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에서 진주까지, 기차 타고 따라간 영웅의 길
[이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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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전라선 열차, 임실역 |
| ⓒ 이완우 |
1592년 7월, 동복현감 황진 장군은 전라도의 동북쪽 웅치와 이치에서 일본군을 막아냈다. 진주는 전라도를 지킬 수 있는 동남쪽 관문이었다. 1592년 10월,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김시민 장군이 진주대첩으로 3만 일본군을 막아내며 진주성을 지켰다.
1593년 6월, 충청병마절도사 황진 장군이 제2차 진주성 전투의 수성장으로 10만 일본군에 항전하며 일본군을 막아냈다. 남원 출신의 황진 장군은 일본군이 전라도로 향하는 침략의 발길을 육지에서 두 차례 막아낸 유일한 인물이다(관련 기사 : 임진왜란의 '육지 영웅', 황진 장군을 아십니까).
승용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빠른 여행보다, 지리산 서쪽에서 지리산 남쪽으로 섬진강 따라 멀리 우회하는 여유로운 철도 여행을 선택했다. 전라선 임실역에서 출발해, 오수역, 남원역, 곡성역, 구례구역을 거쳐서 순천역에 이른다. 순천역에서 경전선으로 바꿔 타고 광양역, 상전역, 하동역, 횡천역, 북천역, 완사역을 지나서 진주역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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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실역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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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수역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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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역 |
| ⓒ 이완우 |
50여 년 전, 서울에서 출발하여 전라선 이리(익산)와 순천을 거쳐 경전선 진주를 종점으로 향하는 특급열차가 3년 정도 운행했다. 남원역에서 새벽 5시 40분에 발차하는 충무호였다. 열차 요금은 550원이었다. 상행은 진주에서 출발하여 순천을 거쳐 남원역에서 오후 11시 26분에 발차하며 서울로 향했다. 열차 요금은 1050원이었다.
기자는 고등학교 시절 보았던 진주행 충무호를 그리운 추억처럼 기억했으나, 진주까지 철도 여행은 처음이었다. 임진왜란의 영웅 황진 장군의 출생지인 남원에서, 장군이 나라를 구하며 전사한 진주까지 철도역들을 따라서 가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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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주생면 영천리 황진 장군 출생지 마을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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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성역 |
| ⓒ 이완우 |
곡성역을 지나 압록에 이르면, 광주 무등산의 동쪽에서 흘러내려 여러 고을 물이 모인 보성강이 섬진강에 합류한다. 보성강의 상류에 동복천이 있는데, 이곳의 동복현 현감이던 황진 장군이 일본군의 침략을 대비하여 군사를 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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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구역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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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천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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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전선 열차, 순천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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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역 |
| ⓒ 이완우 |
진상역은 광양시 진상면 섬거리에 있다. 고려 말에 왜구가 자주 출몰하였는데, 그때마다 두꺼비가 울부짖어 왜구가 물러갔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두꺼비가 사는 섬거' 나루인 섬진(蟾津)에서 섬진강 이름이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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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하류, 광양 하동 사이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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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천역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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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천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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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사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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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양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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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사역은 진양호의 남강댐에 가깝다. 이 역 가까운 옥녀봉은 옥녀가 비단을 깨끗한 물에 씻고 널었다는 전설을 간직했다. 이 전설대로 맑은 물 남강의 진양호가 가까이 있다. 1862년에 발생한 진주 농민항쟁기념탑이 이 역에서 가깝다.
진주역이 있는 진주는 옛날의 진양군이었다. 고려 시대부터 군사 요충지로 발전하였다. 조선 시대 진주목은 경주, 상주에 버금가는 남녘의 도읍이었다. 진주는 큰 도읍임에도 예로부터 교통이 불편하였다. 남부내륙선 철도가 김천에서 진주를 연결하고, 거제와 통영까지 철도를 신설하는 게 당연하다.
철도 수송의 주역은 객차나 화차를 견인하고 선로를 주행하는 기관차이다. 증기기관차, 디젤기관차와 디젤전기기관차를 차례로 거쳐서 전기기관차로 발전했다. 철도의 기관차를 철마(鐵馬)라고도 한다. 철도의 기관차는 고려와 조선 시대의 역참을 이어 달리던 역마(驛馬)의 현대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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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역 |
| ⓒ 이완우 |
진주성 2차 전투는 일본군 10만 총 병력이 집결한 임진왜란 최대의 전투였다. 조선군 병력은 6천 명이었다. 15배가 넘은 병력 차이에도 조선군은 8일을 저항했고, 3만 명의 일본군이 전사했다. 일본군은 더 이상 침략 전쟁을 이어 나갈 명분도 동력도 상실했다. 진주성 2차 전투는 당당하게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한 전투로 재해석해야 한다.
진주역에서 택시를 타고 진주성으로 향하며 진주성 지도를 살펴보았다. 진주성에서 옥쇄하듯 산화한 호국 영령들을 모신 제단에 참배하며, 진주성 1차, 2차 전투 현장이 호국의 성지임을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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