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40) 와호장룡 |명차 ‘황산모봉’과 ‘태평후괴’의 고향 황산에는 ‘와호장룡’만 있는 게 아니다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기자(sky6592@mk.co.kr) 2025. 9. 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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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차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만난 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모티브로 ‘알아두면 쓸 데 많은, 재미있는’ 차 이야기를 술술 읽어나갈 수 있게 풀어낸 스토리텔링 연재물입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면 매월 1회 ‘차(茶라)는 렌즈를 통해 풍성한 문화·예술·역사 이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좋아요’와 ‘댓글’ 공유는 콘텐츠 제작과 전파에 큰 힘이 됩니다.
무협영화 중 ‘딱 한 편을 꼽으라면’ 독자 여러분은 어떤 영화를 꼽으실지? 많은 이가 이 영화를 꼽을 것 같다. “아~ 영화 제목이 딱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왜~ 대나무숲에서 주윤발과 장쯔이가 막 싸우고, 건물이 고스란히 비치는 연못인지 그~ 물 위를 막 걷고~ 그 영화”.

여러분이 생각한 영화도 이 영화가 맞을지. 주윤발, 양자경, 장쯔이, 장첸 등 호화찬란 출연진을 자랑하는 ‘와호장룡’이다.

‘와호장룡’은 ‘누워있는 호랑이와 숨어 있는 용’이란 뜻이다. 영어 제목은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이 영화로 이안 감독은 일약 세계적인 감독 대열에 올랐고, 서양에서 무협영화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었다. 동양 영화에서는 자주 볼 수 있던 와이어 액션신에 서양인이 환호하면서 ‘와호장룡’은 당시 북미에서만 1억 3000만달러라는 흥행 대기록을 써내렸다. 2000년에 세워진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으면서 와호장룡은 ‘역대 북미에서 개봉한 비영어 영화 흥행 수입’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위 ‘인생은 아름다워’ 5700만달러의 2배도 넘는 금액이다.

와호장룡으로 인생2막(?)을 근사하게 열어젖힌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은 <결혼피로연> <음식남녀> <센스 앤 센서빌리티> <와호장룡> <브로크백마운틴> <색계> 그리고 <라이프 오브 파이>까지, 중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마구 섞여 있는 리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브로크백마운틴>으로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이후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번째 감독상을 받았다. ‘와호장룡’ 와이어액션의 백미는 바로 제목은 기억 못해도 장면은 다들 기억한다는 그, 대나무숲과 건물이 고스란히 비치는 연못에서의 와이어 액션이다. 두 장면 모두 중국 안후이성 황산 인근에서 찍었다. 안후이성(安徽省)에서 ‘徽’는 휘주(徽州)를 의미하고 휘주가 바로 황산시다.

중국 명차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황산’
황산 아래 ‘홍춘’마을에서는 물 위를 걸어다니며 싸우는 장면을 촬영했다.
황산이 위치한 안후이성은 예부터 대나무로 유명했다. 사방이 대나무로 둘러싸인 계곡 깊이가 무려 6㎞라는 ‘묵갱죽해’가 바로 그 유명한 대나무 신이 탄생한 곳이다. 건물이 고스란히 비치는 이국적인 연못 위를 휙휙~ 날아다니는 그 장면을 찍은 곳은 황산 바로 아래 명청 시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홍춘’이라는 마을이다. ‘홍춘’은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황산(黃山)은 황허강, 양쯔강, 만리장성과 함께 중국 4대 상징으로 불리는 곳. 명나라 시대 지리학자로 중국 곳곳의 비경을 관람하고 기행문을 남겨 유명해진 서하객이 ‘오악귀래불간산, 황산귀래불간악’이라 노래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오악에 다녀오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고(五岳归来不看山)

황산에 다녀오면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 (黄山归来不看岳)”

황산은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차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중국의 이름 난 녹차의 산지로 더 유명하다. 실제 황산은 송나라 시대부터 ‘황산차’라 이름 붙은 명차의 고장으로 꼽혔다. 중국에 유학 온 일본 승려들은 ‘황산차’를 ‘신비의 선약’으로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안후이성(安徽省) 역사를 기록한 휘주부지(徽州府志)에 의하면 ‘황산차는 송나라 인종(1056~1063)년간에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명나라 목종(1567~1572)에 이르러 융성했고 황산운무차(黃山雲霧茶)라고 불렀다“라고 기록이 돼 있다. 청나라 때 강징운이란 이가 쓴 소호편록(素壺便錄)에는 “황산에는 운무차가 있는데 황산의 높은 산꼭대기에서 생산된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명나라 시절 허초(許楚)가 지은 ‘황산 유람기(黃山遊記)에도’ 황산 운무차 얘기가 나온다. “황산 연화암(蓮花庵) 부근 바위 틈새에서 차나무가 자라는데 향이 이슬 같이 은은하여 황산 운무차라고 한다”는 내용이다.

