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몇 들어갈 만한 솥으로 튀김을... 숨 쉬기 어려울 정도

30대 조리실무사 2025. 9. 1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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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기획 - 이재명 정부 100일, 청년과 노동 ③] 학교 급식실에서 내일을 꿈꾸다

[30대 조리실무사]

기자말
민주노총이 이재명 정부 100일을 맞아, 청년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은 릴레이 기고를 기획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청년이 말하는 '다시 만난 세계' 는 어떤 모습일지, 고민과 희망을 담은 글을 전합니다.
나는 3년 차 조리실무사다. 오전 7시 40분까지 출근하면 되지만, 보통 같이 일하는 분들은 훨씬 일찍 도착해서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다. 업무는 식재료 검수부터 시작한다. 담당이 소독물을 받고, 오늘 사용할 물을 끓이고, 쌀을 세척해 밥솥에 나눠 담는다. 그날 사용할 조리도구들을 꺼내놓고, 장갑이나 토시 같은 빨래를 정리해 두고 나면 바로 식재료 검수에 들어간다. 처음 일을 시작하고 당번을 할 때 뭘 해야 할지 잘 몰라 허둥지둥하고, 해야 할 일 몇 가지를 빼먹기도 했다. 동료들은 안 그래도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현장에서 새내기 조리실무사를 데리고 일하느라, 두 배 더 힘이 들었을 거다.내가 일하는 학교는 조리사를 포함해서 10명이 일하고 있다. 우리의 정식 명칭은 조리사, 조리실무사다. 학생들은 배식을 받으러 와서 이모, 누나, 언니 여러 호칭으로 '이거 더 주세요' 한다. 이모, 아줌마라는 말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업무라는 편견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까. 오전 시간 내에 수백 명의 밥과 국, 반찬을 요리하는 일은 기술과 숙련도, 속도를 가져야 한다. 또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기구와 위생적 조리 과정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필자가 일하는 학교 급식실 내부 모습
ⓒ 민주노총
우리 학교의 경우 튀김, 야채, 밥, 조림, 국 순서로 조리를 돌아가면서 맡는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하자마자 맡은 메뉴는 튀김이었다. 그날은 치킨을 튀기는 날이었다. 나랑 처음 짝이 된 언니는 원래는 처음 들어오자마자 튀김 요리를 시키지는 않는데 워낙 처음 일을 시작한 인원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처음이라 무서우면 오늘은 뒤에서 지켜봐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줬다. 180도가 넘는 기름이 끓고 있는 솥은 사람도 몇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거기에 튀김 반죽을 입힌 재료를 넣다 보면 훅하는 열기가 얼굴을 덮치는데 그럴 때는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다.

부족한 인력과 생활의 무게

조리 과정에서 나오는 조리흄으로 인한 폐암이 급식 노동자의 산재로 인정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튀김 요리를 할 때는 매번 조리흄으로 인한 폐암 산재를 생각하게 되고, 건강검진 때 촬영하는 폐 CT 검사 결과에 이상이 있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게 되는 것은 여기서 일하고 생긴 변화다.

학교 급식실은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퇴근하면 언니들은 병원 다니는 게 일상이다. 아파도 마음 편하게 쉴 수 없다. 대체인력을 구하는 예산이 없다는 소리는 수십 번도 더 들었다. 손발을 맞춰왔는데 장기간 병가에 들어가려면 아무리 대체인력을 구해도 눈치가 보인다. 3월에 짝이 된 언니도 방학 중에 허리를 수술했는데 개학 시기에 안 나오면 민폐가 될 것 같다며 출근을 했다. 병원에서 권장한 휴직 기간은 당연히 더 길었고, 언니는 회복되지 않은 허리에 보조기를 차고 일을 했다.

7월, 8월은 방학이 낀 달이라 월급이 너무 적었다. 급여명세서를 보면 임금이 적을 거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내가 어떻게 일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며 화가 나기도 한다. 특히 여름은 더워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몸도 축축 처지는데 급여명세서를 보면 두 달을 버텨낼 생각에 막막해진다.

방학 동안에 모자란 월급을 채우려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겸업 금지 조항이 있어서 겸업 허가서를 학교에 받아야 한다. 겸업 허가서를 받는 일도 쉽지 않다. 규정에 나와 있지도 않은 자료를 요구하고 각종 서류를 제출하다 보면 짧은 방학이 다 지나가는 것 같다. 짧은 여름방학은 그렇다 해도 이제 다가올 긴 겨울방학이 더 걱정이다.
 튀김 작업 중인 학교 급식실 현장
ⓒ 민주노총
동료애와 노동조합의 힘

내가 일하는 학교는 오전 11시 50분부터 배식을 시작한다. 처음에 배식할 때는 학생들에게 맛있게 먹으라고 인사해 주고 싶었는데, 정신이 없어 학생들이 보내는 인사를 받아주지도 못하고 보낼 때도 많았다. 혹시나 음식이 모자랄까 봐 한 명 한 명 마음속으로 인원수를 세다가, 인사를 받아주는 순간 몇 명까지 세었는지 까먹어버리기 때문이다(지금은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도 해 줄 수 있다!)/ 맡은 메뉴가 맛있게 잘 된 것 같다는 언니들의 칭찬에 집에 돌아와서도 뿌듯함에 붕붕 뜨는 날도 있고, 실수하고 부족한 날에는 의기소침할 때도 있다.

매일 대량으로 조리하면서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의 힘을 느낀다. 몇 백 명 분량의 식판을 매일 빼고 세척해서 넣는 일도, 메뉴가 많고 복잡해 '이걸 어떻게 다 해내지' 싶다가도 여럿이 함께 붙어서 결국 해내고야 만다. 그런 것처럼 노동조합으로 뭉친 힘으로 우리가 일하는 조리실 노동환경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학교급식법 개정과 하반기 총파업을 앞두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부족한 인력문제를 해결하고 배치기준을 완하하는 것,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 방중 무임금 해결로 생계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위해 학교급식법에 우리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는 보장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하는 30대 청년 조합원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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