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한지붕 세가족, 제주에 살고 있습니다

김태리 2025. 9. 1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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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바닷가 마을 이웃사촌 이야기... 층간소음 대신 층간안부, 삶의 든든한 동반자

[김태리 기자]

서귀포의 작은 바닷가 마을, 가까이로 서귀포 바다가 창에 담기고, 바다 냄새가 늘 스며드는 이곳에서 나는 '현대판 한지붕 세가족'과 함께 산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우리 세 가구는 지금 가장 가까운 가족 같은 이웃이다.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그저 같은 건물을 나누어 쓰는 '이웃'일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물, 햇살, 주차장, 옥상까지 함께 쓰는 사이가 되었다. 층간 소음이 아닌 층간 안부를 나누고, 층간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선을 서로 잘 지켜가면서.

마음을 열고 나누는 삶
▲ 이웃사촌 저녁나눔 함께 먹으니 차리는 것도 한번, 설거지도 한번만 하면 되어서 너무 좋다
ⓒ 김태리
이웃들과 함께 사는 건, 단순히 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마음을 여는 일이었다. 수도요금 정산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 채팅방은 '우리집에서 밥 한번 같이 먹어요~'로 이어졌고, 그렇게 함께 나눈 식탁은 '다음엔 저희집에서 먹어요'로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말 그대로 숟가락 하나씩 더 얹으면 밥도 한번에, 설거지도 한번에 할 수 있는 효율성까지 높은 사이가 되었다. 작은 식탁에 나란히 모여 앉아 먹는 밥은 하루의 피로를 녹여주고, 서로의 하루를 이어주었다.

"저희집에 손님이 좀 많이 오는데 혹시 층간소음 같은 건 없었어요? 조심한다고는 하는데 시끄럽거나 하면 꼭 말씀해주세요. 더 조심할게요!!"
"아니에요, 저는 '2층과 옆집에 아무도 안 사나?' 생각할 정도로 조용해서 신기했어요."

이렇게 같이 식사를 나누니, 함께 공유하고 있는 건물 내에 서로 불편함을 주고 있지 않은지 편하게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어 더 좋았다.
▲ 바다가 하늘이 펼쳐진 풍경 매일 같이 공유하는 우리집 뷰
ⓒ 김태리
제주에 이주해 온 경상도 출신의 사람들, 운동을 좋아하고, 각각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우는 반려동물이 있다는 등의 공통점이 있는 우리들은 주차장에 모여 함께 바다 수영을 나가기도 하고, 한라산 산행을 함께 떠나기도 한다.
일이 있어 육지에 갈 때면 고양이 화장실과 밥을 부탁하고, 강아지 엄마가 저녁 약속이 생기면 남은 이웃끼리 대신 산책을 맡아준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 없는 우리 부부는 아랫집 반려견 '곰이'와 함께 한 동네 산책길이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 이웃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기 강아지 산책 처음 해본 자의 만반의 준비 러닝복장
ⓒ 김태리
이사떡으로 시작된 나눔은 과일을 나누고, 채소를 나누는 것으로 이어졌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웃과 이런 정을 나눈다고 하면 친구들은 놀라기도 하고, 부러워하며 "사람 복이 있네"라고 말한다.
어릴 적, 엄마가 바쁠 때 챙겨주던 동네 이모들이 있었고, 진짜 사촌들보다 더 자주 만나 골목을 누비던 언니, 오빠, 친구들과 동생들이 있었다. 아마 우리 엄마아빠 세대도 그랬을 것이다. 그저 마음이 열리고 손길이 닿으니 자연스럽게 우린 정말 '이웃 사촌'이 되었다.
층간소음 대신 층간안부
▲ 이웃사촌 한라산 등반 운동을 좋아하는 우리들의 우당탕탕 한라산 등반
ⓒ 김태리
요즘 사회는 '층간소음' 때문에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층간안부'가 있다. "오늘 저녁 같이 드실래요?", "내일은 수영 가시나요?" 길가다 귀가하는 차가 마주치면 꼭 차를 세우고 반가움의 짧은 인사를 나눈다.

갈등 대신 음식들이, 불평 대신 웃음이 위층과 아래층, 옆집을 오간다. 한지붕 세가족은 더 이상 드라마 속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서귀포 바닷가 마을의 현재형 삶이자,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일상의 풍경이다.

도시 아파트 생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여기서는 너무도 자연스럽다. 삶의 비용도 줄이고, 마음의 비용도 줄이는 삶. 수도요금을 나누고, 주차장을 나누고, 햇살을 나누며 살아간다. 물론 불편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각자의 생활 패턴이 다르고, 때로는 양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건 '함께 산다는 건 완벽한 합의가 아니라 기꺼이 기다리고 받아주는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가끔은 생각한다. 만약 이곳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우리 2인 가족만 챙기는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작은 밥상이 또 다음 하루를 살게 한다. 그 밥상 위에는 밥과 국만 있는 게 아니다. 위로가 있고, 사랑이 있고, 삶을 함께 살아내는 동력이 있다.
▲ 현대판 한지붕 세가족, 응답하라 1988 이런게 반상회, 반모임
ⓒ 김태리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는 낯선 집 초인종을 누르고 밥을 청한다. 누군가의 집 식탁에 앉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막상 함께 밥을 먹고 나면 어색함 대신 따뜻함이 남는다. 나의 작은 이웃사촌 이야기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글은 단순히 '우리 집은 이렇다'는 자랑이 아니다. 마음의 문을 조금만 열면, 우리 곁의 이웃과도 이런 밥상을 나눌 수 있다는 제안이다. 반려묘의 화장실을 부탁하고, 반려견 산책을 함께하며 돌봐주는 이웃이 있다면, 혼자가 아닌 삶의 든든한 동반자를 얻는 셈이다.
▲ 이웃사촌 저녁나눔 같은 야구팀을 응원하며 야외 테라스에서 같이 밥먹기
ⓒ 김태리
우리는 오늘도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같은 새소리를 들으며 서로 배려하며 조화롭게 살아간다.
세상은 충분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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