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함께 걸어주세요, 도요새와 고라니가 손 내민 남태령 고개

신혜정 2025. 9. 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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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새사람행진단 남태령 고개 넘기 행진에 참여해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

[신혜정 기자]

▲ 저어새 부리를 휘휘 저어 먹이를 찾는 저어새는 현재 멸종위기 1급, 수라갯벌을 비롯한 서해에 산다
ⓒ 새사람행진단/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 검은머리물떼새 오렌지부리와 삑삑우는 소리가 매력적인 천연기념물, 수라갯벌 등 서해에 산다
ⓒ 새사람행진단/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오늘 양치질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 칫솔이 말랐는지를 만져보며 확인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밀려온다. 그런 내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사진이 하나 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흰 배를 드러낸 채 떼죽음을 당한 사진. 4대강 사업 공사 당시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여러 번 반복되었을 법한 이 물고기 떼죽음의 장면이, 왜 그토록 충격이었을까.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이런 식으로 4대강 곳곳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가겠구나.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많이 죽는다 해도, 그 사실은 사업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겠구나. 얼마나 죽었는지, 얼마나 다쳤는지조차 세어지지 않겠구나. 사진으로라도 보지 않았다면, 이 모든 죽음을 몰랐을 수도 있었겠구나.'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서라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든 상관없다는 듯,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구호처럼 발전의 열차는 멈추지 않는다.

남태령으로 향한 생명들의 발걸음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9월 5일, 남태령에는 열목어가 헤엄쳤다. 검은머리물떼새, 검은머리갈매기, 큰뒷부리도요가 하늘을 날았다. 게는 걸었고, 고둥은 길을 갔다. 이 생명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존재이며,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 함께 걸었다. 전주의 전북지방환경청에서 군산 수라갯벌을 지나 서천에서부터 이어진 걸음은 25일째 남태령에 이르렀다. 새사람행진단의 여정이었다.
▲ 귀여운 물고기도
ⓒ 새사람행진단/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 귀여운 비둘기도
ⓒ 새사람행진단/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남태령은 역사적으로도 상징적인 장소다. 2024년 12월 21일, 공주 우금티에서부터 3일간 서울로 향한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가 경찰 차벽에 가로막히고 진압당했던 곳이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시민들이 농민들의 손을 잡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긴 겨울밤을 버텼던 곳.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연대하며 결국 차벽을 열고 함께 고개를 넘었다.

이런 이유로 남태령은 새사람행진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로 여겨졌다. "시민들이 법의 통제를 뚫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곳"에서 "그 시민의 힘으로 법이 큰뒷부리도요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외쳤다. 큰뒷부리도요가 외롭지 않도록, 참가자들은 각자 집에서 만든 생명 상징물을 들고 남태령에서 만나자고 했다.

1~2주 전부터 대대적인 홍보가 시작됐고, 어느 순간부터 내 귀엔 "9월 5일, 남태령에서 만나요"라는 말이 맴돌기 시작했다. '남태령에 과연 얼마나 모일까'는 어느새 모두의 관심사가 됐다. 누구는 100명, 누구는 200명, 또 누구는 150명, 300명, 500명 등 예상은 엇갈렸다.

도요새와 고라니가 함께 넘는 고개
▲ 이날의 새사람행진
ⓒ 박상환
그 남태령의 날인 9월 5일, 행진의 출발지는 인덕원역이었다. 참가자들은 지하철역 출구에서부터 흥진단의 환영을 받으며 하나둘 대열에 합류했다.
출발 당시 150명가량이었던 인원은 행진이 이어지는 동안 계속 불어났다. 큰뒷부리도요를 자전거에 태우고 선두에서 나아가던 나의 시야에 웃으며 다가오는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반갑게 혹은 수줍게 손을 흔드는 이들, 깃발을 들고 합류하는 이들이 있었다.
▲ 풍물로 맞아주는 팽수 이날 남태령 넘어 도착지인 이수에서도 맞아주는 모습
ⓒ 박상환
한 시간을 걸었을까? 쉬는 장소에는 이미 더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 다른 흥의 강자들인풍물놀이패 '팽수'가 흥겨운 풍물로 행진을 맞이했다. 그렇게 모인 약 300명의 인원이 팽수의 타령에 발맞춰 남태령을 향해 나아갔다.
▲ 이날의 새사람행진
ⓒ 박상환
▲ 이날의 새사람행진
ⓒ 박상환
"넘자 넘자 남태령 고개를 넘자
넘자 넘자 도요새 함께 넘자
넘자 넘자 고라니 함께 넘자
우리 모두 손을 잡고 남태령 고개를 넘자
열자 열자 새세상 함께 열자
우리 모두 손을 잡고 새세상 함께 열자
너도 살고 나도 살고 새세상 함께 열자
살자 살자 함께 살자 수라에서 함께 살자."

