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계화? 新질서!]①미국의 이탈? 新무역질서의 도래?

세종=강나훔 2025. 9. 17.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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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30년간 이어온 전면적 세계화가 막을 내리고 있다. 저관세와 자유무역, 글로벌 분업에 기대온 밸류체인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무시하며 세계 각국을 상대로 일괄·차등 관세를 부과했고, 세계무역기구(WTO)는 사실상 기능을 멈췄다. 이제 국제 교역은 '무역 질서'가 아니라 '거래 질서'로 움직인다. 법과 규범 대신 협상과 정치가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 역시 새로운 무역질서 속에서 비용을 최소화하고 기회를 극대화하는 전략적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트럼프 2기의 '관세 리셋'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함께 출범한 2기 행정부는 2025년 4월2일 행정명령(EO 14257)을 시작으로 7월31일, 9월5일 잇따라 개정 명령을 내리며 사실상 '관세 체계 리셋'을 단행했다. 기존 FTA나 WTO 양허관세를 뛰어넘어 국가별·품목별·조건부로 15~25% 기본율, 경우에 따라 최대 50%까지 적용하는 상호관세 체계가 가동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보호무역이 아니라 국제통상 규칙 위에 새로운 규칙을 덮어쓴 조치에 가깝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미 FTA에도 불구하고 한국산 자동차, 철강에는 15~50% 신규 관세가 부과됐다. FTA가 있어도 미국의 비상경제권(IEEPA)에 근거한 관세 부과가 우선할 수 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미국 시장 접근을 유지하려면 결국 '딜'에 응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인교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별로 다른 관세율을 부과하는 순간 WTO의 근간이 흔들린다"며 "앞으로는 내국민대우(NT)까지 위반되는 사례가 상당히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이) 전에는 '펜타닐 관세'처럼 안보 위기를 내세웠고, 한때는 전 세계 일률 10%였다. 지금은 국가별 차등이다. 미국이 WTO와 병립할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실제 국제 분쟁을 중재할 기구는 사실상 사라진 상태다. WTO 상소기구가 2019년부터 마비 상태에 빠져 있고, 급기야 미국은 지난달 WTO 체제의 종식을 고했다. 회원국들은 분쟁해결기구(DSB)의 개점휴업을 인정했고, 유럽연합(EU)·칠레·브라질 등이 참여하는 임시상소중재(MPIA)만이 제한적으로 가동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MPIA는 참여국 간에만 효력이 있다. WTO라는 다자 규범의 구속력은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

FTA 역시 힘을 잃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협정을 '국익 우선' 원칙으로 재해석하거나 무력화했다. 결국 통상환경은 규범에서 거래로, 제도에서 정치와 힘의 논리로 이동했다.

새 시대의 단면은 스위스와 캐나다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은 8월 초 스위스산 제품에 39%라는 이례적 고율을 매겼다. EU(15%)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스위스 연방평의회는 즉각 "매우 유감"을 표명하며 양자 협상에 나섰지만, 경제 논리보다 정치적 감정이 통상 결과를 좌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스와치는 아예 '39%'를 풍자한 시계를 내놓으며 여론전에 나섰다. 통상이 정치·여론 이벤트로 번진 것이다.

캐나다는 3월부터 보복관세를 가했다가 지난 1일 상당 부분을 철회했다. 대신 자동차·철강·알루미늄에만 보복을 유지하며 미국과 '빅딜' 협상 국면에 들어갔다. 보복 전면전 대신 핵심 산업만 남겨 정치·안보 패키지로 돌파구를 찾는 방식이었다. 두 사례 모두 경제적 합리성보다는 정치적 관계, 감정적 대응이 의사결정을 지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딜 중심 블록무역'인가, 미국만의 이탈인가

이 같은 판을 두고 해석은 엇갈린다. 하나는 미국을 축으로 '딜 중심 블록무역'이 상수화됐다는 시각이다. 캐나다의 선택처럼 관세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 안보·에너지 협력을 묶는 방식은 이 흐름을 잘 보여준다.

세계 교역의 블록화 움직임은 한국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정 전 본부장은 "브릭스가 단순한 정치적 연대를 넘어 경제협력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대항 블록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브릭스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 시장을 포기할지는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모든 국가에 고율 관세를 매기기보다는, 일부 국가를 선별해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 전략'을 병행할 것이란 분석이다.

다른 시각은 '미국만의 이탈'이다. EU, 한국, 일본 등은 여전히 WTO 규범을 지키고자 한다. EU는 MPIA를 통해 상소 절차를 살려내고, 역내 규범을 강화해 다자주의를 방어하고 있다. 즉, 세계 전체가 블록화됐다기보다 미국만 기존 질서에서 탈피해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석이 어떠하든 한국은 대미 의존도가 큰 만큼 미국 관세 조치의 직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자동차와 철강 등 주요 수출품이 상호관세 대상에 포함된 데다,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충격파가 불가피하다. 단기적으로는 업종별 피해를 줄이기 위한 협상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유예 기간·스냅백 조항 등 세부 조건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국에는 '규범 축'과 '딜 축'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EU와 함께 임시상소중재(MPIA)를 활용해 최소한의 분쟁 해결 기능을 확보하는 동시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검토 등 지역 통상 규범망 참여를 넓히는 방안도 거론된다. 아울러 EU가 추진하는 디지털 무역 규범과 탄소국경조정제(CBAM) 같은 기후 통상 규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WTO 이후 시대의 새로운 규범 체계에 연동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미국식 거래 질서에서는 금융·투자·에너지 구매 약속이 관세율과 직결되는 경우가 늘고 있어, 공급망을 안보·에너지·통화(스와프)와 함께 묶어 관리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규범과 거래가 병존하는 하이브리드 질서'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시장 접근이 절실한 업종은 미국식 거래 질서에 따르고, 역내·제3국 교역은 전통적 규범에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대미 협상에선 거래의 언어로 대응하되, EU·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등과의 협력에선 규범의 언어를 강화하는 '이중 트랙'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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