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폭파에도 가자시티 100만 주민 '떠날 수 없는 이유'

정주진 2025. 9. 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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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가자지구 남쪽 대피 명령... "어디도 안전하지 않아", "피란 갈 돈도 없다", "남쪽 상황 더 나빠"

[정주진 기자]

 25일(현지 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병원 건물이 이스라엘군의 공습 표적이 됐다.
ⓒ AFP/연합뉴스
"우린 떠나지 않는다."

가자지구 북부 가자 시티에 사는 안마르 수카는 BBC의 프리랜서 기자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향해 "여기에 묻히더라도 우린 떠나지 않는다. 여긴 우리 땅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시티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인 12층짜리 무쉬타하 타워를 폭파했다. 아파트 안에는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군은 폭파 30분 전에 대피령을 내렸다. 간신히 빠져나와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눈 앞에서 마지막 피란처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모시고 간신히 빠져나와 목숨을 건진 주민 중 한 명인 아부 살라는 <알자지라>에 "첫 번째 폭격 후 건물이 그대로 서 있어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몇 분 후 두 번째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를 시작으로 이스라엘은 가자 시티에 남은 고층 건물들을 차례로 폭격해 무너뜨렸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고층 건물들에 감시 장비를 설치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폭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방적인 주장 외에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은 가자 시티 점령을 위한 공격을 계속하면서 주민들에게 가자지구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반복적으로 명령하고 있다. 9일에도 이스라엘군은 가자 시티의 약 40%를 점령했고 완전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서 모든 주민에게 대피를 명령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 시티를 떠나라. 내 말을 잘 듣고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라. 경고한다. 거기서 떠나라"고 강하게 말했다. 가자 시티에 마지막으로 남은 고층 건물들 폭파를 통해 이스라엘은 주민들에게 가자 시티가 완전히 초토화될 예정이니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 시티를 하마스의 마지막 남은 거점이라고 주장하며 완전 장악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가자 시티에는 약 100만 명의 주민이 머물고 있고 이들 중 많은 수가 떠나기를 거부하고 있다.

가자 시티 주민인 말락 A. 탄테쉬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전쟁 이후 10차례나 피란을 다녔다면서 다시는 피란길에 오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스라엘이 우리를 돌아오지 못하게 할 것을 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 시티를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삶의 흔적을 지우고 회색빛 잔해로 바꿀 것이다. 우린 남쪽으로 피란을 가는 대신 원래 집으로 돌아가는 걸 꿈꾼다. 이 모든 악몽을 끝낼 휴전이 이뤄지길, 이스라엘의 계획을 덮어버릴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 아이를 둔 30세 엄마인 히다야 알 팔루지 또한 <뉴욕타임스>에 자신과 아이들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전쟁 초기 폭격으로 집을 잃었고 그때 남편과 남동생도 잃었다. 그녀는 당시 무너진 집을 떠나 텐트로 옮기면서 집과 함께 전쟁 전 삶을 모두 잃었다고 느꼈다. 그녀는 "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죽든지 아니면 살아남든지 난 가자 시티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민들도, 국제 기구도 "가자 시티 떠나지 않을 것"
 이스라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자시티 주거용 건물
ⓒ 로이터/연합뉴스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또는 고향을 버릴 수 없어서 떠나길 거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민들이 떠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자 시티 주민인 아메드 아메드는 +972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이 강화되고 사망이나 부상의 위험이 임박해 있지만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난 가족에게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주장과는 다르게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가자 시티를 파괴한 후 이스라엘은 남쪽의 이른바 '인도주의 지구(humanitarian zone)'까지 작전을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전에 이스라엘군은 스스로 안전 지구로 지정한 곳에도 폭력을 가하곤 했고 많은 주민이 직접 이를 경험했다.

피란을 갈 수 없는 불가능한 사정도 있다. 나세르 어린이 병원의 의사인 바크르 가우드는 <뉴욕타임스>에 "난 가자 시티를 떠날 수 없다"며 11세의 아들이 뇌전증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여기도 필요한 의약품이 거의 없다. 그러나 남쪽으로 가면 상황은 더 나쁠 것"이라고 말했다.

피란을 갈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는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민인 와엘 샤반은 BBC 프리랜서 기자에게 "(이스라엘은) 남쪽으로 떠나라고 압력을 넣고 있지만 우린 피란을 갈 돈이 없다. 밀가루를 살 돈도 없는데 남쪽으로 가려면 1500 쉐켈(약 63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디안에 기고문을 쓴 말락 A. 탄테쉬 또한 피란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기름값이 너무 비싸 차를 이용할 수 없고 마차도 없는 상황에서 침구나 주방도구 등 필요한 생활용품을 가지고 떠날 수 없다면서 음식을 구할 돈도 없는 상황에 피란지에서 그것들을 다시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약 100만 명의 주민이 여전히 가자 시티에 있고 그중 많은 주민이 자의든 타의든 다시 피란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국제기구도 가자 시티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10일 사회관계망을 통해 가자 시티 주민들에게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계속되고 대피 명령이 있지만 "WHO와 협력 단체들은 가자 시티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군이 지정한 남부의 "인도주의 지구"로 가라는 명령에 대해 "그곳은 넓지도 않고 현재 머물고 있는 피란민에게도 제대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후 이미 여러 차례 피란을 했었던 가자 시티 주민들은 더는 피란길에 오를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대다수 주민이 굶주림으로 인해 걸어서 피란을 떠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국제기구는 지난 8월 15일 가자 시티를 포함한 가자지구 북부 지역에 가장 심각한 식량 부족 단계인 기근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호품 공급은 하지 않으면서 피란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인도주의에 어긋나는 데도,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총리까지 나서서 노골적으로 주민들을 협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약 100만 명의 가자 시티 주민을 전부 쫓아내고 도시를 아예 없애려는 계획을 실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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