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선댄스 키드' 로버트 레드포드, 잘 가요
[김건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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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을 향해 쏴라> 스틸. |
| ⓒ 20th Century Fox |
할리우드 최고 스타이자 가장 예리한 비판자
1969년 <내일을 향해 쏴라>(원제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속에서 처음 마주한 로버트 레드포드는 이미 완성된 배우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금발, 장난기 가득한 미소, 그 미소 뒤에 감춰진 예리한 지성까지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캐릭터는 기존 서부영화의 남성상을 전복시키는 혁명적 존재였다. 존 웨인의 거친 남성성에 국한되지 않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차가운 금욕주의도 아닌, 도시적이면서도 야생적인 양면성을 모두 갖고 있는 감각적인 새로운 인물상을 제시하는 히어로의 원형이었다.
선댄스 키드는 무법자였지만 우아했다. 서부의 총잡이였지만 시적인 감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도망자였지만 품위를 잃지 않았다. 이러한 캐릭터는 1960년대 말 미국의 반문화 운동이 할리우드에 스며들면서 탄생한 새로운 남성상을 체화한 형태에 가깝다. 폴 뉴먼과 함께 보여준 연기 앙상블은 버디 무비와 서부극의 차원을 넘어 기존 질서에 맞서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우정을 그린 시대정신의 알레고리였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기 세계는 <내일을 향해 쏴라> 이후 더욱 깊은 사회적 의식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1976년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그가 연기한 밥 우드워드는 진실에 대한 치열한 갈망을 품은 현대적인 기자였다.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칼 번스타인과 대조를 이루며 레드포드는 냉철하면서도 열정적인 탐사 기자의 이중성을 완벽히 구현해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파헤쳐나가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카프카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거대한 시스템의 미로를 헤매는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을 담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치 스릴러의 영역을 넘어 개인이 거대한 권력구조와 맞설 때 느끼는 고독과 의무감을 시각화한 연기사적 성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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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로버트 레드포드를 대표하는 필모그래피 중 하나가 되었다. |
| ⓒ 워너브러더스 |
배우로서의 성공이 절정에 이르렀던 1980년에 그는 과감히 카메라 뒤로 자리를 옮겼다. 연출 데뷔작인 <보통 사람들>(원제 'Ordinary People')은 그의 예술가적 역량을 의심 없이 증명했다. 중산층 가정의 해체를 그린 작품에서 그는 배우 시절 보여준 감수성을 연출로 승화시켰다.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은 부수적 성과에 불과하다. 이 영화의 진정한 성취는 가족이라는 가장 친밀한 공동체 안에 숨겨진 소외와 상처를 서정적이면서도 냉정하게 해부해낸 시선의 탄생이었다.
1994년에는 <퀴즈 쇼>를 연출하며 그의 사회비판 의식을 영화적으로 완전히 전이시켰다. 1950년대 텔레비전 퀴즈쇼 조작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가짜 진실과 그것에 현혹되는 대중의 어리석음을 예리하게 고발했다. 이는 그 자신이 미디어가 만든 스타였기에 가능한 자기반성적 시선이기도 했다.
개인의 반란이 만들어낸 기적같은 '선댄스 영화제'
그러나 로버트 레드포드의 진정한 유산은 배우나 감독으로서의 성취를 넘어선 '선대스'에 있다. 1978년 유타 영화제로 시작되어 1985년 '선댄스 영화제'로 이름을 바꾼 이 행사는 개인의 미학적 신념이 어떻게 하나의 문화적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창립한 선댄스는 단순한 영화제가 아니었다. 할리우드라는 꿈의 공장으로 대표하는 영화 산업 시스템에 맞선 미학적 저항운동이었다. 젊은 영화인들에게는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제공하는 공간이자 마법의 무대였고,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신선함의 장을 꾸린 공간이었다. 레드포드는 자신이 스타로서 축적한 경제적, 문화적 자본을 이 프로젝트에 쏟아부었다. 지금은 대표적으로 시네필에게 익숙한 코엔 형제를 발굴한 곳이 선댄스였고, 배급사 미라맥스와의 협업을 통해 할리우드 자본의 통제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영화들을 발굴해 나간 곳도 선댄스였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건 레드포드라는 한 개인이 품은 문화적 비전이 현실화된 결과였다.
선댄스는 신인 발굴의 장을 넘어 미국 독립영화의 미학적 정체성을 규정했다는 점이 가장 큰 성취일 것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화려함과 대척점에 선 소규모 예산의 작가주의 영화들, 상업적 성공보다는 예술적 진정성을 추구하는 영화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선댄스가 제시한 대안적 가치관 때문이었다.
불의에 맞선 예술가의 여정
로버트 레드포드의 삶을 관통하는 또 다른 축은 그의 정치적 신념이다. 그는 결코 성급하게 정치적 메시지를 앞세우는 배우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선택하는 작품들을 통해 일관된 세계관을 드러냈다. 환경보호 운동가로서, 진보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신념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선택에는 거침이 없었다.
<후보자>에서는 정치의 타락을,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서는 권력의 부패를, <퀴즈 쇼>에서는 미디어의 조작을 다뤘다. 말년에 마블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 출연할 때조차 그는 정치적 악역을 선택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는 권력에 대한 경계심과 자유에 대한 신념이 깔려 있었다. 그의 환경보호 활동 또한 마찬가지다. 1961년 유타로 이주하여 그곳의 자연 보호를 위해 헌신한 건 개발과 성장의 명목하에 파괴되어가는 것들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을 반영한 선택이다. 선댄스 영화제 또한 이러한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자본의 논리에 맞서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마지막 서부인의 석양
석양을 등지고 도망가는 선댄스 키드의 죽음이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 건 그가 뛰어난 배우나 감독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할리우드가 아직까지 꿈과 이상을 품고 있던 시대의 마지막 증인이었고 스타 시스템과 예술적 양심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걸 멈추지 않았던 마지막 세대의 지식인이었다. 무엇보다 개인의 신념이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실천가였다.
유타의 산중에서 맞은 그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본다. 그곳은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자연의 고요함과 멀리서 들려오는 젊은 영화인들의 꿈틀거리는 소리가 공존하는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떠나도 선댄스 영화제는 계속될 것이고 그가 심은 독립영화의 정신은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 속에서 다시 꽃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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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스터 스마일>의 로버트 레드포드. 영원한 선댄스 키드에게. Rest In Peace. |
| ⓒ 20th century film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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