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 경영권 방어 어쩌나
더불어민주당이 이사 충실 의무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담은 1, 2차 상법 개정안에 이어 ‘더 센’ 상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9월 중 열리는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내용을 담은 법안 통과를 추진하기로 해 재계가 불안감에 휩싸였다.

자사주 취득 시 1년 내 소각 의무화할 듯
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는 지난 8월 말 국회에서 자사주 제도의 합리적 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고 관련 논의에 착수했다. 특위 위원장인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이 마무리됐고, 추가 상법 논의를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가 자사주 문제”라며 “자사주 소각 등을 상법에서 다룰지 자본시장법에서 할지 정기국회 기간 조율하고 다듬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에서 1, 2차 상법 개정을 주도한 특위는 9월 정기국회 내 3차 상법 개정안, 즉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을 입법하겠다는 계획이다.
3차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자사주 취득 즉시 또는 최대 1년 이내 소각 의무화, 기존 보유 자사주 최대 5년 내 소각 의무화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안은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취득 즉시 소각하도록 규정했다. 김남근 의원안은 자사주 의무 소각 기한을 1년으로,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6개월로 설정했다. 법 시행 이전에 상장사가 보유한 자사주 역시 해당 기간 내 소각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차규근 의원안은 기존 자사주의 경우 법 시행일로부터 5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규정했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영구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발행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나타나, 배당과 함께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 신뢰를 끌어올리고, 오랜 기간 한국 증시를 짓눌러온 저평가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뿐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온 ‘코스피 5000’ 진입을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재계 시각은 다르다. 증시 저평가는 주주 환원 부족 때문이 아니라 불확실한 규제 환경, 거시 경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반박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자사주 역할은 꽤 중요하다. 자사주는 그동안 기업 주가 관리뿐 아니라 경영권을 지키는 방어 수단으로 쓰여왔다. 대주주가 자사주를 제3자에게 넘길 경우 의결권이 살아나는,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 덕분에 기업들은 자사주 보유를 늘려왔다.
일례로 2000년 스위스 엘리베이터 기업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위협할 당시 현대그룹은 자사주를 활용해 경영권을 방어했다. 2003년에는 글로벌 헤지펀드 소버린이 SK 지분 14.99%를 확보해 경영권을 위협했는데, SK는 자사주 4.5%를 우호 세력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2018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이 현대차 경영권을 위협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자사주가 기업 경영권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자사주가 대주주 이익을 위한 꼼수로 활용되는 경우도 적잖다. 태광산업은 지난 6월 이사회에서 3186억원 규모 교환사채(EB)를 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계 안팎 논란이 거셌다. 태광그룹은 현금성 자산 1조4000억원을 보유했고, 부채가 880억원에 불과한데도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려 꼼수를 썼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EB 발행은 사실상 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경영상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과 주주 보호 정책을 회피하려는 꼼수이자 위법”이라고 꼬집었다. 논란이 커지자 태광산업은 EB 발행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경영권 방어 장치 필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두고 논란이 거센 가운데, 기업들은 벌써부터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법안 통과를 앞두고 자사주를 미리 소각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올 1~8월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은 206곳으로 집계됐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120곳, 코스닥에서 86곳이 각각 자사주를 소각했다. 이미 지난해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177곳)보다 많을 정도다. 올해 자사주 소각액은 8월 말 기준 5619억원으로 지난해 소각액(4809억원)을 한참 넘어섰다.
일례로 LG(2500억원), LS(1700억원), HMM(2조1400억원), KT&G(3000억원) 등이 자사주 소각 방안을 발표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이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신현용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자사주 매입뿐만 아니라 소각을 이행한 이력이 있는 기업이 추가 소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기업들이 자사주 외에 이렇다 할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자사주 의무 소각으로 자칫 국내 기업들이 외국 자본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목소리다.
미국발 관세 전쟁으로 경영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현금 비중을 늘려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자사주 의무 소각은 자금 운용 유연성을 저해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기업들은 자사주를 스톡옵션 지급 재원으로 활용하거나 합병, 분할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주 발행 대신 자사주를 교부하는 방식으로 사용해왔다. 자금이 필요할 때 자사주를 처분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기도 한다.
해외 사례를 봐도 미국, 영국, 일본은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독일만 자사주 보유 비율을 10%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3년 내 소각을 의무화한다. 대신 이들 국가는 자사주 매입 과정에서의 시세 조종을 방지하기 위해 거래량, 시간, 가격 등에 일정한 제한을 둔다.
재계에서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더라도 신규 취득 자사주만 의무화 대상으로 하거나 일정 한도 이내 보유는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마땅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자사주는 국내 산업 경쟁력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라며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완충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7호 (2025.09.17~09.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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