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수요 억제 동시에?
강력한 대출 규제로 주택 수요 억제에 나선 이재명정부가 또다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접 시행을 맡아 공공택지 공급을 앞당기는 한편, 전세대출 한도도 낮췄다. 공급 대책과 병행해 또다시 수요 억제에 나섰지만, 서울 강남권 등 인기 지역 집값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란 우려도 나온다.

LH, 택지 조성부터 분양까지 책임
정부는 지난 9월 7일,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 서울 33만4000가구를 포함해 수도권 주택 134만9000가구를 착공하기로 했다. 연평균으로 보면 서울 6만7000가구, 수도권 27만가구다.
이 중 79만가구는 기존에 공급이 예상됐던 물량이고, 이번 대책으로 늘어나는 물량은 56만가구(서울 14만가구)다. 정리해보면, 2022~2024년 연평균 15만8000가구가 착공된 것과 비교해 5년간 연평균 11만2000가구(서울 2만8000가구)가 추가로 공급되는 셈이다.
주택 공급은 LH가 주도한다. 정부는 LH에 직접 택지 조성부터 분양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시행사 역할을 부여한다. LH가 민간 건설사에 도급을 줘 민간이 설계와 시공을 맡는 민간 참여 방식으로 개발 사업이 추진된다는 의미다. LH 역할을 키워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고 공급 물량도 확대하겠다는 조치로 풀이된다.
LH는 수도권에 보유한 19만9000가구 공공주택 용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직접 시행해 2030년까지 6만가구를 착공할 예정이다. LH가 직접 시행을 맡아 공급할 수 있는 용지로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 인근 유휴부지가 손꼽힌다. 1984년 LH가 토지 비축 차원에서 매입한 뒤 유휴부지로 남아 있었는데, 최근 여러 차례 매각을 시도했지만 유찰됐다. 서울 도봉구 성균관대 야구장(1800가구), 송파구 위례업무용지(1000가구), 서초구 한국교육개발원(700가구) 등 서울 도심 내 국공유지, 유휴부지에 4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한창 사업이 진행 중인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등 수도권 3기 신도시는 사업 기간을 2년 이상 앞당긴다. 국토부는 지구 지정과 계획 수립 단계인 택지는 용역 발주 시기를 앞당기고 중복 인허가 절차를 통합해 기간을 최소 1년 6개월 이상 단축할 예정이다. 토지 보상이 더딘 사업지는 협조장려금 등 인센티브를 신설하고, LH 채권 발행을 확대해 보상 재원을 확보한다. 신도시나 공공택지 조성 때 토지 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퇴거 불응 등 사업 방해 행위를 하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는 2030년까지 6만3000가구를 착공하기로 했다.
재건축, 재개발 사업도 공공이 참여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법정 상한의 1.3배(390%)까지 높여주기로 했다. 리모델링 제도도 바뀐다. 전용 85㎡를 넘는 대형 평형 주택을 2개 이상으로 나눠 일반분양할 때 분양분만큼 가구 수를 늘릴 수 있다. 리모델링 조합도 총회의 전자의결을 할 수 있고 재건축처럼 주택건설사업자 등록 없이 사업 시행이 가능하다.