'도요새 함께 넘자, 고라니 함께 넘자'라는 대목에서 울컥 눈물이 났다. 항상 인간의 뒤편, 배경처럼만 여겨졌던 존재들이 이제야 우리 전면에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이토록 인간밖에 없는 세상에서 그들이 넘어오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을 것 같아서. 노래로, 상징물로,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을 통해 그들이 인간의 세계로 들어오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나 싶어서 말이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함께 살자며 9월의 늦더위 속 아스팔트 위를 기꺼이 걷는 이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귀했다.

생명 경시의 반복, 다시 묻는 책임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모일 수 있었을까. 너무도 긴 여름을 견디며, 평생 처음 겪는 큰비를 맞으며, 자주 반복되는 산불을 겪으며 생긴 마음이었을까. 매일같이 울리는 재난 경보 문자를 받으며, 결국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쌓인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인류가 역사상 가장 발전했다고 자부하는 지금, 인간은 인간이 초래한 위기를 여느 때보다 광범위하게 겪고 있다.

그중 하나가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다. 남태령 행진의 다음 날인 9월 6일, 그 유가족이 새사람행진에 함께 걸었다. 179명이 한순간에 세상을 떠난 참사가 일어난 지 250여 일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며 거리로 나섰다. 용산 대통령실, 전남경찰청, 전남도청, 광주시청 등을 돌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고재승씨는 참사로 부모님을 잃었다.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 것은 조류 충돌이었다. 무안공항 주변에는 철새 서식지가 네 곳이나 있었다.
▲ 9월 6일 경복궁역 앞 생명지킴이대회에서 무안공항에서 피켓을 든 유가족의 뒷모습 179분이 사망했다. 새만금신공항, 그리고 가덕도신공항은 어떠한 예견된 참사를 감수할 것인가. 누가 감수할 것인가.
ⓒ 새사람행진단/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고씨는 "잘못된 곳에 잘못 지어진 공항"이었다며, 이 참사는"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바로잡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몇 명의 희생자와 수천 명의 유가족이 생겨야 멈추시겠습니까"라며 수라갯벌에 새만금 신공항이 지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9월 8일 기자회견 중).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남영효씨는 "유가족은 저희 하나로 끝나게 해주시고,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9월 6일, 용산 대통령실 건너편 기자회견 중).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어쩌다 이토록 당연하듯 벌어지고 있을까. 비행기와 충돌하는 새들의 죽음은 그동안 인간의 개발 과정에서 필연적인 '작은 부작용'으로 치부되어 왔다. "편리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발전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한다"는 말로 무수한 죽음이 정당화됐다.

그러나 그런 죽음들은 정말 인간을 위한 것일까. 참사가 일어나고 보니, 이를 당한 인간조차 새들과 비슷하게 취급된다. 그 끔찍한 사고는 진상규명도 되지 않은 채 빠르게 뒤편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갈무리되지 못한 슬픔을 껴안은 유가족들은 결국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된다.

'무엇이 얼마나 죽고 고초를 겪든 발전의 열차는 멈추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 '무엇'에는 인간도 포함된다. 자연을 착취하는 구조 속에서 인간도 자연처럼 착취당한다. 더 편리해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다른 것들을 밀어내고 짓밟는 사회에서 인간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흐름이 만들어낸 결과가 바로 기후변화를 포함한 광범위한 위기다. 인간이 만든 이 위기 속에서, 인간이든 인간 아닌 존재든 함께 휩쓸려가고 있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는 가끔 길을 잃은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2050년이면 지구는 정말 다 망하지 않을까. 앞으로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이때, '함께 살자'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우리가 밀치고 밟아왔던 존재들과 이제라도 함께 살아가자는 그 외침은 어쩌면 그들을 위한 말이 아니라 결국 우리가 살기 위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길을 안내하는 새, 큰뒷부리도요

큰뒷부리도요는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겨울을 보내고, 한국에서 봄을 나며, 알래스카로 날아가 번식한 뒤 다시 뉴질랜드와 호주로 돌아간다. 이들이 어떻게 1만km가 넘는 여정을 쉬지 않고 날 수 있는지, 어떻게 그 막막한 하늘에서도 자신의 길을 알 수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다.

