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 기업’ 도전하는 87년생 K뷰티 신화 [CEO라운지]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5. 9. 1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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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식포럼서 첫 대중 강연 천주혁 구다이글로벌 대표
천주혁 구다이글로벌 대표 1987년생/ 숭실대 중어중문학과/ 2015년 구다이글로벌 대표(현) [일러스트 : 강유나]
세계지식포럼 오픈세션 연단에 한 젊은 기업가가 오르자 장내가 술렁였다. 지난 몇 년간 K뷰티 업계 판을 흔들며 올해 1조7000억원대 매출을 자신하는 구다이글로벌의 천주혁 대표(38). ‘조선미녀’ ‘스킨1004’ ‘티르티르’ 등 초대형 브랜드를 연달아 인수하며 업계 ‘큰손’으로 떠올랐지만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CEO’로 불렸던 인물이다.

수수한 흰색 티셔츠 차림으로 마이크를 잡은 그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감춰왔던 비전과 철학을 쏟아냈다.

“솔직히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40살 전에 회사를 매각하고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조선미녀가 급성장하며 여러 매각 제안을 받자 심각한 우울감이 밀려왔습니다. 이걸 매각하고 난 뒤 내 삶이 어떻게 될지 상상이 잘 안 되더군요.”

그런 와중에 그는 과거 성공한 여러 K뷰티 브랜드가 해외 거대 자본에 인수된 후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성장동력을 상실한 사례를 안타깝게 봤다. K뷰티 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그 성과를 국내에 남기기 위해서는, 한국 기반 글로벌 챔피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K뷰티가 제품력이나 마케팅에 강점이 있음에도 이 사업을 국내 기업이 계속 주도하지 않으면 결국 ‘찻잔 속 태풍’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산업이 한때의 트렌드가 아닌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으려면, 성공한 개인 창업가를 넘어 ‘성공한 기업’이 나와야 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그를 ‘100조원 기업’이라는 원대한 목표로 이끌었다. 천 대표는 자신의 목표가 단순한 희망이 아님을 데이터에 기반해 설명했다.

“2024년 기준 프랑스 화장품 수출액은 122억달러, 한국은 86억달러 수준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보면, 한국 화장품 산업 규모가 프랑스의 약 70% 수준까지 따라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장품 기업 로레알 기업가치는 현재 약 350조원에 달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로레알의 70% 가치를 지닌 기업, 즉 240조원 규모의 회사가 나오는 것이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계산이 과감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보수적으로 봐도 기업가치 100조원 기업은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 첫 번째 회사가 구다이글로벌이 되는 것이 도전 과제”라고 밝혔다.

유통에서 브랜드로

헝그리 정신으로 키운 K뷰티 신화

지금의 구다이글로벌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천 대표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유통·수출업으로 시작했던 초기의 어려움을 숨김없이 공개했다. 그는 “2016년을 기점으로 중국 시장 경쟁이 과열되고 거대 자본이 유입되면서 저 같은 창업자가 기회를 잡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고 회상했다. 2015년 4억5000만원으로 시작한 매출은 2021년까지 눈에 띄지 않는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천 대표는 이 시기를 ‘5년에서 7년간의 담금질 기간’이라고 표현했다. 대신 이때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폭발적인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동시에 그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당시 ‘실리콘투’와 같은 거대 유통 기업과 경쟁하기보다는, 직접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로 체질을 바꾸기로 한 것. 2019년 ‘조선미녀’를 인수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는 2018년 LA 케이콘(KCON) 행사에서 수많은 인디 브랜드 중 조선미녀가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것을 보고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했다고 한다.

물론 과정은 험난했다. 그는 자본이 부족했던 시절의 일화를 소개하며 직접 만든 허름한 현수막 사진을 보여줬다.

“이 현수막 하나를 들고 여러 나라 전시회를 다니며 조선미녀의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자취방에서 쓰던 TV를 전시회에 갖다놓을 정도로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기였습니다.”