서울 강남권 갭투자 차단…LTV 40%로
이번 대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주택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대출 규제 방안도 포함된 점이다. 6·27 대출 규제의 후속 격이다.
무주택자가 규제지역에서 집을 살 때 담보인정비율(LTV)이 기존 50%에서 40%로 강화된다. 규제지역은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으로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와 용산구가 포함된다.
1주택자의 수도권, 규제지역 전세대출 한도도 2억원으로 낮아진다. 1주택자가 어느 지역에 주택을 보유했는지와 무관하게 적용된다. 정부는 주택매매, 임대사업자의 수도권, 규제지역 내 LTV도 0%로 제한했다. 사업자 등록 절차가 간편해 이 대출이 가계대출 우회 수단으로 악용돼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동산 범죄를 전담하는 범정부 수사조직도 신설한다.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 국세청, 경찰이 참여해 불법, 이상 거래를 상시 감독하고 수사까지 맡는다. 과거 국토부가 운영했다 사라진 특별사법경찰보다 권한을 확대해 부동산 이상 거래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수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160조 빚’ LH 사업비 감당 가능할까
공공 공급 한계…“민간 공급 규제 풀려야”
정부가 주택 공급, 대출 규제 등 다양한 방안을 총망라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 반응은 엇갈린다.
이번 대책은 LH가 직접 시행을 맡아 공공택지 공급 물량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공공택지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만큼 실수요자 진입 문턱이 낮아진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인이다.
다만 ‘부채공룡’이란 오명을 받을 정도로 재무 구조가 불안한 LH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LH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60조원에 달해 전체 비금융 공기업 중 가장 많다. 2027년 부채 규모는 무려 2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회사채 발행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결국 정부 자금, 즉 국민 세금 투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LH가 모든 공공택지를 직접 개발할 역량을 갖췄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공공 도심복합 사업이나 국공유지 개발도 주민 반발에 부딪히면 계획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2020년 8·4 대책 당시 정부가 내놓은 서울 국공유지 3만3000가구 공급 계획 중 지금까지 실현된 것은 1200가구에 불과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LH는 공공임대 사업으로 불어난 적자를 택지 매각으로 메우는 구조”라며 “직접 시행에 나서 분양가를 낮출 경우 적자 규모가 더 불어날 텐데 계속해서 공급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2030년까지 수도권 135만가구를 ‘착공’한다고 밝혔을 뿐 입주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돼, 그때까지 공급 부족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LH가 착공하는 주택 중 절반 이상은 임대로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집값 안정 효과가 나타날지도 미지수다.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 2030년까지 6만3000가구를 착공하기로 했지만 선도지구조차 사업이 지지부진해 추가 물량 착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게다가 정작 서울 도심 신규 공급 물량은 송파구 위례 업무용지, 서초구 한국교육개발원 유휴용지 등 4000가구뿐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집값 급등 진원지인 강남 지역에 신규 공급 물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조치가 없으면 주택 시장은 안정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공공 역할을 강조하다 보니 정작 민간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 대책은 미흡했다. 공공 부문이 시행할 때 인센티브를 늘렸을 뿐 시장 관심이 높았던 용적률 완화 등 민간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 방안은 이번 대책에서 제외됐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완화나 기부채납, 의무임대주택 비율 조정 등의 ‘당근책’도 빠져, 입지 좋은 곳에 양질의 주택이 빠르게 공급할 만한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우려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민간 건설사는 뒷전으로 미루고 공공이 공급을 책임지겠다는 조치인데 집값 안정 효과를 내긴 역부족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서울 공급 물량이 주택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도심 유휴용지를 더 발굴하는 한편, 3기 신도시 용적률을 대폭 높여 추가 공급 물량을 늘려야 한다”고 진단했다.

강남 영향 없어…애꿎은 강북 집값 잡기?
6·27 대출 규제에 이어 또다시 내놓은 대출 억제 방안을 두고서도 논란이 뜨겁다.
이번 대책으로 규제지역인 서울 강남 3구에서는 집값의 최대 40%(LTV 40%)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기존엔 50%였다. 하지만 이미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일괄적으로 6억원으로 제한돼, 15억원 넘는 아파트 담보대출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서초구(21억9737만원), 강남구(25억2185만원), 송파구(16억4422만원)의 평균 아파트값은 모두 15억원을 훌쩍 넘는다.
다만 평균 매매가가 15억원 이하인 서울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구) 일대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는 대출 액수가 줄어들 수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서울 강남권 집값 잡기가 어려워지자 정부가 마용성 등 강북 인기지역 규제에 나선 듯 보인다”며 “현금 부자는 그대로 두고 서울 강북 상급지를 노리는 중산층 실수요자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시장은 이번 대출 규제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의 시선을 보낸다. 6·27 대출 규제 이후에도 서울 인기지역 집값 상승세가 지속된 데다 신고가 거래도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7월 총 3946건 서울 아파트 거래 중 932건(23.6%)이 신고가로 집계됐다. 2022년 7월 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초구(61.5%), 용산구(59.5%), 강남구(51.6%) 등 주요 지역은 전체 거래의 절반 이상이 최고가로 거래됐다. 이어 광진구(38.2%), 송파구(36.8%), 양천구(35.8%), 마포구(34.2%) 순으로 신고가 거래가 많았다.
청약 열기도 여전히 뜨겁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잠실르엘’ 1순위 청약에만 7만여명이 몰려 청약 경쟁률이 600 대 1에 달했다. 전용 74㎡ 분양가가 20억원에 육박했지만 ‘현금 부자’ 수요가 몰리면서 대출 규제가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
한편에서는 전세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신용대출 수요가 더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세자금 마련이 어려워진 세입자들이 월세로 방향을 틀면서 신용대출 수요를 더 자극하고 있다는 것. 전세대출 규제로 서울 강남권 등 인기지역 아파트 월세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는 의미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7호 (2025.09.17~09.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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