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철의 '글로벌 협약 성사' 비하인드, 뮌헨 '14년 인맥' 활용하고 SK 본사까지 설득했다

김정용 기자 2025. 9. 1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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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 제주SK 유소년 어드바이저, 구창용 제주 대표이사, 요한 자우어 R&G 대표(왼쪽부터).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구자철은 요즘 통 잠을 잘 수 없었다며 눈을 비볐다. 제주SK 유소년 어드바이저로서 본업인 선수 발굴도 소홀히 할 수 없었지만, '글로벌 협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독일 뮌헨과 서울을 분주히 오가며 수 개월에 걸친 설득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5일 서울 상암동의 스탠포드서울코리아에서 제주SK와 'R&G'의 제휴 및 협력을 알리는 파트너 조인식이 진행됐다. R&G는 레드 앤드 골드 풋볼(Red & Gold Football)의 줄임말로, 붉은색 유니폼의 독일 바이에른뮌헨과 황금색 유니폼을 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FC가 손을 잡은 합작 벤처 법인이다. 각각 김민재와 손흥민 두 한국 스타를 보유하고 있어 친숙한 강팀들이다. 유망주 발굴과 성공적 프로 데뷔를 책임지기 위해 만든 통합형 글로벌 플랫폼이다. 명목상 두 구단이 동시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독일 매체들은 사실상 바이에른이 주도하는 플랫폼이며 구단 중복소유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합작 벤처 형태를 취한 거라고 분석하고 있다.


R&G는 세계 곳곳에 파트너를 두고 이들의 전문성과 바이에른, LAFC의 국제적 노하우를 결합해 현지화부터 운영까지 담당하는 구조로 전세계 유소년에 대한 발굴, 육성, 이적까지 총괄한다. 남미(우루과이), 아프리카(감비아, 세네갈, 카메룬), 아시아(한국)와 구단간 선수 교류뿐 아니라 글로벌 유소년 대회 참가, 출전시간 보장, 데이터 기반 트레이닝 제공 등으로 성장을 돕는다. 여기에 제주SK가 합류해 유소년 시스템의 전면적, 구조적 패러다임 전환을 꾀한다.


▲ 역대급 유망주 협약, 구자철이 발로 뛰며 성사시켰다


이번 협약은 수많은 구단들이 일상적으로 맺는 업무협약(MOU)처럼 느슨한 차원이 아니라 훨씬 실질적인 계약이다. 제주가 유소년 육성을 어떻게 지원 받을지, 유럽 진출하는 선수를 만들어냈을 때 각 주체가 어떤 이득을 보게 되는지 등등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구자철은 선수 은퇴를 선언하고 행정가로 변신하자마자 이 파트너십을 성사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올해 1월 연수를 위해 뮌헨에 방문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제주를 비롯한 K리그 유소년 육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개인적으로 접촉을 시작했다. 일이 추진된 순서는 제주나 바이에른의 요구로 구자철이 움직인 게 아니라, 구자철이 주도적으로 양자를 설득해 협약을 맺게 한 식이었다.


상당히 규모가 큰 사업이었기 때문에, 봄부터 이미 해당 사업에 대한 소문이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성사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구자철은 독일어에 능한 독일통으로써 바이에른 구단 및 R&G 측을 설득했고, 동시에 제주 레전드이자 역대 최고 간판 스타로서 구단과 모기업도 설득했다. 구자철은 구단뿐 아니라 SK 에너지, 나아가 SK 그룹 차원까지 접촉해 미팅과 프레젠테이션을 이어갔다.


구자철 제주SK 유소년 어드바이저. 서형권 기자
구창용 제주SK 대표이사(가운데 오른쪽), 구자철 제주SK 유소년 어드바이저(왼쪽)와 R&G 관계자들. 제주SK 제공

▲ 14년 전 구자철 독일행 인연이 여기까지


특히 이 사업에 대해 구자철이 깊이 이해하고 합의를 이끌어 낸 건 2011년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진출했을 때부터 맺은 오랜 인연 덕분이었다. 조인식에 직접 참석한 R&G 대표 인사는 요한 자우어였다. 자우어는 2018년부터 바이에른뮌헨 유소년 총괄로 일했고, 2023년부터 R&G를 이끄는 대표이사 겸 매니징 디렉터를 겸하고 있다.


2011년 당시 볼프스부르크 단장으로서 구자철을 영입했던 인물이 바로 자우어였다. 볼프스부르크는 제주에 여러 차례 스카우트를 보내 구자철의 기량을 확인했고, 자우어는 이 작업을 직접 이끌었다. 구자철의 볼프스부르크 경력은 부상과 적응 등으로 잘 풀리지 않았지만, 결국 다른 분데스리가 팀에서 전성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구자철의 기술적인 잠재능력과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는 자우어가 한국 선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만들었다.


이후 자우어는 한국 선수의 유럽 진출사에 큰 영향을 미친 배후의 큰손이었다. 2012년 볼프스부르크를 떠나 레드불잘츠부르크 대표로 이직했는데, 당시 전세계 유망주를 수집하던 레드불 그룹의 육성 프로젝트를 지휘한 인물 중 하나였다. 이 시기 황희찬을 영입했다. 2017년 바이에른 유스 총괄로 이직한 뒤 바이에른 2군 유망주로 정우영과 이현주를 데려갔다. 한국 선수의 역대 유럽파 중 4명을 자우어가 영입했고, 구자철의 좋은 인상이 이후 3명의 후배에게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자우어는 황희찬, 정우영을 영입하기 전에 구자철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황희찬 영입 당시에는 잘츠부르크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기 때문에 구자철이 자우어에게 강하게 추천한 의견이 이적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황희찬이 맹활약 후 '계열사' RB라이프치히를 거쳐 잉글랜드의 울버햄턴원더러스로 떠나며 충분한 성공을 거뒀고, 자우어의 한국 선수에 대한 호감과 더불어 구자철에 대한 신뢰도 깊어졌다. 구자철은 뮌헨 인근 도시인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뛸 때 자주 바이에른 구단을 방문해 자우어와 교류해 왔다.


바이에른은 국제적 유소년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노력해 왔다. 레드불을 거친 자우어를 2018년 선임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래서 2023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FC와 손잡아 조인트 벤처 법인을 만들었다. 여기에 우루과이, 감비아, 세네갈, 카메룬에 이어 아시아 국가와도 네트워크를 형성해 유망주 레이더를 넓히려 했다. 구자철을 통해 한국의 핵심 협약 구단으로 제주가 합류하게 됐다.


사진= 풋볼리스트, 제주S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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