태평양의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었다면, 큰뒷부리도요를 따라가면 언젠가 육지가 나온다. 뉴질랜드의 황아누이 쿠아카 부족 공동체는 자신들이 큰뒷부리도요를 따라 그 땅에 도달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들이 죽으면 다시 그 새를 따라 길을 떠날 것이라 믿는다.

남태령에서는 멸종된 동식물의 이름이 적힌 판넬이 등장했다. 1980년 이래 자취를 감추어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생물들이다. 채 알기도 전에, 단 한 번 보기도 전에 사라진 그 이름 아래에는 여러 나라 언어로 '동지'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 멸종된 동식물의 판넬들 아래에는 각국의 언어로 '동지'라고 쓰여있다
ⓒ 새사람행진단/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 판넬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 새사람행진단/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그들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지켜줘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이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들, 우리의 동지들이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면서도 결코 해낼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해내며, 인간이 길을 잃었을 때는 이정표가 되어주는 낯설고도 귀한 존재들이다.

시민과 함께 넘은 남태령, 다시 민주주의를 묻다

남태령에서 새사람행진단의 단장 '완두'는 말했다.

"우리는 출발점에서 '법이 큰뒷부리도요를 구할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떠나왔지만, 도착점인 이곳 남태령에서 '법이 큰뒷부리도요를 구할 수 있어야한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그것은 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었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민(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는 그 '민' 속에 큰뒷부리도요를 포함한 낯익고 낯선 생명들이 함께 들어설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그래야 홀로만 '민'인 줄 알았던 인간도 함께 살 수 있다. 이처럼 확장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품고, 새사람행진단은 남태령을 넘었다.

그럼에도 세종보 철거농성장의 김도훈 활동가는 "우리는 한줌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공항 말고 갯벌을' 외치는 목소리는 이 사회에서 여전히 소수다. 누군가는 이렇게 묻는다. "어차피 질 싸움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문정현 신부님은 "평생 지는 싸움만 해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질 싸움을 누가 하고 싶을까. 나는 지든, 이기든 싸움은 잘 안 하려는 타입이다. 그런데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이렇게 질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는 심정을.

0.1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혹시나 손에 쥘 수 있을까 싶어 모든 것을 던지는 간절함.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마음을, 수라갯벌에서 만난 이들을 통해 짐작하게 됐다.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단지 땅이 아니었다. 그 땅은 삶이자, 존재의 전부였다. 혹은 그들과 연결된 이들의 전부였다. 그 심정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됐다.

새사람행진에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삼보일배'다. 2003년, 새만금 방조제 건설을 막기 위해 4대 종단의 성직자들이 부안 해창갯벌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했다. 그 고행의 기억은 지금도 살아 있다. 폭염으로 외출과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계속되는 이때, 행진 중 더워서 투정을 시작하려는 찰나 누군가 '삼보일배'를 언급하면 모두가 조개처럼 입을 닫는다.

"아, 그때 생각하면 힘들다는 말 못하지. 암암."

삼보일배의 정신은 새만금이 막힌 이후에도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갯벌을 찾고 관찰했던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수라갯벌에 대한 지금의 연대로 이어졌다.

싸움은 다른 말로 하면 삶이다. 강이 흐르듯, 싸움도 멈추지 않는다.

질 것을 알면서도 몸을 던지는 이들, 그들의 진심에 감화되어 머뭇거리던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 그들의 곁에 서서 함께 걸어주는 이들 덕분에 강은 점점 물길을 넓혀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갯벌을 만나고 바다를 만날 것이다. 아주 다양한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그런 세상을 말이다.

법원 앞에서의 1만 3천배, 1만 3천킬로의 희망
▲ 13,000km, 13,000절 9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매시간 절과 매일 3시에는 미사가 진행된다
ⓒ 새사람행진단/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새사람행진단은 9월 8일 서울행정법원에 도착해 법원 앞에서 3일간 릴레이로 1만 3천 배의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 숫자는 큰뒷부리도요가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와 호주로 날아가는 약 1만 3천 킬로미터를 본뜬 숫자다.

한편 행정법원의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 대한 최종 선고는 9월 11일 오후 1시 55분에 있을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새사람행진의 웹 매거진 <새,사람>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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