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이 '힙' 할 수 있다고? MZ들이 만들었습니다
[황세림 기자]
지난 5월 31일, 한강공원에 모인 눈빛이 반짝였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다가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건네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게와 봉투를 든다. 흔히 봉사라고 하면 묵직한 희생을 떠올리지만, 이들에게 봉사는 설렘과 웃음으로 시작되는 또 다른 만남이었다. '팬 봉사'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자리다. 봉사를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 속 취미처럼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들, '크래용'이다.
지난 9월 초, 서울 노원구의 한 카페에서 MZ세대 봉사 단체 '크래용'의 임원이자 영상 크리에이터 최유진(활동명 걍매실)씨를 만났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2.3만, 틱톡 팔로워 1.4만의 크리에이터인 그는 크래용에서 1년 반째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터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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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래용 임원진으로 참여 중인 최유진 씨 |
| ⓒ 크래용 |
'크리에이터와 봉사할래용?'에서 이름을 따온 '크래용'은 지난해 만들어진 신생 봉사 단체다. 인플루언서·크리에이터의 선한 영향력을 통해 봉사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목표다.
출범 1년 남짓이지만, 참여 크리에이터의 영향력 합계는 1500만(크래용에 참여한 정기 회원 크리에이터의 틱톡 팔로워 합)이 넘는다. 실제로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인원의 절반 이상이 봉사 경험이 전무한 팬으로, 다채로운 봉사 활동을 기획하며 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최 씨는 대학 시절 디자인을 전공했다. 몽골 미술 봉사와 노인 디지털 소외 해소 캠페인 경험은 자신의 역량을 사회적 문제 해결에 써보고 싶었다는 관심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활동이 이어지며 우연한 기회로 크래용 대표를 만나 뜻을 함께하게 됐고, 현재는 임원진으로 브랜딩과 디자인 전반을 맡고 있다.
"봉사라고 하면 희생이나 거창함을 떠올리면서 무겁게 느끼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는 길에서 쓰레기를 줍거나 디지털 약자에게 키오스크 사용을 알려주는 등 소소한 행동도 봉사라고 생각해요. 크래용은 봉사를 어려운 일이 아닌 가까운 일상으로 가져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참여 활동을 진행한 크래용은 매달 한 번씩 팬과 함께하는 팬 봉사를 운영하고 있다. 격월로 유기견 봉사와 여름 플로깅(달리며 쓰레기를 줍는 봉사 활동), 겨울 연탄 봉사 등 가지각색의 활동을 이룬 바 있다. 지난해 말 자체적으로 기획한 첫 번째 기부 프로젝트로 '중형이(해외 입양을 위해 이동을 기다리고 있는 중형견을 모티브로 한 크래용 내 자체 제작 캐릭터)' 캐리어 택을 제작, 판매해 수익금 전액을 유기견 이동봉사 지원에 기부했다.
지난 8월 30일에는 비영리단체 KLC(Korea Legacy Committee)와 함께 독거 노인을 위한 반찬 나눔 활동을 펼쳤다. 두루치기와 어묵볶음을 포함한 총 115인분의 반찬을 직접 조리, 100인분은 안양시 사회복지단체 '유쾌한공동체'에 기부하고 나머지 15인분은 독거노인 가구에 직접 방문해 전달했다.
"뻔하지 않은 활동을 하려고 해요. 지난해에는 '백 투 더 2000'라는 콘셉트로 Y2K 감성 드레스코드를 맞춰 등산 플로깅 봉사를 했어요. 콘셉트를 더하자 참여 봉사자들이 훨씬 즐거워했죠. 재미 요소를 넣고 '쇼트 폼'으로 제작해 업로드하니까 사회적 활동에 관심 없던 주변 친구들도 궁금해하더라고요. '그렇게 재밌어? 나도 데려가 줘' 이런 말을 많이 들어요. 사실 이런 게 크래용이 원하는 반응이에요. 무관심의 영역에 있던 봉사가 궁금증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거니까요."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책임감이었다. 콘텐츠가 팬들의 직접적인 참여로 이어지는 과정을 경험하며, 자신의 일이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최유진씨는 "앞으로도 크래용을 재미있고 친근한 봉사 단체로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봉사가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들은 다른 답을 내민다. 크래용의 방식은 봉사가 숭고한 의무가 아닌 일상의 즐거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선한 영향력이란 어쩌면 이렇게 일상의 웃음 속에서 번져가는 것인지 모른다. 작은 경험이 누군가의 참여를 불러오고, 그 참여가 또 다른 변화를 만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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