‘은둔의 CEO’로 알려진 천주혁 대표가 세계지식포럼 연사로 나섰다. (매경DB)
M&A에 눈뜨다

회계사에게 5000시간 과외 받기도

이랬던 회사가 어떻게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과 대등한 몸집, 수익성(영업이익) 부분에서는 국내 1위 회사로 떠오를 수 있었을까. 2023년부터 본격적인 M&A 시대를 열면서다.

천 대표의 이런 행보는 글로벌 뷰티 트렌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는 크게 ‘인문학적 소비자의 부상’, 직관적이고 편향적인 콘텐츠 소비를 하는 ‘알고리즘 소비자’ ‘똑똑해진 소비자’, 그리고 한국의 압도적인 ‘제조 인프라’ 등 4가지 특징이 있다고 봤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소비자 요구를 채워주고 탄탄한 제조 인프라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브랜드 확장을 해야 할 때라고 확신했다고. 그래서 과감한 인수합병에 뛰어들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런데 정작 3~4년 전 본인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과연 M&A 관련 회계지식, 인수 원칙이 있는지 꼽아봤을 때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M&A를 앞두고 2~3년간 회계 공부에만 5000시간 이상을 쏟아부었습니다. 시간당 10만원을 주고 회계사 두 분께 2년간 개인 과외를 받으며 재무제표를 자유자재로 분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역량을 키웠습니다.”

이런 기본기를 바탕으로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M&A 철학을 세웠다. 그는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브랜드의 ‘하방이 얼마나 단단한지’이다. 성장성도 좋지만, 브랜드 자체가 가진 힘이 얼마나 견고한지가 장기적 성공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준은 ‘자신이 잘 아는 브랜드’여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 아닌 ‘브랜드 본질’에 집중

구다이글로벌은 인수합병 과정에서 창업자의 의무 종사나 경업금지 조건을 두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창업자의 개인 역량보다 브랜드 자체의 힘을 중시한다는 철학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구다이글로벌은 창업자 의존형 브랜드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브랜드력이 검증된 경우에만 인수를 진행해왔다.

서린컴퍼니 인수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경쟁자였던 PE가 창업자의 의무 종사와 경업금지 조건을 강하게 요구한 반면, 구다이글로벌은 이런 제약을 전혀 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창업자 간 친분 때문에 손쉽게 인수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했다.

이와 관련 구다이글로벌 관계자는 “대표들끼리 잘 알아서 사정을 봐줘가며 손쉽게 인수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며 “실제 협상 과정에서 인수 후 실사 때와 달리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여지가 없는지 등 기존 경영진과 이해관계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할 때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철저히 천 대표의 M&A 원칙에 기반한 의사결정이란 뜻이다.

이런 철학 아래 품에 안은 브랜드들은 강력한 연합군을 형성했다. 조선미녀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철학을 입증했다. 일본 쿠션 시장 1위인 ‘티르티르’는 전 세계 모든 인종이 쓸 수 있도록 45가지 색상을 개발해 시장을 개척했고, ‘태초의 자연’을 콘셉트로 한 ‘스킨1004’는 독특한 이름과 스토리로 빠르게 성장했다. 여기에 올리브영에서 수년간 1위를 지키는 ‘독도 토너’의 ‘라운드랩’, 기초화장품 강자 ‘스킨푸드’까지 인수하며 포트폴리오에 깊이를 더했다.

그는 “이제 시장은 국가 단위가 아니라 틱톡,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넓고 얇게 퍼진다”며 “조선미녀는 이미 미국보다 유럽 매출이 더 높다. 각 브랜드의 강점을 살려 다양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밝혔다.

“궁극적인 목표는 로레알처럼 100년 이상 지속되며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유산’ 같은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은둔을 깨고 세상에 나온 K뷰티의 젊은 거인은 한국 화장품 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선언하며 대중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7호 (2025.09.17~09.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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