위한 기준도 아니었습니다.

그만 참아내고, 배짱을 한 번쯤 부려 세트장을 부수어 보면, 그 기준은 얼마나 얄팍했으며 내 문제의 원천이 실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더 넓은 시야에서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뭐, 실제로 내가 사회나 타인의 기준에서는 때론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세상에선 어림도 없습니다. 나는 문제였던 적이 없습니다. 늘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누구도 완벽해질 수 없는 그 세계를 떠나 그냥 고요한 나의 자리로 돌아가세요. 어딜 감히. 어림없지 하며, 조금은 덜 착한 마음을 품고.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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