‘소나무 맛집’으로 불릴 만큼 ‘기기괴괴’ 멋진 소나무와 기암괴석으로 정평이 난 황산은 1년에 200일 이상 비가 내리고 그래서 운무가 자주 낀다. 당연히 황산의 절경을 볼 수 있는 날이 며칠 안되어 첫 번째 방문에서 황산 절경을 본 이는 ‘전생에 무슨 복을 지은 것인가’ 라며 부러움을 받기도 한다. ‘황산 운무차’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나왔다.

황산에는 1년이면 200일 정도 비가 내려 황산은 거의 늘 운무에 잠겨 있다.
‘황산차’의 대표주자가 중국 10대 명차로 손꼽히는 ‘황산모봉(黃山毛峰)’이다. 중국 차 이름은 보통 네 글자로 되어 있는데, 앞의 두 글자는 지명, 뒤의 두 글자는 차 이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황산이 지명, 모봉이 이름인 셈. 황산에서 나는 차라 ‘황산모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럼 모봉은? 모(毛)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 작고 흰 은빛 털이 차 잎을 감싸고 있다. 봉(峰)은 차 잎이 봉우리처럼 뾰족뾰족하다는 의미다. ‘황산에서 나는, 봉우리처럼 뾰족뾰족하게 생긴 모양새에 작고 흰 은빛 털이 차 잎을 감싸고 있는 차’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다. 황산모봉은 6대다류 중 어디에 속하냐고? 녹차다. 중국 정부는 매년 10대명차를 선정

해 발표하는데 7~8개가 녹차다. ‘황산모봉’은 늘 10대명차 앞자리를 차지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녹차다. 황산 여기저기서 ‘황산모봉’이 생산된다면, 황산 뒤편에 위치한 ‘태평호’라는 큰 호수 인근에서도 10대명차에 속하는 또 다른 녹차가 생산된다. ‘태평후괴(太平猴魁)’다.

황산이 전 중국에 이름을 떨친 것은 1976년 덩샤오핑(등소평)이 황산을 직접 등정한 후부터다. 황산을 걸어서 오른 덩샤오핑은 “이 아름다운 절경을 중국 전 인민이 볼 수 있게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후 너무 험해 오르기 쉽지 않은 황산 등정을 위한 계단 놓기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오늘날 우리가 깎아지를 듯한 절벽에 딱 붙은 계단을 통해 황산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계단을 놓다 추락사한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노동자의 땀과 피 덕분이다. 사람들이 황산에 조금 더 쉽게 오를 수 있게 하기 위해 계단뿐 아니라 3대의 케이블카도 놓아졌다. 황산 앞 쪽의 ‘운곡’ ‘옥병’ 케이블카와 뒤쪽의 ‘태평’ 케이블카다. 눈밝은 분들은 ‘태평?’ 하실 터. 맞다. ‘태평호’의 그 태평이다.

