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에서 독립영화 대부로... 로버트 레드퍼드 별세

윤현 2025. 9. 1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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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일기로 세상 떠나... 배우·감독·활동가 넘나든 '할리우드 전설'

[윤현 기자]

미국 할리우드 영화배우이자 감독·제작자 로버트 레드퍼드가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6일(현지시각) 레드퍼드 홍보를 담당하는 로저스&코완 PMK의 최고경영자(CEO) 신디 버거는 "레드퍼드가 유타주 산속의 자택에서 잠들 듯 숨을 거뒀다"라고 전했다.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밝히지 않았다.

1936년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태어난 레드퍼드는 예술과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콜로라도대학에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서 그만두고 유럽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미남 배우' 타이틀 넘고 싶었던 레드퍼드
 영화계의 전설이자 60년에 걸쳐 배우와 감독으로 활약했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2025년 9월 16일 이른 시간, 유타 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9세.
ⓒ AFP/연합뉴스
연극과 TV 드라마에서 활동하던 레드퍼드는 <위대한 개츠비>,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7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남 스타로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1969년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연기한 실존 인물 '선댄스 키드' 역은 레드퍼드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AP통신은 "레드퍼드는 헝클어진 금발 머리와 소년 같은 미소로 유명한 배우가 되었지만, 오히려 매력적이지 않은 역할을 맡으려고 하면서 자신의 외모를 뛰어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였다"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도 "레드퍼드는 모든 역할을 마치 자신이 당연히 연기해야 할 역할처럼 보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배우의 인기에 안주하지 않고 40대 들어 감독 활동도 병행한 그는 아들의 죽음을 겪은 미국 중상류층 가정의 붕괴를 그린 <보통 사람들>로 1981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미국 몬태나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1992년 레드퍼드의 연출작 <흐르는 강물처럼>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환경 문제에도 큰 관심... 제주 강정기지 비판하기도

레드퍼드가 영화계에 남긴 최대 업적 중 하는 바로 자신이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연기한 선댄스 키드의 이름을 따서 1985년 선댄스 영화제를 창립해 독립영화 운동을 장려한 것이다.

처음에는 소규모 영화제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독립 영화의 대명사가 되었고, 가능성 있는 신인 감독과 배우의 등용문이 되면서 새 얼굴을 찾는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가 가장 주목하는 영화제 중 하나다.

쿠엔틴 타란티노, 스티븐 소더버그, 제임스 완, 클로이 자오, 대런 아로노프스키 등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감독들이 무명 시절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성장했다.

이런 기여를 인정받아 레드퍼드는 2002년 아카데미 평생 공로상을 받았으나, 선댄스 영화제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자 오히려 목적을 잃고 있다면서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레드퍼드는 영화인을 넘어 환경 문제와 소수자 인권 등 사회 현안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였다. 생전에 천연자원보호위원회 이사로 30년 넘게 활동했으며, 언론 매체에 칼럼도 꾸준히 기고했다.

2012년에는 환경 전문지 <온어스>에 제주도 강정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칼럼을 싣고 국제사회의 연대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군비 경쟁이 한국의 낙원을 위협한다'는 칼럼에서 "제주는 평범한 섬이 아니다.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자연, 독특한 전통, 그리고 신성한 숲으로 '세계 7대 자연경관'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라며 해군기지가 제주의 해양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비밀과 위선으로 군사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라며 "사실과 행동주의로 더 늦기 전에 이를 막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레드퍼드는 작품성 있는 영화를 통해 사회 및 문화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했다"라며 "그의 작품은 사회가 스스로 의미를 찾도록 도왔고, 영화 밖에서는 환경 운동을 전파하고 독립 영화를 키웠다"라고 전했다.

레드퍼드가 '독재자' 비판했지만... 트럼프 "그는 위대했다"

진보 성향이 강했던 레드퍼드는 2020년 대선 때 언론 기고를 통해 당시 연임을 노리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가면 쓴 군주제"라면서 "연임하면 미국은 독재 정치로의 추락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영국 국빈 방문을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이 레드퍼드에 대한 평가를 묻자 "나는 레드퍼드가 위대했다고 생각한다(I thought he was great)"라고 말했다.

전 국무장관이나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도 "레드퍼드는 진정한 미국의 아이콘"이라며 "배우이자 감독으로서의 전설적인 경력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업적을 보며 그를 항상 존경했다"라고 밝혔다.

영화계에서도 <슈퍼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을 연출한 제임스 건 감독이 "나는 레드퍼드의 영화들을 보면서 자랐다.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연기와 변함없는 우아함이 돋보였다"라면서 "그는 진정한 영화 스타였고, 그가 그리울 것"이라고 추모했다.

레드포드와 함께 여러 차례 작품에 출연했던 제인 폰다도 "레드퍼드는 모든 면에서 아름다운 사람"이라며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레드퍼드와 출연한 메릴 스트립은 "사자 한마리가 세상을 떠났다"라며 "사랑하는 친구여, 편히 쉬길"이라는 추도사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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