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벌어진 코스 요리에 놀란 여행자의 위장
[오순미 기자]
김유정의 <동백꽃>에 등장하는 소녀와 소년, 그들을 잇는 감정의 매개는 옥수수와 감자다. 투박한 음식이지만 풋풋한 사랑의 상징으로 어울린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주인공은 고기를 거부하며 가족과 사회 질서에 저항한다. 채식을 선택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에서 떠돌이 노동자들이 자주 먹었던 국밥은 가난한 서민들의 궁핍한 현실을 압축했다.
음식은 사랑을 전하고 정체성을 선언하며 고단한 현실을 압축한다. 그 외 계절, 치유, 위로, 응원, 의례, 종교 등 인간의 삶 전 과정을 아우르는 총체적 표상이기도 하다. 지난 8월 23~28일 6일간의 몽골 여행에서 음식은 격식 차린 환대였고, 새로운 문화였으며, 연대의 손길이었다.
어정쩡한 오후 4시쯤 기내식으로 저녁을 해결한 우린 캠프에 도착해 라면을 끓이기로 했으나 '홉수골 호수'로 이동하는 중 캠프 측에서 저녁 식사가 준비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늦은 시간 도착에도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린다는 말이 마음을 만져주는 응원같아 고마웠다.
무릉 공항에서 북쪽의 홉수골 호수까지 스타렉스로 두 시간 반쯤 이동한 우린 비포장 도로에 지친 몸으로 밤 11시가 다 되어 '토일록 캠프'에 도착했다. 숙소 배정 후 식당에 모였는데 코스 요리 도구가 세팅된 식탁이 의아하다 싶을 때 샐러드가 나왔다. 차례로 수프와 스테이크, 후식 케이크까지 시간차를 두고 신속하게 서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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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늦게 도착한 홉수골 호수 캠프에서 준비해준 격식 있는 코스 요리 |
| ⓒ 오순미,김정수,신주철 |
몽골은 광활한 초원, 건조한 기후, 극심한 기온차가 나타나는 유목 사회여서 농업보다 가축 중심의 생활 구조를 띤다. 그러다 보니 육류나 유제품을 이용한 음식이 많다. 캠프에서도 끼니마다 주요 음식은 고기였다. 양, 염소, 말, 소 등 다양한 육류 중에서도 몽골에서 흔한 고기는 양고기다.
그중 '허르헉'은 몽골 유목민의 전통 음식 중 하나인 양고기 찜이다. 양 한 마리를 뼈째 토막 내어 큰 냄비에 준비하고 감자, 당근, 양파(현대에 들어서 추가) 같은 채소를 넣은 후 불에 달군 돌을 고기 사이에 끼운다. 소금 간 한 물을 붓고 뚜껑을 꼭 닫아 증기로 찌듯이 조리한다. 실제 전통 방식으로 조리할 땐 동물 가죽에 고기와 내장을 넣고 달군 돌을 여러 개 넣어 굴리며 익힌다는데 캠프에서는 압력솥을 사용하는 게 시간적으로 유리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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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부위를 개인 접시에 담아 준비한 몽골 전통 음식 '허르헉' |
| ⓒ 오순미,김정수,신주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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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 부위를 한 접시에 차린 한국인 주인장 캠프의 몽골 전통 음식'허르헉' |
| ⓒ 오순미,김정수 |
테를지 국립공원 일정에서 '엉거츠산'에 오르지 못한 팀원들은 주변을 트레킹했다. 들꽃을 따르다, 야생마를 타고 달리는 청년에게 한눈팔다, 이름은 없지만 존재를 드러내는 기암괴석 사이를 오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호쇼르와 보즈, 초이왕, 커피를 주문했다.
'호쇼르'는 우리의 군만두와 닮은 튀김만두다. 주로 양고기(혹은 소고기)를 다져서 소금, 후추, 마늘을 넣어 고기소를 만든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소를 넣고 반달형이나 사각형으로 빚은 후 노릇하게 튀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풍부한 몽골식 튀김만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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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 전통 음식 '호쇼르'는 고기소만 들아가는 튀김만두 |
| ⓒ 오순미,조진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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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 전통 음식 '보즈' 역시 고기소만 들어가는 찐만두 |
| ⓒ 오순미,조진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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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 전통 음식 '초이왕'은 볶음 칼국수. 외식 문화의 하나로 자리매김. |
| ⓒ 오순미,조진숙 |
몽골 동부의 젊은 목동 '남질'은 노래로 유명했다. 동부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에 늘 감탄했다. 군 복무 중 서부의 공주와 사랑에 빠진 그는 그녀가 선물한 날개 달린 천마를 타고 밤마다 왕래하며 사랑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를 짝사랑한 고향의 부잣집 딸이 질투심에 타올라 천마의 날개를 잘라 죽이고 만다. 슬픔에 잠긴 남질은 천마의 모습을 본뜬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고 노래하며 슬픔을 달랬다. 후에 사람들은 이 악기를 '마두금'이라 불렀다. 마두금은 이후 공주에 대한 그리움과 몽골인들의 정서를 위로하는 악기가 되었다.- 마두금 설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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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 전통 현악기 마두금을 든 몽골 연주자와 처연한 마두금 소리에 반해 칭기즈칸 마동상 기념품점에서 구입한 마두금 모양 자석. 마두금은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돼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악기다. |
| ⓒ 일파가야금연주단제공,오순미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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