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강성 지지층이 반대하자…의원들도 김병기 선그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민주당은 3대(내란·김건희·순직해병) 특검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의힘의 수정 요구를 수용한다”고 발표하자마자 강성 지지층에 포위됐다. 딴지일보 게시판 등 강성 지지층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공작이다. 당장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라”는 글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뒤이어 당내 강경파 의원들도 “합의가 필요치 않다”(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며 비토에 나섰다. 이튿날엔 정청래 대표가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는 순식간에 사면초가 상황에 몰렸다.
결국 14시간 만에 여야 합의가 파기되자 국민의힘 마저도 김 원내대표를 겨눴다. 유상범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 원내대표의 존재 가치가 뭔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의 승낙이 있어야 원내대표 간 합의가 이행되는 거냐”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불과 하루 만에 여당과 야당 양쪽에서 공격받는 처지에 놓였다.

여당 원내대표가 여야 사이에 끼여 수난을 겪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여당 원내대표가 야당을 설득해 예산안·법안을 관철해 성과를 내야만 하는 ‘최전방 협상가’ 자리라서다. 내부에선 “그걸 내주면 어쩌냐”는 불평을, 외부에선 “불통”이란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 첫 여당 원내대표였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임기도 순탄하지 않았다. 권 의원은 2022년 4월, 민주당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에 합의했다가 “‘윤심(尹心)’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당내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권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제 판단 미스였다. 앞으로 의원들의 중지를 모아 민주당과 협상을 이어가겠다”고 사과했다.

문재인 정부의 여당 원내대표였던 우원식 국회의장의 상황도 비슷했다. 우 의장은 당시 ‘드루킹 특검’과 추가경정예산안을 두고 야당과 협상에 나섰으나, 김성태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특검을 거부하고 무기한 노숙 단식 투쟁을 이어가다 8일째에 응급실로 이송됐다. 우 의장은 특검 공방을 매듭짓지 못한 채 마음 고생만 하다 원내대표 임기를 마쳤다.
다만 일각에선 최근 김 원내대표의 특검법 합의 논란을 두고 “과거 여당 원내대표와는 ‘수난’의 양상이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성 지지층의 문자폭탄은 물론, 이들의 눈치를 본 당 강경파 의원들의 공개 저격까지 감수해야 돼서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당원들이 공격하는 건 그럴 수 있다 쳐도, 의원들까지 SNS로 공격에 동참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토론으로 해결하면 됐던 일 아니냐”고 말했다.
김철현 정치평론가는 “강성 지지층이 특검법 합의를 결사 반대하자 민주당 지도부가 선을 그어버렸다”며 “강성 지지층이 당의 의사 결정 과정을 좌우한다는 걸 명백히 보여준 사건이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여당 원내대표의 협상력과 운신의 폭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수빈 기자 jo.su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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