절벽에 꼭 붙어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황산에 오를 수 있다.
청나라 옹정제가 가장 좋아하는 차였다는 태평후괴는 어떤 차일까. “이것은 해초인가 녹차인가.” 태평후괴를 보고 사람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이다. 길이 5~7㎝에 작은 미역 같은 비주얼을 지녔고 실제 우리면 해초 맛도 좀 난다. ‘황산모봉’처럼 ‘태평후괴’ 역시 녹차다.
황산의 운무를 담은 ‘황산운무차’ 대표주자 ‘황산모봉’
미역을 닮은 태평후괴는 길이 7cm 정도를 최고로 친다.
태평은 ‘태평호’를 가리키고, 그럼 후괴는 무슨 뜻일까? 후괴의 후(猴)는 ‘원숭이 후’인데 나무가 높아 원숭이를 훈련시켜 찻잎을 따게 한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아기 원숭이가 죽었는데 어느 노인이 그 원숭이를 묻어준 자리에서 이 차나무가 자랐기에 ‘후’자를 붙였다는 설도 있다. 괴(魁)는 우두머리 괴다. 차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를 담았을 수도 있고, 태평후괴를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왕괴성 선생 이름에서 따왔을 수도 있다. ‘태평에서 나는, 원숭이가 찻잎은 딴 녹차의 우두머리’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후갱촌 곳곳에서는 원숭이 동상이 방문객을 반겨준다.
태평후괴는 중국의 ‘외교차’로도 이름을 날렸다. 워낙 이름부터 ‘태평’이 아닌가. “나라가 태평하길”이라는 기원을 담았다고 하면 이보다 그럴싸한 스토리가 없다.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 닉슨이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가 “양국 관계가 앞으로 태평하기를 기원한다”며 는 ‘태평후괴’를 선물했다. 후진타오 주석이 2007년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도 푸틴 대통령 선물로 ‘태평후괴’를 들고 갔다. 이후 ‘푸틴이 가장 좋아하는 차’로 둔갑하면서 한동안 불티나게 팔렸다는 후문이다.
“나라가 태평하길” 태평후괴 ‘외교차’로 이름 날려
사실 태평후괴는 황산모봉에 비하면 역사도 오래되지 않았고 최근까지 ‘듣보잡’ 차였다. 1900년대 들어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191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파나마 만국박람회(파나마 운하 개통을 기념해 파나마 만국박람회 라고 이름 붙였다)에서 금상을 차지하며 비로소 이름을 알렸다. 2004년 열린 상하이 국제차박람회에서 ‘녹차 왕’에 오른 후 2005년 경매에서 특등급 100g이 3000만원에 낙찰되면서 세상을 놀래키기도 했다.

중국 차는 중국 정치인들과 얽힌 다양한 스토리로도 이목을 끈다. 후난성 출신 마오쩌둥은 후난성의 대표적인 황차 ‘군산은침’을 좋아해 ‘군산은침’은 ‘마오쩌둥의 차’로 불리운다. 마오쩌둥은 생전 군산은침을 즐겨마셨을 뿐더러, 중대결단을 해야 할 때마다 고향을 찾아 군산은침을 마셨다는 스토리가 전해 내려온다. 태평후괴는 후진타오 주석과 인연이 깊다. 후진타오의 아버지 후쩡위(胡增玉)는 안후이성에서 차 가게를 운영했다. 어려서부터 차와 가까웠던 후진타오가 칭화대 수력공학과에 합격해 베이징 유학길에 오를 때 가져간 차가 태평후괴로 알려졌다. 이후 후진타오 후광을 업고 후진타오 시대에 태평후괴가 중국을 대표하는 명차 반열에 올랐다나 어쨌다나.

안후이성 태평호 인근 후갱촌 내 태평후괴 모수 나무로 알려진 ‘후괴왕’
태평후괴는 태평호 인근 마을 중에서도 후갱, 후강 등의 마을에서 주로 생산된다. 그중에서도 후갱이 태평후괴의 고향으로 일컬어진다. 후갱에는 ‘후괴왕’이라 이름 붙은 태평후괴 모수차도 존재한다. 모수차는 그 나무에서 딴 찻잎으로 처음으로 태평후괴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최근 귀하디 귀한 태평후괴 모수차를 실물영접하러 후갱에 다녀왔다. 귀한 태평후괴 모수차를 만나러 가는 길은 당연히 ‘순탄치’ 않다. 45인승 버스를 타고 가다 길이 좁아져 중간 크기 버스로 갈아타고 도착한 후갱촌. 원숭이 동상이 가장 먼저 반겨준다. 여기서부터는 후갱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운행하는 SUV만 탈 수 있다. 길이 워낙 험해 후갱촌 사람들만 운전할 수 있다나. ‘상술이 심하군’ 싶던 생각은 6인승 SUV 타고 올라가면서 ‘이 차를 타고와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바로 바뀐다. 한쪽이 낭떠러지인 1차선길.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맞부닥치기라도 하면 퇴로가 없다. 10여 분 정도만 가면 되지만 워낙 길이 아슬아슬해 창문 위쪽 손잡이를 꼭 부여잡고 갔더니 차에서 내리자마자 온몸이 욱신욱신하다.

태평후괴 모수차인 ‘후괴왕’ 주인은 태평후괴 비물질문화유산인 방계범 선생이다. 비물질문화유산은 우리로 치면 ‘무형문화재’ 정도랄까. 5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태평후괴 유일한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방계범 선생을 위해 중국 정부는 태평후괴박물관을 건립해줬다. 박물관에는 가문 역사와 태평후괴 역사를 잘 알 수 있게 구성이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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