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의 이민 단속 충격과 부실한 비자 대책

2025. 9. 1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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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합작 투자한 배터리 공장 근로자 300여명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불법 이민자 단속을 이유로 체포·구금한 사건은 충격적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미국 측을 설득해 316명이 구금 일주일 만에 전세기 편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모순된 정책의 문제점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MAGA)’며 한국 등 외국 기업의 직접 투자를 장려하겠다면서도 MAGA 지지층의 반(反)이민 정서에 영합해 투자에 필수적인 외국인 인력들까지 구금했으니 어이없다.

「 미, 한국 기업인들 무더기 체포
투자 유치와 이민 단속의 모순
한·미 당국과 기업 함께 풀어야

당사자인 기업들과 근로자들은 황당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을 믿고 미국으로 달려가 밤낮으로 일해온 이들을 갑자기 굴비 엮듯이 줄줄이 사슬에 묶어 열악한 구금 시설에 가뒀으니 당사자들은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 같다. 사실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위해서는 이들 한국인 숙련 노동자들이 공장 건설에 투입돼야 하고, 향후 미국인 공장 운영 인력의 교육과 훈련도 맡아야 한다.

이들 기업은 미국에서 직접 생산해야만 트럼프 정부가 고율의 상호관세를 안 물리겠다고 공언하자 고심 끝에 대미 투자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지 파견 직원들의 안전조차 미국의 불투명하고 자의적 법 집행 때문에 보장될 수 없다면 차라리 관세를 물고 수출하는 것이 낫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동안 미국의 기준이 곧 글로벌 표준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위해서 공정하고 예측할 수 있게 법을 집행해 달라고 한국 측이 미국 측에 요청하는 상황은 매우 낯설다. 방한한 크리스토퍼 랜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14일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을 만나 대규모 단속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고 한다. 트럼프 정부가 투자 유치와 이민 단속의 모순을 이제라도 인식하고 비자 정책 등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선다니 만시지탄이다. 많은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경위와 수습 과정을 따져보면 한국 정부도 반성할 점이 적지 않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에 가장 많이 투자했으면서도, 미국 정부로부터 취업 비자 쿼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던 사실이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의 미국 취업비자 발급 건수는 한국 인구의 약 8분의 1에 불과한 싱가포르 비자 쿼터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보다 대미 투자 액수가 크게 적은 인도는 더 많은 취업비자를 발급받는다. 한국보다 인구가 적은 호주는 미국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잘 활용해 비자 쿼터를 상당수 확보하고 있다. 도대체 외교부와 주미 한국대사관은 그동안 뭘 했나.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파면, 그리고 곧이어 치른 조기 대선의 정치적 격변을 고려하더라도 외교 공백은 뼈아픈 대목이다. 새 정부가 전임 정부가 임명한 특임 공관장을 서둘러 본국으로 소환하는 바람에 이번 사태 발생 당시 주미 대사와 조지아주 애틀랜타 주재 총영사는 공석이었다. 부랴부랴 워싱턴 총영사가 현장에 달려가야 했다. 재외국민 보호에 구멍이 뚫렸던 셈이다.

한·미 정부 사이에 끼어 떠밀리듯 대미 투자에 나섰다가 자사 파견 근로자들이 한꺼번에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됐으니 해당 기업들은 날벼락을 맞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도 이번 사태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 기업 임직원들이 전자여행허가(ESTA)를 받거나 단기 출장(B1), 관광 및 가족 방문(B2) 목적의 비이민 비자를 받아 장기 출장 형식으로 미국에 입국해 대미 투자 업무를 진행해 온 데 대해 불만을 표출해왔다.

이번 사건에 앞서 한국 기업들이 ICE에 단속당하거나 비자 발급이 거부되기도 했다. 몇 가지 조짐이 보였는데도 기업들은 다각도로 대비하지 못했다. 한국과 사정이 비슷한 일본 기업들은 현지 주재원 비자 등을 활용해 왔다고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미 양국 정부와 기업은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동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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