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시작된 백석산 숲길, 꿈꾸듯이 걸었다
[안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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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산 임도 트레일 |
| ⓒ 안호용 |
하지만 요즘은 동해까지 KTX가 개통되어 이동 시간도 거의 절반으로 짧아졌고 시간에 변동도 없어졌다. 그래서 과거엔 꿈도 꾸지 못한 강원도 오지트레일의 문이 열렸다. 당일로 평창이나 정선에 있는 1000미터가 넘는 준봉들과 만나고 돌아올 수 있다. 요즘은 농어촌버스도 공공제여서 배차시간도 늘어나고 운행 시간도 정확해졌다. 물론 운행 횟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시간만 잘 짜 맞추면 당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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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릿재 분기점 |
| ⓒ 안호용 |
평창 읍내 방향으로 가던 택시는 신리 삼거리에서 북쪽 방향 소도로로 빠져나와 깊은 산속으로 달렸다. 도로엔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실 트레일 들머리까지 농어촌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아쉽게도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대화면 읍내에서 나올 때는 버스를 탈 계획이다.
10여 킬로미터를 달려온 택시는 옛 모릿재 들머리에 우리를 내려놓고 돌아갔다. 조금 더 가면 모릿재 터널이 나오고 그 너머는 진부이다. 텅 빈 도로에 홀로 남은 우리는 옛 모릿재를 오르기 시작했다. 터널이 만들어지기 전에 사람들이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다. 을씨년스러운 단층 폐건물 하나와 건물 터가 가파른 경사면에 나란히 서서 불청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십여 분 고갯길을 오르면 분기점이 나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숲길 트레킹이 시작된 것이다. 왼쪽이 본래의 모릿재이고 오른쪽이 30년 전에 만든 임도이다. 2년 전 이곳에서 모릿재를 거쳐 잠두산 임도 트레일을 잠깐 걸은 적이 있었다. 그 트레일은 평균 고도가 1,000미터이고, 숲길이기보다 평전처럼 탁 트인 풍경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70~80 킬러미터 더 가면 가리왕산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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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던지골 풍경 |
| ⓒ 안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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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산 임도 트레일 |
| ⓒ 안호용 |
그럼에도 삼매경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영속한 것은 없는 법이다. 몇 시간이 지나자 길은 지루하게 하염없이 늘어졌다. 그러면서 두 다리도 무거워졌다. 잠시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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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산길 |
| ⓒ 안호용 |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색계를 빠져나와 욕계로 발을 내디뎠다. 이제 세속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십여분 내려가자 첫 농가가 나왔다. 길가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던 농부에게 인사를 하니 그도 흰 이를 드러내며 반갑게 응대를 했다. 도반이 나에게 웃는 모습이 참 순박하다고 말했다. 이 깊은 산골에 살다 보면 제아무리 세상이 치닫더라도 세속의 벽을 쉽게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보충 설명을 하였다. 사실 문명의 이기는 공간의 간극을 쉽게 넘을 수 없다.
깊은 던지골을 따라 농가들이 뜨문뜨문 불규칙하게 줄지어 서 있다. 그 사이로 빨갛게 익는 고추밭과 아직 이른 콩밭과 배추밭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개 짖는 소리가 한가한 풍경을 깨뜨렸다. 마을은 한적하지만 그 안에서는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길이 넓어지면서 시야도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종착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화면 읍내는 여느 읍내와 같이 한산했다. 우리는 막국수 집에서 메밀묵을 안주삼아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평균적으로 한 시간에 4킬로미터를 걸은 셈이다. 경사가 완만해서 발걸음이 빨랐던 것 같았다. 좀 더 느긋하게 걸으며 숲길에 오래 머물러도 되지만 사실 말처럼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운동선수처럼,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행위가 몸에 밴 결과인지 모른다.
식당을 나와서 읍내를 걸었다. 5시 25분에 평창역 가는 버스를 타려면 아직도 한 시간 이상 남았다. 우리는 어느 추레한 커피가게를 기웃거리다 손님 받은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아서 길 건너편에 보이는 다방에 들어갔다. 옛날식 다방이었다. 장이 서면 사람들이 북적대겠지만 지금은 손님 하나 없이 조용했다. 최백호의 <낭만을 대하여>가 떠올랐다. 도라지 위스키와 짙은 색소폰 소리는 없지만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우리는 버스를 기다렸다.
항상 그렇듯, 속계에 내려와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삼독이 범람하는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7시 조금 넘은 시간이면 우리는 상봉역 부근 어느 음식점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지금 이 풍경에 대해 떠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초선과 같았던 백석산 숲길은 마음속에 적립되어, 적어도 일상 속에서 탁한 영혼을 정화하는 기능으로 작동되기를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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